상단여백
HOME 문화 포토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정치인과 자본가가 세상을 바꾼 적은 없습니다[장영식의 포토에세이]

 

   
▲ 양산 창조여행학교 학생이 고 황유미 씨의 10주기를 맞아 부산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영정을 들고 추모하고 있는 모습. ⓒ장영식

10년 전 3월 6일 아침, 아버지는 유미를 택시에 태우고 수원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유미는 택시 안에서 "아이 더워, 아이 추워"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창백했던 유미는 택시 안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유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입 대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취업을 선택합니다. 기흥에 있는 삼성반도체였습니다.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1년 8개월이 지나고 2005년 6월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유미는 기흥공장에서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담그고 빼는 작업을 반복해서 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삼성은 화학약품을 쓰지도 않고, 취급도 하지 않으며 방사선도 없으니 아예 말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화학약품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러자 삼성은 화학약품을 사용하지만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시 유해 물질이 있음이 밝혀지자 삼성은 영업 비밀이라고 침묵합니다. 삼성이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만 224명이고, 이 중 79명이 죽었습니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삼성 직업병 문제는 삼성을 편드는 감독 기관들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되며 오히려 삼성에게는 온갖 혜택을 제공하는 부조리를 낳았습니다. 노동자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들고 죽고 있음에도 직업성 질환을 인정받기는커녕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 가고 묻혀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정치인들이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굴절되어 있고, 왜곡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노동 귀족이란 말이 나오고, 전문 시위꾼이란 말이 나옵니다. 그것도 고졸 출신의 노동자가 삼성 고위직에 올랐다며 영입된 정치인에게서 나온 발언입니다. 삼성의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병들고 죽어 가야 나쁜 정치인들의 빗나간 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과 자본가가 세상을 바꾼 적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강한 처벌만이 삼성을 착한 기업, 사회적 기업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며 유미가 죽어서라도 화학약품 냄새가 없는 맑은 공기 속에 잠들기를 빌었습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