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102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과천정부종합청사를 바라봅니다. 한마디 말 없이 바라본 시선도 잠시, 다시 나를 낮추어 기도합니다. 징소리 한번 울리면 다시 몸을 곧추세워 정부를 바라봅니다. 108번의 징이 울리고, 다시 뒤돌아 길을 떠납니다. 다만 간절한 기도의 마음이 그들에게도 전해지기를 서원할 따름입니다.

<과천정부청사에서의 108배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인 108배가 진행되었습니다. 과천정부청사 정문이 바라보이는 도로 위. 108배 기도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내 자신의 삶속에서 어리석음과 편리함을 위해 버려지고 훼손되었을 뭇생명에 대한 참회이며, 이명박 정부가 부디 생각을 바꾸어 생명과 평화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간절한 소망의 발원 기도였습니다.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108배의 기도를 정부청사 앞의 도로에서 진행하는 신부님도, 부모를 따라 나선 꼬마아이도,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이를 바라보던 누구나 눈시울이 붉어지고, 지나는 시민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볼 뿐입니다. 다만 징소리 한번 울릴 때마다 자신의 몸을 낮추어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할 뿐입니다. 구호 하나 없는 108배의 기도는 역설적으로 소리하나 없는 거대한 함성이었습니다.

정부와 정치인이 국민을 무시하는 나라, 남과 북의 대립이 정당시되는 나라, 시대에 낡은 속도전과 공사장 해머소리를 강조하는 나라, 아이들조차 경쟁의 질서에 내모는 나라, 낮은 자의 간절한 소리는 무시하고 특정 집단을 위한 정책이 난무하는 나라, 정부정책 홍보라는 미명아래 언론 통제가 너무나 당연히 되는 나라, 이제는 대학 교육조차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결정되는 나라, 국민의 생명수를 놓고 삽질 공사를 하는 나라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통합 되어 어려운 시대의 상황을 극복해야 하지만, 오히려 정부 스스로 소통 부재의 시대는 자신의 입장에 따라 뿔뿔이 갈라진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어려운 시대적인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희망을 찾기 위해 간절한 지극 정성의 기도로 천제를 올렸듯이, 우리는 이제 누구를 바라보며 원망을 하고 있거나, 특정집단을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희망을 찾겠다는 절대적인 서원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정부청사 앞에서의 108배 기도는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아니라 주인 된 삶으로 살겠다는 서약'이며, 동시에 '제발 이 땅의 사람과 생명과 평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명박 정부'가 되도록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기도일 따름입니다.

<내가 먼저 평화를 이야기하자>
순례단은 오늘 하루 일정을 통해 과천 시내를 경유하고,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사람과 자연이 살 수 있는 나라, 평화가 온전히 함께하는 세상'을 위한 108배를 진행하였습니다. 하루 일정에는 과천지역 사회단체 및 시민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이제 내일 16일(토) 일정을 통해 과천을 벗어나 서울 구간의 순례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른 아침 안양과 과천지역의 경계 지점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도로 위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몸을 철퍼덕 던집니다. 기도를 하는 모양새와 발걸음 하나 같지 않습니다. 저마다 살아온 여정에 따라, 저마다 진행하는 마음에 따라 모양이 다릅니다. 하지만 세상의 생명과 평화를 구하는 간절한 소망은 모두 같습니다. 부모를 따라 나선 체험학습 왔노라던 초등학생은 어느새 엄마보다 더 진지한 모습으로 기도를 하고, 잠깐의 쉬는 시간이면 참가자들 말이 없이 저마다의 생각에 몰두할 따름입니다.

과천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 곳곳에 오체투지 순례단을 환영하는 과천지역 사회단체의 현수막들이 걸려있어 새롭습니다. 순례단이 오는 길목에 일일이 현수막을 걸기 위해 수고하셨을 지역 분들의 마음에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 과천 시민이 생명과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기 바라지만, 그 전에 내 마음부터 닦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참여 했다”고 하는 서형원 과천 시의원. “자연과 인간이 서로 화해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이 생명의 길이다. 과천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은 반대한다. 자연만 망치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이 파괴되어 화해상생의 길마저 끊어지기 때문이다”고 하시고 “근본적인 문제점을 따지자면 ‘무슨 수를 쓰던 돈을 많이 벌면 된다’는 것이 문제다. 내일, 이웃, 자연이 없는, 말 그대로 졸부나라가 되고 있지 않느냐”며 걱정입니다. 서형원 시의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는 가치에 구애 받지 말고, 내 스스로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다면 이것이 사람의 길이다.”고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과천성당에서 오신 박신영 님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쌓아놓은 공적을 갈아 업고 다시 새롭게 개발하고, 또 정권이 바뀌면 다시 부수고... 그래서 실질적 밑거름이 없는 것 같다.”며, “희생하는 삶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그리고 어느 단체 건 한 사람의 희생으로 화목할 수 있습니다. 희생이란 오체투지처럼 자신을 낮추고 성찰하는 것이다”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자본, 제국, 폭력의 길이 아닌 사람, 생명, 평화의 새로운 길>
시 경계지점에서 시작한 순례길이 점심 무렵에 과천 도심지 초입인 '에어드리'라는 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점심 식사 이후 공원 중심부에서 원탁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지역이 과천이다보니 과천지역의 사회 현안이 저마다 주요 관심사로 등장했습니다. 이곳 역시 '사람과 공동체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자본과 이윤 논리가 지배하는 재건축과 재개발'에 대한 성토가 한창이었습니다. 어느 지역을 가든 최근 사회적 현안은 역시 '원주민이 없는 재개발'이 논란거리입니다.

서 의원은 “25년 전 과천은 자연녹지공원이 풍부하여 생명이 살아 있는 동네였는데, 최근은 전원주택 등 개발이 초고속으로 진행되면서 집값은 비싸지지만 살기 싫고 급기야 망하는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고 걱정합니다. 과천 지역 참가자들 대부분이 과천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강창국 님은 "과천시은 아이, 노인들의 천국이라고 했는데 요즈음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살면서 집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다. 저의 선택권이 아닌 사회제도에 의해 거주 문제가 좌지우지 되는 것에 안타깝다. 그렇다고 해서 부자도 과히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김형탁 님은 "과천 재개발 기본계획이 나왔는데 2020년까지 과천이 아파트 숲으로 변한다고 한다. 공동체 정신이 없어지고 있다"고 걱정하시고, 황순식 님은 "과천은 아름다운 단지가 많다. 자본의 논리로 바꾸어 가면서 살아가는 가치가 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고 합니다.

"언제 삽질이 끝날지 모르겠다"는 이희정 참가자의 걱정이 개인의 걱정이 아니라 사회적이 걱정거리입니다. '삽질'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두가 되어버린 사회. 우리의 미래는 아닐 것입니다.

과천정보화도서관에서 시작한 오후 순례길. 점심시간에 많은 분들이 순례길에 함께 동참했고,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는 '사람과 생명, 평화를 염원하는 108 기도'가 진행되었습니다. "경제가 발전되어 더 잘 살게 되었다는 세상에서 또다시 사람과 생명 평화를 부르짖어야 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는 진위향 참가자의 말씀도, "오체투지 같은 기도가 가난하고 상처받는 아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박신영 참가자의 말씀도 기억되는 오후 순례였습니다.

과천에서 가장 혼잡스럽다는 과천정부청사 앞을 지나 중앙공원 인근 과천역 6번출구에 도착한 순례단. "자본, 제국, 폭력의 길이 아닌 사람, 생명, 평화의 새로운 길로 가는 것이 좋아 놀러왔다"는 최광식님의 말씀처럼 모두 환한 웃음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제 순례단은 16일 오전 순례를 통해 과천 지역을 지나고, 오후 남태령 구간을 통해 서울 순례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조환철(기독교농촌개발원) / 김만종 목사 / 이효재(대전) / 서형원(과천) / 슬픈바다(산본) / 김혜영(수지) / 박신영(과천성당) / 김명석(용인) / 추경숙 외 1명 / 백승순(과천환경운동연합) / 박미봉(동화읽는어른모임) / 정우록(서울) / 최광식(인천) / 김태경 외 2명(용화사) / 양기석 신부 외 5명(과천성당) / 오진화 외 4명(과천 품앗이) / 길상득 외 2명(안양) 등이 참석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16일(토) : 과천 중앙공원 앞(시작) - 정각사 이후 사당역 인근(종료)
● 5월 17일(일) : 사당역 인근(시작) - 용산구 서빙고동 이촌지하차도 입구(종료)
● 5월 18일(월) : 이촌 지하차도 입구(시작) - 용산로 용산2가 국민연금공단 맞은편
● 5월 19일(화) : 휴식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관미스님, 김포 용화사, 무명 행인1, 무명 행인2, 과천성당, 데레사 등이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15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