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32]

아이들 예방접종만 안 시켜도 큰일 날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세상이다. 건강검진만이 암을 예방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사들의 경고가 진리인 양 받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왜, 밥상이 혼탁해지고 있는 데는 이처럼 무관심할까?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날마다 마주하는 밥상부터 점검하고,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먹고 있는 것들이 과연 먹을 만한 것들인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며칠 전, 마을에 행사가 있어서 마을회관에 가서 음식 준비를 도왔다.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걸 알아 버렸다. 할머니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미료를 너무 많이 쓰시는 거다. 떡국에 간을 맞출 때도, 고기 양념을 할 때도, 무냉국을 할 때도, 조미료는 빠지는 데가 없었다.(조미료가 워낙 다양한 방식의 상품으로 개발되어 있으니 갖가지 음식에 모두 적용이 가능하다.)

"그냥 국간장으로 간하면 안 돼요?"

"그래도 맛 낼라믄 이런 거 째깐씩 쳐야 써."

조미료로 내는 감칠맛은 이미 진작에 할머니들 입맛을 점령해 버린 터라 쫄병인 내가 그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그뿐인가.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동그란 쌀과자를 줄 때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솔직히 나는 시골 마을에서 한결같이 사랑을 받고 있는 동그란 쌀과자에 아주 불만이 많다. 과자에 들어 있는 각종 유해물질과 첨가물은 뒤로 하더라도 쌀농사짓는 농민으로서 수입산 쌀로 만든 과자를 사 먹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왜냐, 할머니들은 과자는 해로워도 쌀과자는 아무렇지 않다는(어쩌면 건강에 좋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계시니까. 게다가 과자 앞에서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우리 집 아이들이 너무 애처롭기도 해서 '어쩌다 한 번인데 뭐'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조미료 듬뿍 떡국의 간을 볼 때도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국물을 입에 넣었다.

하지만 마음속은 몹시 불편했다. 아는 게 병이라고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우리들의 밥상을 쥐고 흔드는 어두운 세력과 그 힘을 떠올리면 아무렇지 않게 숟가락을 들 수가 없는 것이다. 다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있어도 마음 편하게 밥맛을 음미할 수 없는 이 슬픔!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 홀로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 외로움! 그날 나는 밥상 앞에서 '개밥의 도토리'가 된 기분으로 '밥상은 혁명이구나! 진정한 혁명은 밥상에 있어!' 하고 되뇌었다. 나의 경쟁 상대가 손맛 좋고 살림 잘하는 다른 집 부엌데기가 아니라 내 입맛을 좌지우지하려고 드는 거대 식품회사이고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직시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다짐과는 영 딴판으로 그날 마을 행사(농협 조합원 대상 좌담회)에서는 일종의 조폭 농민 교육(?)이 이루어졌다. '쌀 수매는 땡땡 품종의 나락만을 받는다. 그러니 그것만 심어라. 육묘장 뒀다 뭐 하냐. 못자리는 되도록 육묘장에서 사다 써라. 나락 농사에 필요한 영양제, 비료, 농약, 상토, 퇴비... 농협에서 사다 쓰면 적립이 되니까 이익이다. 많아 사라. 마트 구매도 좀 더 활성화시키자. 더 많이 사서 더 풍성한 식탁을 꾸려라. 뭐니 뭐니 해도 대출 이익이 가장 크다. 대출 많이 해라.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대출도 환영한다.'는 식의 이야기.... 농협 간부의 목소리가 어쩐지 입담 좋은 약장수의 사탕발림같이 느껴져서 등골이 오싹했다.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농민의 삶, 농업이 갈 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매출 극대화에 혈안이 되어 농사도 농민도 그저 상품의 일부나 소비의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밥상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좌담회 시간 내내 내 머릿속은 아주 복잡했다. 마구잡이로 뒤엉켜 버린 실타래의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실을 풀어 가야 하나 고민하는 형국이랄까? 헌데, 나만 괴로웠다. 전체 분위기는 몹시 화기애애했고 다들 웃고 있었다. 농협 직원이 가르쳐 준 "99! 88! (99세까지! 팔팔하게!)"라는 구호를 외치면서....(오래오래 살면서 팔팔하게 소비 생활을 유지하라는 건가? 시들 때는 시들어야 자연 아닌가?)

 

▲ 올해 대보름 밥상. 콩나물 기른 걸로 콩나물국 끓이고 고사리, 호박고지, 도라지 세 가지 나물을 했다. 나락 잘 여물라고 꼬막도 상에 올리고, 찹쌀에 팥, 은행, 대추, 밤 넣어 약밥까지.... '애 셋 달고 힘들었지? 이만하면 훌륭하네' 내가 나를 칭찬해 주었다. ⓒ정청라

이런 이야기를 나 혼자 품고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해서 신랑에게 털어놓을까 했지만 '그것 봐라. 그런 자리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해서 그만두었다. 우리 신랑이야 애저녁에 '독락'(獨樂)하기를 결심한 사람이다. 먹을거리를 비롯하여 세상 모든 일이 뒤엉킬 대로 뒤엉켰는데 거기에 뭘 바라냐, 우리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살아야지 별 수 있냐는 식인 거다. 반면에 나는 세상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 슬며시 다가섰다가 상처 받고 돌아설 때가 많다. 돌아서서 후회하지만 그래도 이어져야 한다고 느낀다. 내 삶이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 희귀생명체 신세라 해도 어찌 되었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그리고 끝까지 사람에 대한 희망만은 놓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튼 신랑에게는 말 못하고 아이들을 앞에 놓고 주저리주저리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마침 다랑이가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먹고 와서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하길래 이때다 하고 말이다.)

"얘들아, 너희 몸은 맑아서 마녀 할머니가 만든 음식이 들어오면 금방 알아차리는 거야. 마녀 할머니가 만든 음식은 입은 사로잡을지 몰라도 몸에 들어가면 몸이 싫어하거든. 그래서 아픈 것으로 신호를 보내는 거야. '나 이거 싫어, 이거 독이야.'하고 말이야. 몸이 싫다고 말한다는 건 그만큼 건강하다는 거지. 그런데 몸이 신호를 보내도 계속 모르는 척하면 그 독이 쌓이고 쌓여서 큰 병이 된다. 병이 들면 그때부터는 마녀 할머니가 만든 음식만 먹고 싶어지고, 그러다가 결국 잡아먹히는 거야."

"엄마, 그럼 할머니가 준 과자도 마녀 할머니가 만든 거야?"

"과자 맛이 어떻디? 입에서 살살 녹고 달콤하지? 자꾸자꾸 먹고 싶지? 밖에서 사 먹는 건 대부분 마녀 할머니가 만든 거라고 볼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먹을 때는 맛있게 고맙게 먹지만, 그게 먹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건 알고 먹어야지. 몸에 쓰레기가 들어가면 몸이 어떻게 될까? 청소하느라 고생을 하겠지? 그러니까 먹더라도 알고 먹으라고.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도 잘 살펴보고...."

아이들에게 절대 먹지 말라고는 말을 못했다. 그러다 보면 세상과의 마주침 자체가 힘겨운 시련이 될 테니까. 다만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알면, 그들의 몸이 알아서 갈 길로 인도하지 않을까? 물론 아이들 몸에 길이 나고 입맛이 자리 잡힐 때까지는 엄마인 내 역할이 아주 중요하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을회관 다녀와서 풀이 죽은 듯 쓰러져 있던 나는 더욱 치열해진 전투정신으로 날을 세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혁명하는 기분으로, 토종 씨앗만큼이나 보배로운 나만의 밥상을 차려 내기 위하여!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