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되는 앎, 중세 정치존재론 - 3] 윌리엄 오캄 1

13세기 영국인들은 '대헌장'을 통해 국가권력자도 법을 지키라는 상식을 소리치기 시작했다. 누구도 법의 외부로 나갈 특권을 가질 수 없다. 너무나 상식 같은 이 외침을 위해 당시 성직자와 시민은 손을 잡고 힘겹게 소리쳤다. 쉽지 않았다. 왕은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교황은 '대헌장'에 참여한 성직자를 징계하였다. 성직자 서임권을 두고 싸우던 국가권력과 교회권력은 '대헌장'의 외침 앞에선 함께 반대했다. 그러나 민중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왕의 독선적 통치가 아닌 ‘의회’가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는 정치 체계를 만들어 갔다.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런 시끄러운 13세기 말 윌리엄 오캄(1285-1349)이 태어났다.

흔히 중세철학에서의 권력이라면 교황과 황제, 즉 교회권력과 국가권력의 다툼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하나의 권력이 더 있다. 바로 민중이다. 민중은 두 권력 사이, 어느 한 권력이 승리할 경우, 아무런 생각 없이 고개 숙이는 존재가 아니다. 비록 강한 권력자의 힘 앞에서 침묵이 강요되어도 민중은 서서히 자신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3세기 영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중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함부로 세금을 올리고, 기득권을 위해 민중을 이용하는 국가권력과 싸웠고, 불의한 국가권력과 싸운 성직자를 징계한 교회권력에 대해서도 분노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능동적 존재가 되어, 의회민주주의라는 근대 국가 틀을 처음으로 만들어 가기 시작한 것도 민중이었다.

어느 영웅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의하여 움직이는 능동적 존재였다. 바로 자신들이 국가와 교회 권력의 참된 주체임을 소리 내기 시작한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13세기 민중이란 말이다. ‘영국인’이란 하나의 보편 속에 단 하나의 권력이 존재하며, 그 단 하나의 권력이 국왕의 의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에 있는 ‘나’라는 개인의 지성과 의지라는 능동적 외침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우쳤다. 하나의 보편 속 무력한 개인이 아니라, 능동적 개인들의 집합이 영국임을 깨우친 것이다. 이러한 민중의 깨우침은 유명론이란 존재론적 입장으로 드러난다. 바로 오캄의 존재론적 입장이다.

▲ 윌리엄 오캄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오캄은 개인, 즉 개체가 참다운 존재라 한다. 여럿에 대하여 서술되는 보편은 그저 개념일 뿐이다. 그 개념이 현실 속 참된 존재자인 개인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 영국인이란 하나의 보편이 가능한 것은 영국인이란 하나의 실재가 객관적으로 존재해서가 아니라, 영국인을 구성하는 많은 개인들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히 오캄은 영국인의 참다운 권력은 국왕이나 교황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민중이 가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개인이 참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캄이 살아가던 시기, 영국인이 이룬 '대헌장'과 그 정신에 따른 의회라는 배경 속에서 오캄의 유명론을 생각하면, 그의 존재론적 입장은 당시 민중이 가진 시대적 정신의 오캄식 발현이다.

오캄을 비롯한 13-14세기 영국의 개인들은 자신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깨우쳤다. 진정 존재하는 것은 바로 자신과 같은 개인임을 깨우쳤다. 이러한 깨우침이 오캄의 유명론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유명론의 논리는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왜 침묵하지 않은 개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개인임을 증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의 참된 주체가 바로 지금 여기 나 자신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오캄 등에 의하여 제기된 공의회우위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외회가 민중을 대변하고, 국가권력자도 법 속에서 정치해야 한다는 논리가 교회에도 적용되었다. 교회란 신자들 모두의 모임이기에, 개별 신자들의 대표로 구성된 공의회가 전체 교회의 축소판이며 대표라 생각했다. 이런 이해에서 교황권이 아닌 공의회가 참다운 교회의 권위이고 권력이라 보았다. 교회에서도 민중은 그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당시 민중의 외침이 오캄에 의하여 유명론으로 드러나고 그의 공의회우위설로 드러났다.

13세기 이후 국가권력과 교회권력 앞에서 그저 실망만 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권력의 주체, 주권자임을 깨우친 13세기 이후 민중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뜻을 소리치려 했다. 이 외침이 국가권력에겐 의회로, 교회권력에겐 공의회로 드러났다. 오늘날 교회는 더 이상 공의회가 교황보다 높다 하지도 않고 교황이 공의회보다 높다 하지도 않는다. 로마 주교인 교황이 주교단 전체와 함께하는 공의회를 통해 최고 권한을 행사한다. 교황 없이 주교단만으로 교황을 구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교황 단 한 사람에 의하여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국가권력에 대해서도 참다운 국가의 주권은 국민이라 믿는다. 상식이다. 이 상식에 도전한다면, 민중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윌리엄 오캄의 유명론과 공의회우위설 그리고 청빈에 대한 논의들은 바로 이 시기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 민중의 외침, 그것의 오캄식 발현이다. 즉 오캄이 살던 시대적 조건 속에서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역사의 중심에 되려는 개인들의 외침이 오캄의 철학이 된다.

21세기 지금 한국의 철학자도 지금 이 땅의 민중이 외치는 그 외침에 고개 돌려서는 안 된다. 지금 여기 이 땅의 울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철학이라면 지금 여기 이 땅에서 힘없는 말장난이 될 뿐이다. 언어 유희일 뿐이다. 참다운 철학은 바로 이렇게 그 시대 민중의 분노와 울음을 녹여 내고 그것을 ‘합리’라는 구조 속에서 드러내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오캄의 유명론은 그저 책상에서 위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살던 13-14세기 영국 민중의 삶이란 배경 속에서 얻어진 것이며, 그 가운데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침묵하지 않는 개인이 역사를 이끈다는 깨우침의 시대, 그 시대 속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유대칠(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논문과 책을 적었다.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한 공부보다 공유를 위한 공부를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작은 고전 세미나와 연구 그리고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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