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인권-배여진]

1800년을 조금 넘어섰을 때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른바 “러다이트 운동”.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그 때에 경제불황과 임금 하락, 고용 감소, 실업자 증가 등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위태로워지자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는 운동을 벌인 것이다. 우리도 알다시피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면서,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노동자들은 기계를 따라 같은 노동을 반복하게끔 된다. 그러면서 노동의 가치는 하락되고, 임금도 하락되고, 노동자의 지위도 함께 하락되며, 실업자가 늘어난다. 기계는 노동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자리에서 쫓겨난 노동자는 빈곤의 굴레로 빠지게 된다. 이에 저항한 것이 바로 “러다이트 운동”이다. 그로부터 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을 상상해본다.

얼마 전, 한 지인이 톨게이트를 지나며 톨게이트 직원에게 ‘하이패스’에 대해 물어보았다. (하이패스는 달리는 차안에서 무선 또는 적외선 통신을 이용하여 통행료를 지불하는 징수시스템이기 때문에 톨게이트 직원이 통행료를 직접 받지 않는다.) 그 직원은 ‘하이패스’ 때문에 지난 달에만 20명의 직원이 해고되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톨게이트’라는 여건 상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지만, 그 짧은 대답 안에 참 많은 이야기들이 녹아 들어있던 것 같다. 자신도 ‘하이패스’에 밀려 언제 해고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사람들의 편리함이 자신에게는 삶이 달려있는 문제라는 것. ‘하이패스’가 ‘바이패스(bye pass)’가 되는 순간이다.

그 뿐일까. 지난 5월 1일부터 서울권역 지하철에서는 전철 종이승차권이 사라지면서 무인매표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이미 서울의 각 지하철역에서는 매표소가 1개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그 결과 기계를 다루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100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걸어 표를 구입하였고, 기계에 이상이 생기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지는 상황이 되곤 하였다.

무인매표기계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매우 불편하다. 그냥 “어느 역이요” 하고 구입하면 되었던 승차권을 기계에서 이걸 누르고 저걸 누르고 돈을 집어넣고 돈을 꺼내고 하는 매우 불편한·귀찮은 과정들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또 구입한 카드승차권은 다시 기계를 통해 500원이라는 보증금을 환불 받아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기계도입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기계는 어린이나 노약자, 장애인 등이 이용하기에 매우 불편해보였다. 도입 초기라 그런지 몰라도 각 기계 근처에는 안내원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럴 바에는 그냥 유인 매표소를 두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무인매표기계를 도입하는 그 의도는 너무나 명백하다. 바로 인력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것은 곧 지하철 역사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해고로 이어질 것이고, 또다시 실업자는 양산된다. 이쯤 되면 1800년대 노동자들이 왜 기계를 부수는 운동을 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야, 공무원도 다 잘려나가고 있는데 도대체 일자리는 어디서 늘린다는 거지?” 친구 왈, “비정규직에서 늘리잖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뒤통수 한 대 시원하게 후려치는 명답이다.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 대신 기계를 들이는 이 시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기계라도 부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온갖 법률들로 노동자들을 잡아가둘 것이니 그러지도 못할 노릇이다. 우리가 흔히 ‘편리함’이라는 이름아래 정말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되짚어 보자. 한 번쯤 ‘의심’하고 지나가보자. 그 ‘의심’ 혹은 ‘비뚤어짐’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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