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수녀의 이콘 응시]

En Cristo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데 온통 남편 자랑과 자식 자랑뿐이다. 행복한 것 같아 다행이다. 자랑할 것이 있다니 참 다행이다 싶다. 돌아오는 길이 무겁지 않았다. 잠시 내가 자랑할 것, 나에게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 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싶었는데 “아!” 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잘 잊어버리고, 숫자 개념도 약하여 같은 계산을 몇 번을 해도 틀리기 일쑤고, 멀쩡히 걸어가다가도 넘어지고, 지나가다가 부딪치고, 센스라고는 바닥이고...무엇 하나 제대로 짝 맞추는 것이 없는, 여러 면에서 참 많이 부족한 나에겐 지금까지의 시간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속고도 속았는지를 모르니깐 그런 말을 한다고 한다. 글쎄다. 많은 일들 안에서 그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였기에 그래도 지금까지 잘 견뎌내지 않았나 싶다. 매 순간 만난 수많은 은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로움을 표하고 싶다.

▲ 요아킴과 성녀 안나 15세기. Recklinghausen, 이콘 박물관


자! 이콘을 바라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이다. 딱딱한 느낌의 두 건물을 잇는 적색 천은 안쪽에서 사랑의 마주침이 일어나고 있음을 제시하면서 서로 포옹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몸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성녀 안나의 달려 간 듯한 발은 성 요아킴의 품 안으로 뛰어 들어간 모습이다. 두 사람의 팔과 볼을 맞댄 포옹이 일치를 표현하는 반면 그녀의 펄럭이는 망토는 님을 만난 그녀의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공중에 떠있는 듯한 단은 공상적인 차원에서 두 사람의 포옹을 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과 녹색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붉은 색의 옷은 사랑 가득한 두 사람의 모습이 놓인 중심부로 시선을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다. 녹색은 요한 묵시록과 낙원의 초원에서 언급된 맑고 깨끗한 바다를 상징하고 있듯 전체적인 분위기를 편안하게 끌어가고 있다.

오늘 혼배미사가 있었다. 몇 년만에 있는 혼배라 성당은 잔치 분위기였다. 조용한 성품의 신부 엄마를 다 아는 성당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으로 축하와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제대 앞의 꽃꽂이 하는 자매들은 좀 더 아름답게 꾸미려 정성을 다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이들은 수고로움도 잊고 열심히 일하였다.

미사를 참례하면서 하느님 앞에 혼인 서약을 하는 젊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서로 사랑하여 한몸이 되기를 바라며 제대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참 용감해 보였다. 이제 이 부부가 남은 것은 자신들의 사랑을 키워 가는 것인데 어디 인생이란 기쁨과 행복만 있겠는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고통과 아픔도 이제는 함께 헤쳐 나갈 운명이고 기도 안에서 지혜를 청하며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부부가 조바심내지 않고 배워 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다시 이콘을 바라보자.
진정한 사랑의 만남은 바로 이렇게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처럼 서로에게 가까운 것인가 보다. 이콘에서 두 사람의 포옹이 중심에 있듯 결혼이라는 결합은 이렇게 모든 공간의 중심에 있다. 서로가 가진 부족함을 기다려 주고 채워주는 것, 그 안에서 사랑의 기쁨도 바라보고 다가올 미래의 그 무엇도 용감히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결혼이라는 이콘이 아닐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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