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사순시기 담화문

탄핵 판결을 앞두고 시국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반성, 나아갈 방향을 짚은 사순시기 담화문이 나왔다. 몇몇 신자들은 담화문을 보고 “지금 꼭 필요한 말”이라며 반가워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가 사순시기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을 앞두고 담화문을 발표했다. 부제는 ‘헌법재판소의 평결 선고를 기다리며’다.

담화문을 보면 우선 교회의 반성이 눈에 띈다. 유흥식 주교는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유린되는 현실”에서 “교회가 사회교리를 충실히 살아내지 못한 우리의 잘못”을 먼저 반성했다. 이어 사회교리에 입각해 대통령 탄핵 판결을 앞둔 현실에 관해 교회의 입장을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탄핵에 대해 유 주교는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회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가 국민에 의해 올바르게 구현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과 연대하고 탄핵정국 과정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와 화합으로 이끄는 활동에 투신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조세종 위원(디오니시오)은 “지금 꼭 필요한 말이며 솔직하다”고 담화문에 대한 인상을 말했다. 그는 유 주교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헌법 수호를 말한 것을 보고 “분명히 탄핵이 인용돼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또 유 주교는 정권교체만이 아니라 국정교과서, 사드 배치, 한일위안부 합의 등 현 정권의 정책도 바로 잡아야 탄핵정국이 수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위원은 유 주교가 현 정권의 잘못된 결정을 공동선의 관점에서 지적한 것이 마침 3.1절을 앞두고 시의적절하다고 반가워했다. 그는 “유 주교님이 신앙을 개인적 차원, 성당과의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현실 문제와 관련해 짚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 2016년 11월 11일 저녁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선 대전교구 신자들이 촛불을 밝혀 들고 있다. (사진 제공 = 임재근)

이름을 밝히기 원하지 않은 한 대전교구 신자는 담화문이 주교회의가 아닌 교구 차원에서 나온 것을 두고 아쉬워했다. 유흥식 주교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이기도 하다.

그는 “주교회의나 추기경이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왜 가만히 있을까”라고 의아해 하면서 “교회가 한 사건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정국을 신앙의 관점으로 비춰 보고 반성해서 좋았다”고 평했다.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밝힌 그는 “교회가 어떤 구체적 현안이나 사건에 대해 입장을 내면 정치적이고 그 사안에 교리를 끼워 맞추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번 담화는 신앙의 가르침으로 사회문제를 이야기했고, 원색적이지 않아 좋았다”고 덧붙였다.

“교회는 재를 쓰고 허리띠를 동여매며 가슴을 치는 통회의 마음으로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또한 유흥식 주교는 세계 각 나라의 정치 현실이 야만적이고 폭력적으로 흐르는 것을 걱정하며, 교회의 회개와 투신을 촉구했다. 그는 “교회가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살지 못해, 어둠이 빛을 이기는 듯 보이는 착시 현상이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고 반성하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애쓰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유 주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어느 누구도 배제하거나 모함하지 않고 모든 이와 대화하며 일치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강조하며, 한국 교회가 정의와 사랑을 증거하길 기도했다.

조세종 위원은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신자의 도리, 세계에 대한 걱정 등을 유 주교가 한국 실정에 맞게 풀어 줬다고 말했다. 또 정의와 공동선이 피어나면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자비와 사랑이 이뤄진다는 방향성을 짚어 줘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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