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및 연명의료결정법' 시행과 준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을 제도화해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환자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며, 암환자에만 국한되어 있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확대 적용하고, 호스피스에 대한 근거 법령을 마련해 국민 모두가 인간적 품위를 지키며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한다.”

지난해 2월 공표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결정법)의 제정 취지다.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결정법은 지난 1997년 연명치료 환자를 가족들의 요청으로 퇴원시킨 의사에게 살인방조죄 판결을 내린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8년 식물인간 환자에 대한 가족들의 연명치료 중지 요청을 대법원이 받아들인 ‘김 할머니 사건’ 등을 통해 논의가 시작됐고, 2016년 2월 국가 생명윤리심의위원회 권고안을 통해 발의, 제정됐다.

이 법은 2017년 8월부터 시행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2018년 2월부터 시행되는 ‘연명의료결정’ 두 축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인간적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보장받는 죽음을 준비하도록 한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만, 연명의료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해 시행을 앞두고 많은 걱정을 낳고 있다.

특히 법 제정을 위한 논의 과정에 참여했던 가톨릭교회는 이 법이 사실상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지거나 ‘자기결정권’이 지나치게 강조돼 이른바 ‘존엄사’로 이어질 위험성, 의료진과 논의 없이 작성되는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로 인한 혼란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말기 환자에게 필요한 호스피스를 위한 제도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종사자들. ⓒ지금여기 자료사진

교회, “끝까지 돌봄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죽음의 의료화는 반대”

연명의료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생명 존중과 품위 있는 죽음을 지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 장치에 의지해 죽음을 비인간화하는 ‘죽음의 의료화’, 생명연장에만 집착하는 것은 경계한다.

영양과 수분, 산소를 비롯한 일반적 항생제 등을 투여하는 일반연명의료와 돌봄까지 거부하는 것은 ‘소극적 안락사’로 보지만, 혈액투석이나 강압제 사용 등 약물이나 고도의 장비를 이용해 ‘생명의 징후’만 연장하는 특수연명의료는 의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7년 의료인들과의 만남에서 “말기 환자에게 정상적인 간호행위나 영양공급같은 통상적인 치료 수단의 사용은 항상 의무지만, 예외적 수단의 사용은 비록 정당하더라도 항상 의무는 아니”라고 했다.

의료행위에서 통상적 수단과 예외적 수단의 구분은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가 발표한 “의료인 헌장”(1995)에 따르면, “환자의 상태에 의거해 사용한 수단과 추구한 목적 사이에 적절한 균형 관계가 있는 치료를 통상적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균형이 없는 경우 그런 치료를 예외적이라고 간주한다”고 밝힌다. ‘균형’이란 치료 방법의 부담과 혜택의 비율 균형이며, 판단 기준은 의료행위 자체의 성격(기능)이 아닌 환자의 실제 상태다.

대구가톨릭대 김정우 신부는 대구가톨릭평화방송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교회는 연명의료를 의무라고 하지 않는다. 이미 자연적인 생명이 다했다면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기계에 의존해 생명의 징후만 연장하는 것은 오히려 ‘생명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 말기암 환자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위한 ‘모현센터의원’.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한다. (사진 제공 = 모현센터의원)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 연명의료의향서 그리고 호스피스 완화의료

연명의료결정에서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법에서 정한 질환(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변 등)으로 인해 말기에 이른 환자가 담당의사로부터 자신의 상태와 치료 방법, 예후 등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연명의료계획을 세우면 의사는 그대로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

이 방법은 담당의사와 환자가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함께 계획을 세운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상태가 악화돼 의식이 없으면 쓸 수 없고, 해당 질병이 한정되어 있어 다른 질병으로 말기에 이른 환자는 쓸 수 없다.

또 연명의료계획서에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충분히 반영되고 의미가 있으려면, 의사와 충분한 소통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의료인들에게는 이러한 의무나 법적 규정이 없고, 상급병원조차도 연명의료계획서 이행에 대한 준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비해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는 19살 이상의 누구나 등록기관을 통해 작성할 수 있다. 건강한 상태에서도 미래에 있을 의료행위에 대해 미리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의료 지식과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정보 없이 의향서를 작성한다는 점에서 자칫 현재의 결정으로 미래에 의도치 않게 생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사전 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정재우 신부는, 의향서를 먼저 써도 나중에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면 의향서의 효력은 상실되지만, 문제는 현실적으로 의향서 작성이 훨씬 간편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신부는 이런 이유로 사실상 연명의료계획서는 이상적 조항으로 남고 사실상 사전 의향서로 가는 부분이 가장 염려된다면서, “연명의료계획서가 우선시되려면 무엇보다 의사들의 준비가 절대적인데, 그 부분이 미흡하다. 현실을 감안하면 행정적 편의로 갈 수도 있고 단순 절차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막상 연명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때, 이 두 가지가 모두 없는 경우는 환자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의견과 담당의사 확인 내용을 환자의 의사로 간주하고 치료를 진행한다.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결정법의 다른 축이자 연명의료계획과 맞물려야 하는 부분은 ‘호스피스 완화 의료’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 가톨릭교회의 의견이 가장 크게 반영된 부분이며, 법 이전부터 교회가 실질적으로 힘써 온 부분이다. 그러나 법적으로도 한계가 많고 현실적으로 제도화가 미흡한 상태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수 있는 말기 환자의 질병이 제한된 것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 질환을 4가지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암, 후천성 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변 등의 질환 외에도 현재 암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은 뇌혈관계, 당뇨, 심장질환조차 포함되지 않아, 현실적이지 않다.

또 호스피스를 위한 예산과 병상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2017년 호스피스 병원 운영 예산은 38억 원, 호스피스 실행 기관은 73개, 병상 수는 약 1200개에 그쳐 암 환자의 13.8퍼센트만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형편이다.

▲ 교회는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결정법이 왜곡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논의에 참여해 왔다. 그 결과 호스피스 완화의료 부분이 포함될 수 있었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교회의 몫은.... 죽음은 삶의 요소이자, 완성이라는 인식 깨워야
돌봄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각 지역 본당의 실천 필요

전반적으로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앞두고, 이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 정보를 알리는 것은 물론, 열악한 제도와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할 노력이 필요하다. 법이 그 목적대로 생명 존중과 품위 있는 죽음을 구현하도록 교회가 해야 할 몫은 무엇일까.

김정우 신부는 연명의료 전에 생각해야 할 것은 죽음이 삶의 한 요소이자, 현재의 삶을 비추는 거울, 삶의 완성임에도 삶의 공간에서 너무 도외시되었다는 것이라면서, “연명의료 결정은 일상의 삶에서 죽음을 묵상하면서 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리 생각하는 일이다. 교회는 생의 마지막 시기를 맞는 이들에게 생명의 존엄을 깨우치고, 생이 축복이었음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용어에 대해서도, “교회는 삶의 맥락이 없는 죽음 자체만을 다루는 것에 반대한다”며,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진 ‘웰다잉법’, 소극적 안락사를 포함한 ‘존엄사’ 보다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존엄 자체를 유지하는 ‘품위있는 죽음’이라는 말을 쓰자고 말했다.

정재우 신부는 법 시행에 앞서 먼저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이 우선적으로 준비해서 하나의 모범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병원 운영진과 의료진이 함께 준비해야 한다면서, 서울성모병원은 관련법과 제도에 대한 설명회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호스피스 완화의료’ 측면에서도, 사실 호스피스는 의료나 치료가 아닌 ‘전인적 돌봄’이 중심이라면서, “교회는 법이 없을 때부터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한 만큼, 더 적극 활동해야 한다. 병원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생명 존중 의식과 돌봄이 중요하다는 것을 호스피스가 잘 보여 준다”며, “그러나 우리는 돌봄을 받는다는 것을 짐이 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돌봄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적 삶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며, 돌봄을 짐으로 여기는 사회는 인간적 모습을 잃어 가는 사회“라고 말했다.

정 신부는 신자들이 법 내용과 연명의료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면서, “자기결정권보다 생명존중과 돌봄이 우선이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은 특수의료이지, 기본적인 영양과 수분 등을 공급하는 일반의료는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명치료거부 결정 과정에서 환자가 자신의 상태 외에 가족의 형편이나 경제적 상황, 돌볼 이가 없다는 현실적 이유까지 고려하는 상황을 가장 많이 걱정한다는 정 신부는, 돌봄을 위한 지역사회의 역할 특히 지역 어디에나 있는 성당, 교회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교회는 모든 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졌고 좋은 자본이며, 본당사목이 가진 큰 장점”이라면서, “그 안에서 전인적 돌봄이 이뤄질 수 있는 본당 기반을 구축하고 노인 사목 차원에서도 의식을 일깨우고 적극 활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봉사자 교육은 물론, 지역민들의 거주 환경이나 정신적 돌봄, 가정 호스피스 연결 등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며, “적어도 관심의 사각지대가 없어지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관심의 범주 안으로 들어올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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