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103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103일. 여기까지 오는데 103일이 걸렸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 생명의 가치가 존엄성이 그대로 인정되고,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남태령을 넘어선 것은 그 마음과 함께하는 수많은 평화의 마음이었습니다.

<생명의 마음을 과천역을 출발하며>
지난 103일간 아침 발걸음은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한 아침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늘 하루를 함께 하겠다는 연락이 있었지만, 하늘에서는 여전히 굵은 빗방울이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가 온 다음 세상의 풍경은 말할 수 없이 말고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빗속에서 만날 순례의 인연들을 만날 설레임이 가득하였습니다.

평일보다 30분 이른 시간. 과천역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분들이 하루 순례길에 동참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혹은 단체모임에서 혹은 종교모임에서 속속들이 아침길에 동참하였고, 100여명의 순례자들이 과천역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밤새 내리고도 여전히 대지에 생명수를 공급하기위한 빗물은 계속 내리고, 도로는 빗물로 흥건합니다. 손을 내리면 차가운 밤새 차가워진 도로에는 빗물이 고여 있고,ㅣ 무심한 징소리 한번 울리면 순례 참여자들 한줌의 망설임 없이 도로에 몸을 철퍼덕 던집니다. 우비는 내리는 빗물을 막아줄 뿐, 도로에 고인 빗물이 몸으로 파고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순례 참여자들 동요 없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도 평화의 마음을 부르고, 생명의 손길을 따라 막힘없이 흐르는 바람처럼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찾아 갈 뿐입니다. 길을 가야 할 때 망설임 없이 한 발을 내딪는 것으로 시작이 있고, 그 한걸음을 멈추는 것으로 끝이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 매한가지 마음이고. 시작이 있기에 끝이 있을 뿐입니다.

빗속에서 들리는 차량 소리는 더욱 크게 귓가를 울리지만, 토요일일 아침인지라 지나는 차량은 별로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정토회의 법륜스님 아무런 비옷도 없이 하루를 함께 시작하였고, 그 모습을 보신 전종훈 신부님 혼잣말로 "아이고.. 정말 고맙고 죄송스럽네.." 하실 뿐입니다. 법륜스님 역시 말없이 환한 미소로 주변 분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눌 뿐이었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속에서 시작한 103일의 오전 순례는 과천체육공원의 끝자락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사람의 길을 이야기하는 관문체육공원>
한마디 구호 없었습니다. 다만 순례의 마음을 나눌 뿐이었습니다. 관문체육공원의 들머리에서 진행된 "순례단 서울 순례 맞이 행사"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자리해 계셨고, 순례단의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공유하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지난 1년간의 세상사를 볼 때 우리 사회는 말로만 성찰을 이야기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과 같이 경쟁과 속도전으로 세상을 보고 운영하는 것은 안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우리 스스로 돌아보고, 순례단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정토회의 지도법사인신 법륜스님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1) 다름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다른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2) 남의 재산을 훔쳐서는 안 된다. 남의 재산도 나의 재산과 같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3)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남도 나와 같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4)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된다. 진실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래야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뉘우치고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돌아오지 못할 경우 옆에서 말해야 한다. 안된다고. 그리고 그런 말을 알아듣는 것이 소통이다. 사람답게 가는 길을 가지 않는 것. 국민 다수가 원하고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현 정부는 홀로 계속 간다'면서 우리의 모습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법륜스님은 "어진 부모는 스스로의 종아리에 채찍질을 해서 아이를 교육시키듯이, 세분 성직자의 기도순례는 백성의 아픔을 참회하기 위해 스스로 자기 종아리를 때리며 참회하고 있는 순례이며, 이나라 지도자들의 죄를 대신 지고 가는 순례"라면서 "비록 정치가 소수를 위한 정치이고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알게 모르게 가해자이며, 모두를 위한 정치를 만들지 못한 것에 스스로 참회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의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한 문제점지적과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의 '노동운동에 대한 성찰적 고백'도 자리를 빛내었으며, 희생자들에게 덧쒸워진 오명을 벗기고 명예와 진실을 간절히 요구하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서글픈 호소도 있었습니다. 계속하여 박남준 시인의 시낭송과 김영식 신부님의 "오체투지 순례단이 서울 순례를 시작하며 드리는 글" 낭독이 진행되었습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지만, 돗자리 하나 없이 자리에 앉은 시민들 점심시간의 허기짐도 잊은채 자리를 함께 하였고, 그 길에서 서로의 온기로 몸을 녹이는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평화의 마음으로 남태령을 넘어서며>
맞이행사 이후 본격적으로 과천동 동사무소 앞에서 순례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길에 늘어선 대열이 흥건한 빗물을 몸으로 파고들지만, 소리 하나 없는 정적만이 감돌고 정기적으로 징소리와 그에 따라 몸을 곧추세우고 나와 세상을 보려는 바른 시선과 대지에 몸을 던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스님과 신부님, 수녀님과 교무님, 목사님 등 성직자뿐만 아니라 한손에는 엄마 손을 잡고 또 다른 손에는 우산을 잡고 나온 아이도 그저 침묵어린 행진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도로에는 빗물이 흥건하여 몸을 던질 때마다 물이 튀어오르고 온 몸이 이미 젖어 들었지만, 아침부터 비를 맞은 몸은 차가움에 떨리지만 함께하는 순례길은 따스함이 넘치기만 하였습니다.

남태령 고개마루 정상을 앞두고 진행된 점심시간. 참가자들은 누군가가 가지고 온 김밤과 주먹밥, 라면 등으로 요기를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몸이 차가와지면 함께 껴안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나누고, 따스한 차를 함께 권하면서 나누었습니다. 오랜만에 길에 나온 유모차는 순례자들의 대열을 함께 따르고, 잠든 아이를 가슴에 품은 아이의 부모는 말없이 우산을 들고 대열을 함께 갈 뿐입니다.

오체투지라는 형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희망을 만들고,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의 마음을 나눌 뿐이었습니다.

남태령 고개마루 정상. 여기까지 103일이 걸렸습니다. 300㎞의 거리를 오는데 103일이 걸렸습니다. 마음에는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 흘러가고, 그 길에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시민들의 간절한 아픔을 보았기에 눈물도 날 법 하련만, 세분 성직자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습니다. 이곳이 끝이 아니고 우리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순례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하여도 그 길에 함게 나누었던 마음은 계속 터져 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서울 순례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의 당신을 만나겠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의 하악단을 출발하여 계룡산의 중악단을 경유하여, 세상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보던 순례길. 그 길에서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 할지라도 소중히 하며 진행된 순례길. 그 순례길이 남태령을 넘어서서 이제 서울 구간의 순례를 시작합니다. 높디 높다란 빌딩이 시선들에 가득 들어오지만, 아무런 감동을 찾지 받지 못하는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말없이 진행되는 순례길은 여전히 남태령을 넘어 한 걸음 한 걸음 도심을 향하며, 서울 구간의 발걸음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비록 첫 구간의 발걸음이 경찰의 억지어린 행동에 아쉬움이 많이 만았지만, 우리의 평화를 기원하는 발걸음은 계속 될 것입니다.

온 세상과 뭇생명의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립과 갈등, 사람과 자연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운 생명공동체를 기원하는 발걸음. 그곳에 경찰방패까지 동원할 줄은 생각도 못하였지만, 그 모습 역시 우리가 감내하여야 할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 현실을 만든 것 역시 우리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폭력으로 맞서는 처연한 자들의 두려움 섞인 몸짓을 우리는 역시 연민의 시선과 평화로운 몸짓으로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103일을 이어온 기도 순례. 순례단은 그 길을 지금까지 이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평온하게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길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빛을 냈지만, 여전히 희망을 찾는 당신을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정말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다만 그 자취를 눈과 마음으로 감사하고 고맙게 두고 두고 기억하겠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17일(일) : 사당역 인근(시작) - 용산구 서빙고동 이촌지하차도 입구(종료)
● 5월 18일(월) : 이촌 지하차도 입구(시작) - 용산로 용산2가 국민연금공단 맞은편
● 5월 19일(화) : 휴식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박영언(과천), 과천지역시민사회단체, 815평화행동단,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하백지화국민행동, 까리따스 수녀원 등에서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16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