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오체투지단을 서울에서 맞으며, 시인 박남준

 

 

 

 

 

 

 

 

 

 

 

 

 

어린 찻잎이 화염 불길의 솥 안에서
온몸으로 덖어지며
뼈마디마다 비틀리고 말라가서야
향기로운 찻잎으로 거듭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고통 속에 엎드려 보았습니까
몸 던져 보았습니까

여기 이 땅에서 가장 어리석은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 세상에서 참으로 잔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 지금껏 눈 뜨고 차마 지켜볼 수 없어서
한번 따라나서지 않았습니다
자갈길의 비탈진 내리막길을,
아스팔트와 시멘트, 한포기의 풀도 품어 주지 않는
푹푹 햇살에 달아오른 오르막길을 숨 가쁘게 걸어온 이여,
진창의 젖은 길을 기어온 이여, 오체투지로 온 이여
이 땅은 내내 여전합니다
경전은 다만 경전 속에 머물고
붉은 네온사인 어지럽도록 즐비한 교회의 말씀은
거짓구원을 팔아 탐욕의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변함없습니다
케이블카를 놓아 지리산과 한라산을 다 죽이겠다고
4대강을 파헤쳐 생명의 강을 끝내 씨 몰살 시키고야말겠다는
이명박정권의 위선과 기만은 날로 서슬 푸르러져서
용산 참사도 아랑곳 않습니다
그리하여 총칼과 광기, 야만의 전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상의 곳곳에 횡횡하며 치유할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의
거대한 묘비명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람의 길을 찾아 지리산 노고단에 엎드려 길을 물었던 이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
계룡산 중악단에 무릎 꿇고 생명의 기도를 올렸던 이여
가장 느리고 낮게 엎드린 걸음으로 인해
평화로 가는 높고 반짝이는 길을 걸어오신 이들이여
한 잎의 어린 찻잎이 뜨거운 솥 안에 던져져
초록의 향기로움 세상에 전하듯이
한점 티끌의 불씨가 촛불을 밝혀 도사린 어둠을 물리치듯이
생명과 평화로 가는 걸음걸음 이렇게 이어질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로 인해 마침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살아서는 결코 끝나지 않을 멀고 먼 걸음 남아있으나
고맙습니다 참 애쓰셨습니다
이 땅의 한없이 못난 한 시인의 이름으로
당신들께 무릎 꿇습니다
오체투지로 엎드립니다

시인 박남준씨가 5월 16일 서울로 입성하는 오체투지순례단을 맞으며 시를 낭송하며 그들의 마음에 합하고 있다. 

시인 박남준씨는 1984년 월간시인에 '할메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로 등단했고, 대표적 시집으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박남준 산방일기>, <꽃이 진다 꽃이 핀다>, <생명, 그 나무에 새긴 이름> 등이 있다. '악양편지'(http://parknamjoon.com) 라는 박남준 시인의 집에서 그를 더 가까이 만나볼 수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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