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 정민아]

▲ '컨택트', 드니 빌뢰브, 2016. (포스터 제공 = 유니버설픽쳐스 인터내셔널 코리아)
SF 영화는 우주여행, 외계인 침공, 미래 사회를 그리는 것 등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 중 외계인 침공을 소재로 하는 SF는 195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이래로 수없이 많이 만들어졌다. 영화 속 외계인 침공은 현 사회의 인종차별주의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1950년대는 전 세계가 자본주의 국가 미국과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양대 축으로 하여 냉전기류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미국인들은 이 시기 매카시즘이라는 마녀사냥식 공산주의자 색출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었고, 할리우드는 이러한 상황을 장르 영화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시기 SF는 외계인의 침입으로 인간이 위기에 처한다는 스토리 라인을 구축해 나갔다.

이러한 재현이 서서히 바뀌어가는 양상이 SF 영화사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는데,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1977), 'E.T.'(1982)에서 인간보다 훨씬 진화한 생명체인 외계인이 인간에게 겸손을 교훈으로 남긴다는 주제 의식을 담았다. 이 장르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인종차별주의와 배타주의에 대한 경고를 담기도 했다. 물론 '에일리언'(1979)이나 '우주전쟁'(2005)처럼 공포스럽고 파괴적인 외계인을 재현한 SF 호러도 동시에 제작되며 다양한 외계인 SF 영화의 진화를 이끌어 갔다.

외계인과의 전쟁을 다루는 SF 영화들은 최첨단 무기와 액션, 징그럽고 무섭게 생긴 외계인 형상 등 볼거리와 속도감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장르적 요소들을 떠올리며 '컨택트'를 본다면 완전히 예상이 빗나간다고 느낄 것이다.

빠른 액션이 없다. 대폭발 신이 꼭 한 번 나올 뿐이다. 엄청난 규모와 최신식 테크놀로지를 자랑하는 우주선이 없다. 그러므로 레이저 광선이 팍팍 튀는 최첨단 무기의 대결도 볼 수 없다. 외계인이 특이하게 생겼지만 그다지 무섭게 보이지는 않으므로 볼거리도 별로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 SF 영화는 다른 곳을 향하는 매우 특별한 영화다. 그곳은 바로 지적 상상력과 세밀한 심리적 표현이 놓여 있는 곳이다. 그리고 대결과 전쟁이 아닌, 소통과 연대에 대해 말한다.

▲ '컨택트'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어느 날 갑자기 외계로부터 날아온 거대한 비행물체들이 세계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자 인류는 거대한 혼란에 빠진다.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물리학자 이안(제러미 레너)과 팀을 이뤄 외계인과의 대화에 나선다. 루이스와 이안은 비행물체 내부로 진입해 ‘에봇과 코스텔로’라고 이름을 붙인 두 명의 외계 생명체와 마주한다. 그들에게 질문해서 알아내야 할 사항은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언어 체계 때문에 난항을 겪다가, 대화의 물꼬가 트이게 되지만 그때부터 루이스는 이해하기 어려운 환상을 보기 시작한다.

영화는 불치병을 안고 태어난 딸의 탄생과 죽음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루이스의 아픔에서 시작된다. 그녀가 외계인과 소통하고자 애쓰는 장면과 고통스러운 기억은 서로 교차되면서, 외계인과의 접촉 플롯과 루이스와 딸의 가족 플롯이 각기 따로 전개된다. 여느 SF 스릴러처럼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는 시간 구조로 인해 긴장감을 통해 몰입감을 끌어내는 구조라고 여겨지는데, 이러한 우리의 SF 보기 관습은 결말부를 향해 가며 완전히 깨진다.

이 영화는 우주적 시간관에 대한 영화이며, 언어가 소통일 뿐만 아니라 의식 체계임을 밝히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지적이고 세련된 예술작품임을 감각적으로 깨닫게 된다.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를 놓아 버린다면 말이다.

▲ '컨택트'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영화 원제는 도착이란 뜻의 ‘어라이벌’(arrival)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접촉’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으로 바뀌었다. 이번 달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등 9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영화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는 캐나다 출신 감독으로 '그을린 사랑'(2010), '프리즈너스'(2013),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에서도 결말부의 충격적인 드러남을 통해 인간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보여 주고자 했다. 이 영화의 결말도 역시 충격적이다.

이러한 뛰어난 SF 영화의 탄생은 원작 소설에 기인한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날리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 SF 소설가 테드 창은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로서 SF 독자들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15개국에 번역된 단편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컨택트'의 원작이다.

과학자나 우주탐험가가 아닌 언어학자가 주인공인 이 SF 영화는 시작과 끝, 추억과 고통, 현실과 미래 등 각자의 삶에게 던지는 지적인 화두다. 또한 신냉전의 징후가 포착되는 트럼프 시대에 던지는 경고이기도 하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한신대 겸임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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