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100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지리산 노고단 앞에 길이 높였고, 그 길을 따라 100일을 왔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수많은 이름 없는 주인공들을 만났고 희망을 나누려 했습니다. 그 100일이 하루 같았고, 때로는 하루가 100일 같았습니다. 그 길 따라 생명과 평화를 나누고자 하였던 수많은 마음들이 만나고 헤어졌고, 순례단은 다시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희망을 이야기하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나를 낮추어 세상을 바르게 보려는 기도 순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100일의 발걸음>
아직도 많은 거리를 가야 할 기도 순례지만, 오늘 아침은 조금 특별한 하루였습니다. 어느덧 기도 순례길이 100일에 달하였기 때문입니다. 100일. 참 많은 길을 왔습니다. 2008년 순례를 통해 160여㎞를 왔고, 이제 2009년은 현재까지 약 130여㎞의 길을 왔습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모습으로 나를 낮추어, 가장 작은 생명의 소리조차 귀 기울이겠다는 약속으로, 하루를 백일 같이 온 듯 하고, 100일을 하루 같이 달려온 듯 합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구례 천은사 내려오는 길, 경사진 길을 따라 몸을 거꾸로 놓이듯이 내려오면서 언제 이 길을 가나 하는 생각도 잠시, 어느새 서울로 넘어가는 마지막 고개길인 남태령 고개가 얼마 남지 않은 일정으로 다가왔습니다.

2008년 9월 늦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지리산 노고단 푸른 하늘을 뒤로 하고 기도 순례의 첫 발걸음을 디뎠으나, 이제 어느새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어 또 다시 여름의 문턱에 달하였고, 다시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같은 하늘 같은 땅이지만 해와 달이 시간의 흐름을 말하고, 순례 참여자들과 부끄러운 세상사를 이야기하면서 세월 흐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여전히 소통 부재의 시대를 아파하고, 사람의 소리를 그리워하며, 생명의 온전함이 평화로운 세상을 찾고 있습니다.

<100일의 아침>
100일을 지나왔지만 하루 하루 기도의 발걸음은 초심을 잊지 않고, 단 한번의 기도에 온 마음을 담아 우리 사회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습니다. 의왕시 고천초등학교 4거리에 다시 모인 기도순례길. 출발장소 수정 공지가 늦은 관계로 많은 분들이 아침부터 혼란스러웠습니다. 세분 성직자는 100일의 아침이라지만 매일 같은 모습으로 하루 여정이 여전히 설레이고, 엄마 따라 길을 나선 꼬마아이는 어른들의 순례길이 무슨 일인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잠깐의 나눔의 시간 이후 길을 나서자마자 도로에는 여전히 많은 차량 분주히 움직입니다. 오늘은 안양 지역의 시민들이 함께 기도 순례길을 시작하였습니다. 출발하자마자 도로에서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순례단의 선두 인도 차량 옆으로 차량 하나 다가와 식수를 전달해주셨습니다. 도로상에서 생수 박스 옮기는 모습인데, 차량 다니는 도로이다 보니 마음 급하기만 합니다.

오늘 아침부터 하루를 함께 하신 조환철 선생님은 기독교장로회에서 운영하는 인턴과정기관인 기독교농촌개발원에 계시는데, “기독교농촌개발원은 자신이 살아갈 방향에 대해 살필 수 있고, 일과 농사,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행하면서 목사의 길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조 선생님은 “타 종교와 함께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또 불교와 가톨릭의 수행, 기도의 모습을 보고 기독교인인 저 자신을 비춰보고 여러 가지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했다”고 합니다. 조 선생님은 “우리 사회의 생명가치는 애완용 동물이나 생명 상품화에 맞춰있다”고 안타까워하시고, “생명과 생태 의식에 대한 무관심 극복”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셨습니다. 이 문제의식은 비단 조 선생님만의 문제의식은 아닐 듯 합니다. ‘녹색’의 개념 정의가 ‘삽질’과 같은 말로 혼돈되는 시대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조 선생님은 오전 순례 이후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다. 신께 더욱 가까이 가려고 하는 노력이 사람이 길이고, 거짓을 버리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는 소감을 주셨습니다.

<안양지역의 순례>
의왕에서 시작하였던 길이 어느새 안양지역으로 바뀌고, 여전히 넓기만 한 도로에는 차량이 넘쳐납니다. 도로 운전자들의 시간을 순례단이 빼앗는 것 같아 마음이 미안하면서도, 사람 다닐 길은 좁은 세상에 넘쳐나는 도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엄마 따라 나섰던 꼬마아이는 어느새 엄마 따라 도로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몸을 뉘이고, 하루 순례길에서 자신을 세우기 위해 참여한 순례자들은 지나는 차량 아랑곳없이 단 한 번의 기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근 지역인 산본에서 오신 김소연님은 “현재 우리나라는 대북관계, 국민갈등 등 평화에 민감한 상황이 아닌가 한다. 사회 상황도 그렇고 안타까운 마음에, 기도순례길에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아서 왔다”고 하시고 “중요한 것 못보고, 착한 것 못보고 나쁜 것만 보는 사람들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김 선생님은 “정부, 국민, 개인 모두 오로지 자기주장만 하는데, 이해와 타협이 정말 필요할 때이다. 특히 정부가 국민들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시고 “저도 이 기회를 통해 나를 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오전 구간 중에 건너편 도로에서 시민 한분이 불법으로 도로 횡단을 하는 일이 있어 순례단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순례단이 한 가게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흰색 가운을 젊음 남자분이 건너편에서 양손에 무엇인가 들고 분주히 오가는 차량을 피해 순례단에 다가오더군요. 놀란 순례단이 바라보는데, 한의원에 근무하시는 분께서 순례단을 보고 마음을 모아 ‘한방 건강식품’을 순례단에 전해주더니 ‘건강히 진행하시라’는 말씀을 남기도 다시 길을 건너갑니다. 그 모습을 보던 참가자들 사이에서 박수소리 길게 들렸습니다. 그 마음은 순례단만의 건강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평온함을 기원하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내 안의 자존을 세우며>
오전 내내 진행된 순례길이 안양교도소 인근 공터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점심 식사 이후 최근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불법 단체 관련 이야기가 순례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경찰청이 시민사회단체 1800여곳을 불법단체로 지정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세분 성직자들께서 관련되신 단체도 불법 관련 단체로 지정되었다는 이야기에 실소가 나옵니다. 수경스님은 “불법(不法)? 아닌데, 우리는 부처님 불법(佛法)인데?”라고 웃기만 하시더군요. 특히 오늘 지나는 구간이 안양교도소 인근 지역이니, “이렇게 하다가 순례도 불법이라고 주장하면 어쩌나?”하는 농담 아닌 농담들도 나오더군요.

안양교도소 인근에서 출발한 오후 순례길. 점심 시간에 순례길에 동참하신 화계사 신자들과 평화동 성당 신자들로 인해 대열이 끝이 없습니다. 기도 순례길 100일에 달하는 일정에 함께 참여하기 위해 몇 대의 버스로 참여하셨는데, 그동안 도심지 순례 구간 중 가장 많은 분들이 순례에 참여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오전에는 몇십명이었던 대열이 오후에 급격히 늘어나자, 진행팀만 급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찰분들도 상황이 급해지기 시작했더군요. 관할 경찰서에서는 순례길 처음으로 경찰오토바이 2대와 순찰차량 2대가 순례단 교통통제에 협조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순례 참여자들이 평온한 마음으로 순례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협조가 서울을 지나 임진각까지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오늘 오후에 참여하신 화계사 신도 장용숙 님은 “뜨거운 아스팔트지만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바람과 육교에 드리워진 그늘에 시원함이 느껴져 자연에 감사하게 된다”고 하시고. “오체투지를 통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사람, 자연이 더불어 소통할 수 있는 삶으로 바뀌어 가기를 발원했다”고 합니다.

장 선생님은 “습관대로 사는 것이 아닌 생각하면서 사는 것, 어떤 것이 바른 생활인가. 또는 내가 왜 오체투지를 하는가. 등의 사고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마침 오늘 참가자 분 중에는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부조리한 ‘현실’을 뒤집어 말해주십시오. ‘실현’이 됩니다”는 문구를 가진 몸자보를 착용한 순례자가 있었습니다. 오래 두고 기억할 문구인 듯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도로에 몸을 던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시선이 나를 바라보아도,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겸손히 낮추어 세상을 대하고, 가장 낮은 시선을 들어 다시 세상을 바라봅니다.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굽어보기보다는 낮은 자세에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그것은 ‘자만(自慢)’이 아니라 인간다운 ‘자존(自尊)’입니다.

이 순례길에서 참여자들은 그렇게 잃어버린 ‘자존(自尊)’을 되찾고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에 지배되는 세상에서 ‘경제적 부’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강제를 거부하고, ‘인간의 가치와 생명의 가치,평화의 가치’를 다시 가슴에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작은 몸짓이 세상에 풍랑 하나 없는 작은 소리 없는 함성일지라도 ‘문명화된 야만’을 거부하고 스스로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순례자들은 스스로 세운 ‘자존(自尊)’을 잃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거리를 노랗게 희망의 색으로 물들이며, 한 점 소리 없이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가며 진행된 ‘인간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 100일차. 안양시 농산물도매시장 건너편 즈음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김학춘(안산) / 이강연 외 3명(커널뉴스) / 유경순 외2명(안양) / 김소연 외1 명(산본) / 조주희 외 1명 / 이우규(안양) / 조환철(기독교농촌개발원) / 이종명 외 3명(민노당 의왕) / 조창연 외 2명(의왕시민모임) / 서명서 외 5명(8.15평화행동단) / 이종만 외 1명(경기환경운동연합) / 최광식(인천) / 안현(서울) / 장용숙 외 150명(화계사불교대학 1,2학년) 등이 함께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14일(목) : 대원칸타빌 2단지 앞 s-oil(시작) - 재경 가든 입구(종료)
● 5월 15일(금) : 재경가든입구 - 과천 중앙공원 앞(종료)
● 5월 16일(토) : 과천 중앙공원 앞(시작) - 정각사 이후(종료)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원불교잠실교당, 자성화, 길상득, 보현행, 조주희(의왕), 의왕시민, 이종만(의왕), 안**(안양), 한산들 한의원, 안양 YMCA, 화계사불교대학학생회, 포일성당, 나승구 신부 등이 후원해주셨습니다.

* 공지 1 : 5월 16일(토) 과천 남태령 경유 서울 구간 순례 시작
(비가 와도 16일 순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우비 준비하세요)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13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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