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걸음 - 김다혜]

엔도 슈사쿠 문학관을 지나서 나가사키 시내로 향하는 길은 조금 긴 해변 길이다.

운전을 하며 가는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는 비를 보며 똑같은 날씨에 방문했던 나가사키 시내보다 조금 서북쪽에 있는 히라도라는 섬이 생각났다.

▲ 비 오는 히라도 섬 성당 안 사무실. ⓒ김다혜

처음 그 성당에 들어갔을 때, 사무실은 참 따스했고, 관광객도 없는 한적한 평일 오전에 찾아온 나를 사무실 사람들은 반가움 반, 신기함 반으로 맞아 주었다.

난로에서 끓고 있던 따스한 우롱차 한 잔을 받아 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몸을 녹였다.

▲ 히라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성당. ⓒ김다혜

이 성당은 히라도에 찾아온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상륙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동네는 한적하고 성당 주위에 절과 사찰들이 많은데, 하비에르 성당은 그런 절들과 조화롭게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 절대로 그들과 다름을 주장하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열린 마음이 느껴지는 성당이다.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김다혜

본당 신부님까지 손수 나오셨다.

설명보다는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게 어떠냐는 말씀을 해 주시며, 사제관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챙겨 주셨다.

▲ 사제관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김다혜

신발을 보고 사제의 삶이 떠올랐다.

모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낮은 마음으로 사는 그들의 삶.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여행을 떠나게 된 건 하느님과의 관계를 돈돈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다.

고요한 시간을 갖는 게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잠깐이지만 행복한 묵상을 했다.

▲ 성당 고해소에 정갈하게 놓여 있는 영대. ⓒ김다혜

▲ 신부님은 안 계셨지만 고해소에서 잠시 앉아 기도하였다. ⓒ김다혜

성당을 나오다 습득한 날짜와 시간이 정성스럽게 적혀 있는 분실물 알림 글을 보았다.

단번에 이 성당의 신자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내게는 사소하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생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일지 모른다는 마음에

볼펜으로 꼭꼭 눌러쓴 안내문.

마음을 담아 가고자 사진에 담는다.

▲ 미사 주보함 근처에 있는 분실물 알림 글. ⓒ김다혜

마당으로 나오니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12시 종소리가 들렸다.

궂은 날씨에도 찾아와 주어 고맙다는 하느님의 선물 같아 내 마음은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요즘은 듣기 힘든 종소리.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를 한참 듣다가 들어간 성물방에서

한국에서 왔냐며 반갑게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자매님.

예뻐서 만지는 것마다 친절히 설명해 주시고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묵주도 보여 주셨던 분.

날씨가 궂은데 조심하고 좋은 길이 되면 좋겠다고 인사해 주셨다.

▲ 성당의 성물방. 다른 성지보다는 제법 큰 성물방. 그래도 소박하다. ⓒ김다혜

여행지에서 만나는 성당은 늘 반가움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나를 늘 지켜 주는 주님을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나가사키 시내로 조용히 달려가고 있었다.

 

 
 

김다혜(로사)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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