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배다리축제, 살고 싶은 곳, 살아야 할 곳 “그대로 놔두세요!”

 

오랜만에 배다리가 꿈틀거리며 웃었다.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고 그르렁거리던 차들도 얌전히 한켠으로 비켜선 오후. 꼬맹이들은 자세한 영문은 모른 채 준비된 부스와 이색 놀이감, 먹거리에 신나했다. 어른들은 추억을 떠올리는가하면 사진기를 들이대 사람과 풍경, 분위기를 채집하기 바빴다. 가족단위 나들이객,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들, 가끔은 외국인들도 눈에 잡혔다. 모두들 저마다의 감흥에 빠져 메말랐던 골목을 나비처럼 날라 다녔다.

“적막하던 배다리에 얼마전부터 사람들이 다시 몰리고 있어요. 가게를 찾는 손님부터도 그렇다니까요. 외지인도 많고 카메라를 메고 동네를 구경온 듯한 차림의 사람들이 특히 그래요. 서서히 배다리의 활기가 느껴지고 사람 사는 동네,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아벨서점 곽현숙(59) 주인장의 증언이다. 곽대표의 귀뜸은 두 번째를 맞는 배다리문화축전에서 확연히 느껴졌다. 배다리 책방골목~우각로 사이에서는 8일부터 10일까지 ‘배다리는 ...다?’를 주제로 ‘2009 배다리 문화축전’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지난 8일 오후 3시 스페이스 빔 발효실에서 진행된 개막식을 시작으로 ‘저자와의 만남’, 이 지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원로 영화배우 황정순이 출연한 영화를 상영하는 ‘황정순 영화제’와 ‘황정순과 만남’, ‘책방 전시회-인천책 이야기’, ‘여선교사 합숙소 역사자료전’ 등 각종 전시회, 각종 공연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엇보다 주민의 염원을 담은 배다리 에코파크 개장과 ‘꿀꿀이죽 먹기’ 행사는 배다리만의 생각과 마음을 모아낼 수 있는 독특한 내용이었다. 에코파크는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된 배다리 산업도로 부지를 가리키며 출입이 금지된 이후 주택가에서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아왔었다. 꿀꿀이죽은 6·25전쟁 직후 먹거리가 없었던 시절 미군 부대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 죽처럼 끓여 먹던 것에서 기원했다. 당시 배다리 창영초등학교 인근은 꿀꿀이죽 마을로 불렸다.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는 “알다시피 100년이 넘는 배다리는 인천사와 생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우각로는 서울로 가는 근대의 신작로로 이용됐던 곳입니다. 배다리와 우각로를 통해 사람들이 오고갔고 문물이 소통됐으니 그야말로 만남과 교류의 통로가 바로 이곳인 셈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역사성을 복원하는 것은 물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풍성하게 하고 싶은 꿈을 키우고 있답니다.”라고 말했다.

민대표는 “배다리에 대해 성급한 정의와 결론을 내리기보다 저마다의 경험과 생각들을 풀어놓도록 함으로써 모두의 이야기로 배다리를 풍부하게 채워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행사의 내용만이 아닌 서로의 직접적인 부대낌 속에서 맛보고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배다리 축전에서 진행자와 손님의 경계는 다소 느슨했으며 주민이 구경꾼이기보다 주인에 조금 더 다가가 있는 듯했다. 축전의 의미와 재미를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 행사는 배다리에 대한 남 다른 관심과 애정을 지닌 인천 지역 시민문화예술 단체 및 공간, 활동가들이 배다리를 다양한 체험과 소통, 교류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했다.


배다리에서 34년을 거주하며 ‘박의상실’을 운영해온 박태순(58)씨는 “배다리에 관심을 가져주고 배다리 활성화에 참여하는 많은 단체와 문화·예술인들에게 감사드려요. 요즘 배다리가 달라졌음을 느끼는데 바깥사람들의 출입이 잦아졌고 타 도시, 외국인들이 심심치 않고 거리를 기웃거리는 것을 불 수 있거든요.”라고 반가워했다.

박씨는 이어 “마을이란 우리 삶의 뿌리이자 살아가는 힘이기에 이곳 배다리에서 대를 이어 정착한 사람들도 많고 대부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해요. 배다리가 새 활기를 찾고 서울의 인사동처럼 인천의 인사동,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배다리로 어서 빨리 거듭났으면 좋겠어요.”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네사람들의 아이디어라는 전제로 우각로를 따라 성냥공장을 재현한다든가 국수 만들기부터 끓여먹는 것까지 체험할 수 있는 옛 국수집, 숨은 소리를 찾아내고 가르치는 소리학교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또 그 옛날 배다리에 즐비하던 목공예집들과 대나무공예집들을 복원해 상권도 회복하고 다양한 생활문화체험장으로 쓰면 인기를 끌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에 살다가 이사를 해 연수구에 사는 박영대(49)씨는 축전 소식을 듣고 고향을 찾듯 달려온 이웃이다. 그도 배다리가 인간과 문화, 자연이 상생하는 도시공간으로 꾸며져 인천시민 곁에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축전에 와서 보니까 도로를 막고 뱀처럼 굽은 좁은 도로 곳곳에 재미있는 보물들을 숨겨두었더라고요. 새로운 문화의 거리, 시민이 주인인 거리, 무언가 가능성이 꿈틀거리는 거리를 보았습니다. 그 옛날의 배다리는 대단했잖아요. 가장 번화하고 사람들이 몰리고 주변으로 다양한 놀거리, 즐길거리들이 죽 이어졌죠. 어쩌면 이제 뜻있는 사람들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전혀 다르게 사랑받고 성장하는 배다리를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문화예술의 메카말이죠.”

인천시는 3년전부터 배다리를 가로지르는 산업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구 신흥동 삼익아파트에서 동구 동국제강까지 이어지는 폭 50m의 이 도로가 2011년 완공되면 생활공간의 황폐화는 물론 주변의 근대문화유산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뜻있는 지역주민과 문화예술인들은 배다리의 역사문화를 지키고 이어가야 한다며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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