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신부] 3월 5일(사순 제1주일) 마태 4,1-11

40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에 우린 익숙하다.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었고(탈출 24,18; 34,28; 신명 9,9; 10,10) 이스라엘이 광야를 떠돌았던 시간이었다.(민수 14,26-35) 이스라엘은 40을 역사 속에서 곱씹으며 하느님 백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다듬어 왔다. 예수가 40일을 광야에 머문 건, 예수를 통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계약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그 계약에 새롭게 다가설 새로운 백성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예수는 지금 광야에서 자신을 통해 시작하는 새로운 시대의 지향점을 분명히 한다.

먼저 예수는 돌더러 빵이 되게 해 보라는 사탄의 제안에 신명 8,3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탄은 이어서 시편 91편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얼마만큼인지 예수를 시험하는데, 예수는 신명 6,16의 말씀으로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며 대응한다. 사탄이 마지막으로 세상 모든 것을 주겠으니 자신을 경배하라고 예수에게 제안하자, 예수는 신명 6,13의 말씀, 곧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라는 말로 대꾸한다.

예수는 사탄의 유혹을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 모두 반박했다. 신명기의 하느님은 오로지 한 분 하느님이시고, 질투하는 하느님이시다.(신명 4,24; 6,4-5) 예수로 인해 새롭게 시작할 시대는 하느님께로 오롯이 봉헌된 시대여야 했고, 예수는 사탄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느님 사랑을 몸소 보여 줬다. 대개 이런 예수를 두고 세상과 괴리된 예수, 세상의 가치와 다른 하느님의 가치를 고집하는 예수, 그리하여 세상 것과 하느님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예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세상과 다른 하느님나라’, ‘세속의 논리가 아닌 하느님의 논리’, ‘인간적이 아닌 하느님의 가치’ 라는 상투적 말마디로 하느님의 논리, 하느님의 뜻을 인간의 것과 분리해서 강조하는 우리들의 입버릇과도 닮은 해석이다.

▲ '광야의 유혹', 브리턴 리비에르. (1898)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날마다 우리 신앙인은 광야의 체험을 하고 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움켜쥐고픈 인간의 속내에 저항하면서 광야를 하느님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시련과 시험의 자리로 이해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라.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추구가 나쁜 것인가. 필요한 것이고 사회 생활을 위한 원동력이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인간의 기본 욕망을 무작정 악한 것으로 돌리는 생각은 악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사유를 포기하는 처사다. 그러한 무시는 대개 이원론적 세계관, 신앙관을 형성한다. 제 삶의 처지를 사유하기보다, 있지도 않을 하느님나라를 애써 찾는다고 매번 ‘내일’을 꿈꾸거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묻지도 않고 그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세상이 썩었다는 둥, 세상은 구제불능이라는 둥 설레발치며 하느님나라를 제 머릿속 상상으로 그려 낸다. 그런데 어쩌랴.... 하느님은 이런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생명까지 바치셨는데....

예수가 광야의 체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인간 욕망 자체를 끊어 내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이 지향하는 가치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만이다’라는 생각에서 자유롭길 바라는 데 예수의 유혹사화의 의미는 강조되어야 한다. 신명기의 하느님은 상선벌악의 하느님이 아니라 모두가 한 분 하느님 안에서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그리하여 모두가 하느님의 생명을 얻어 누리도록 호소하는 하느님이다. ‘쉐마 이스라엘!’ 제발 당신의 말씀을 듣도록 한결같이 채찍과 연민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이 신명기의 하느님이다. 제 기준으로 온통 세상을 갈라 놓고 단죄하고 판단하고 나서 하느님을 찾으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 사랑해 달라 외치는 편협함과 완고함에서 얼른 해방되는 게 광야에서의 체험이 되어야 한다.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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