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연중 기획 1 - 노동] 노동자의 또 다른 죽음 손배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2017년 6개의 주제로 연중 기획을 진행한다. 2월 첫 기획의 주제는 ‘노동’으로 기업의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문제를 다뤘다. – 편집자 주

기사 순서
1. 손배소, ‘효율적’이라는 수단에 노동자는 죽는다
2. 부당해고 철회 요구는 불법 파업
3. 동양시멘트 노조 사례 : 천막 두 동에 50억 2000만 원
4. 노란봉투법을 허하라

“이 천막 두 동이 50억 2000만 원짜리에요.”

서울 광화문 삼표 본사 앞. 이불채와 살림살이를 제외한 공간에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들어가면 5-6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천막 두 동.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이 550여 일째 노숙투쟁을 하는 곳이다. 2월 28일 현재, 동양시멘트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해고된 뒤 꼬박 2년이 지났다.

현재 삼표가 인수한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 받으면서 고용이 불안해지자, 80여 명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2014년 5월 노조를 결성했다. 일자리 보장을 위해서였지만, 노조를 만든 뒤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더 많은 시간 하면서도 연봉은 그 반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시멘트 업계 최초로 사측의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조사를 요청했고, 노동부와 법원은 사측의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노조원들의 정규직 지위를 확인해 줬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않은 사측이 노조원들에게 되돌려 준 것은 100여 명의 해고와 조합원에 대한 손배 약 50억 2000만 원, 가압류 5억 9000만 원이었다.

2015년 2월 17일, 노조가 동양시멘트의 불법 파견과 위장도급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진정을 낸 지 8개월 만에 고용노동부가 위장도급을 인정한 직후 사측은 하청업체였던 동일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더구나 계약 해지를 통보한 업체는 고용노동부가 “실체 없음”으로 판정한 ‘다물제이호’였다.

원청인 동양시멘트가 해고 통보한 날은 공교롭게도 설 전날, 일할 사람이 없어서 공장이 멈추는 것조차 아랑곳 않는 해고였다.

일터를 지키며, 대체인력을 들이겠다는 사측에 '해고자 우선고용'을 요구하던 노조 앞을 가로막은 것은 구사대와 방해금지 가처분이었다. 그리고 유령회사 '다물제이호'는 또다시 해고자들에게 손배가압류를 제기하고, “노조를 탈퇴하면 가압류를 취하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가압류가 진행된 뒤에야 사실을 알게 된 해고자들은 속절없이 통장과 전월세보증금, 임대아파트 임차보증금, 심지어 50만 원인 중고차까지 압류 당했고, 사실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렸다. 2015년 8월부터 노조원들은 서울 광화문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 본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시작했다.

“노조를 하는 입장에서는 정부도 의미가 없어요. 보호막이 되어 주지 않으니까요. 노동부나 법원 판결도 회사가 거부하면 끝이에요.”

서울 삼표 본사 앞 농성 천막에서 만난 동양시멘트지부 안영철 사무국장이 답답한 심경을 털어 놓았다.

지방노동위, 중앙노동위, 법원에서도 위장도급과 불법판결을 내렸지만 회사는 이행강제금만 내면 그만이었다. 체불임금소송에서도 이겨 3년 치 월급 16억 4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지만, 사측은 이 돈을 공탁하고 강제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그리고 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공장에 대체 인력을 들이겠다는 사측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연행, 구속됐고 결국 형을 살았다. 노동부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대가로 사측이 지불한 것은 3차에 걸친 이행강제금 약 12억뿐이었다.

동양시멘트가 노동부 판결에도 복직을 이행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판결 끝에 달린 “회사가 이행하지 않으면 노사가 민사로 해결하라”는 단서 때문이었다.

▲ 안영철 사무국장과 조합원이 지난 2월 7일, 농성천막을 찾은 신학생들을 만나 손배소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현진 기자

“우리의 싸움은 빼앗기고, 짓밟히고, 해고되고, 죽어간 이들을 대신하는 투쟁”

“가압류가 삶을 막아 버렸어요. 실제 손실이 났다면 그것을 끝까지 받아야 하잖아요. 하지만 노조탈퇴를 하거나 근로자지위 확인을 포기하고 하청업체로 들어가면 취하해 주겠다고 하는 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돈으로 가난한 노동자를 압박하고 괴롭히는 수단이라는 증거죠.”

2015년 8월, 가압류가 진행되면서 동양시멘트는 해고자들의 부동산, 채권까지 모두 찾아냈다. 전월세, 임대아파트 거주자들의 집주인에게도 가압류 사실을 통보했다. 그리고 나서 사측은 “진정성 있는 교섭을 하자”고 요청했지만, “정규직 전환 불가, 자회사를 만들어 입사하라”는 요구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서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만 확인한 채 10회에 걸친 교섭은 최종 결렬됐다.

안영철 사무국장은 “결국 가압류를 견디기 힘든 조합원 20여 명은 사측이 제안한 자회사에 지원했다”며, “현장 투쟁으로 2명이 구속되고, 12명은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탈퇴하자 조직력이 약해졌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측의 회유와 협박, 가압류로 인한 어려움으로 처음 84명으로 시작한 노조는 현재 23명만 남았다. 그나마 몇몇은 우울증과 공황장애, 대인기피증으로 노조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거나 생업에 뛰어든 상태다.

안 국장은 “활동 자체가 많이 위축됐다. 자본이 없어 자본과 싸우기 힘들고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각자 생활비를 최대한 줄이고 노조는 후원금을 모아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안영철 사무국장은 손배 금액이 진짜 피해액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판결하는 사법부, 잘못된 법을 만든 입법부뿐 아니라 정말 힘들게 만드는 것은 “뭔가 잘못했으니 손배소 당한다”며 궁금해 하지도 않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행정소송 3건과 민사소송 2건이 남았지만 이미 4번을 노조가 이겼다며, “2년을 싸웠으니, 2년 안에는 복직하지 않겠느냐”고, 애써 희망을 말했다. 또 상식적이지 않은 판결을 하는 사법부보다 ‘나쁜 법’을 만든 입법부가 더 문제라면서, “이 모든 것을 바꿔 보려는 싸움”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버티면 이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쉽지 않다. 소송이 진행되면 기본 4-5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버티는 일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주변에서는 적당히 합의 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바꿀 수 없다는 간절함이 있다. 상식을 바라는 것이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국장은 “우리의 싸움은 빼앗기고, 짓밟히고, 해고되고, 죽어간 이들을 대신하는 투쟁”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노동자고, 자영업자도 대기업의 노동자일 수 있지만 자신이 노동자이고, 그래서 모든 노동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정당한 싸움이지만, ‘너희들의 싸움’, ‘한 사업장의 싸움’이라고 치부하면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 삼표 본사 앞 노조 농성천막. 이 작은 천막 두 동에서 노조원들을 500여 일을 넘겨 손배소에 맞서며 정규직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현재 동양시멘트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회사가 노동위원회와 법원 판결을 수용하고 직접고용 의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라면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약자들의 고통은 이어질 것이고, 더 이상 고통이 지속되지 않도록 회사가 결심해야 한다. 시간은 노동자들의 편이 아니”라고 말했다.

정 신부는, 동양시멘트 노조원들은 공장이 있는 삼척과 본사가 있는 서울을 오가면서 싸우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이 크다면서, “사측은 이 싸움을 장기화하면서 지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노조원들은 그 과정에서 불안감과 박탈감,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상당히 느끼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현 탄핵 정국으로 특히나 노동 이슈들이 묻히고 있어,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면서, “그래서 사회적 관심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많다. 교회 역시 동반, 봉사, 대변의 역할이 있는데, 현재로서 그것만으로 충분한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손배소 문제는 사법적 영역이나 이해 당사자의 문제로 미룰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하고 정치적 해결이 필요하다며, “노동의 문제는 경제 주체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제도적 장치로 해결해야 하고, 간접 고용주인 정부, 국제기구가 개입하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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