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 재의 수요일에는 신자들 이마에 재를 바른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마흔 낮과 마흔 밤

- 닐숨 박춘식


마흔 낮밤, 바람은 북에서 어느 산으로 뛰어가는가
마흔 낮밤, 강물은 남에서 어느 골로 흘러가는가
마흔 낮밤, 새들은 서에서 어느 길로 날아가는가
마흔 낮밤, 사람은 동에서 어느 마을로 걸어가는가
걷다가 넘어지고
달리다가 부서지고 그러면서
하느님의 어린양을 만난다
그리고 십자가로 우뚝 선다, 우리 모두
새하얀 부활을 꿈꾸며 핏빛으로 선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7년 2월 27일 월요일)

재를 만지면서 시작하는 사순시기는, 부활을 만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통과 의례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아시리라 여깁니다. 사순시기는 기억이나 기념이 아니라 나의 몸으로 나의 마음으로 재현시켜야 하는 신비스러운 전례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다부지게 걸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이 시대의 사순시기는 마지막 날 촛불을 켜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밤 촛불을 들고, 이웃집으로 골목으로 큰길로 광장으로 산으로 아파트 단지로 들판으로 바다로 사막으로 걸어가야 하는 촛불입니다. 절망의 십자가가 아니고 희망의 십자가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만큼 참회하는 만큼 환한 빛살을 비추어 주시리라 믿으며,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잊을 수 없는 사순시기를 만들어 가시기를 빕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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