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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종교시설 투표소, 세상 밖으로 나오다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 국민의 기본권 침해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국가에서 지정한 투표소에 가서 열심히 투표만을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17대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종교시설을 투표소로 이용하는 유권자 중에 종교적 감정을 상해가면서 투표를 하는 것이 불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불편함 때문에 선거조차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선거권의 침해가 논리적인 설득력을 갖는 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당시 유력 대선후보자의 종교편향성이 도마 위에 오른 터라 특정후보에게 특혜를 주려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선관위의 선거중립까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언론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전체 투표소 12,932개 투표소 중 1,087(8.8%)곳이 종교시설로 이용되었고, 지난 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전체 투표소 13,178개 투표소 중 1160(8.3%)곳이 종교시설로 이용되었습니다. 제4회 지방선거에 비해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246개의 투표소가 증가하였는데, 종교시설 내 투표소의 증가는 73개소에 달해 순증가분만을 비교해본다면 전체 증가분의 30%가 종교시설 내 투표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서울지역의 경우 전체 2210개 투표소 중 511개의 투표소가 종교시설인데, 종교별로 살펴보면 개신교가 468개소(91.5%), 천주교가 38개소(7.4%), 불교가 4개소(0.7%), 기타 1개소(0.2%)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신교의 비중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관위에 역대 선거에 따른 투표소 현황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과거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와 관련된 통계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해방이후 한국사회의 폭발적인 일부 종교의 교세확장은 종교시설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을 염두 해 둔다면, 역대 선거에서 종교시설이 투표소로 이용되는 비율이 점점 증가되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새로이 주거단지가 만들어지는 경우 가장 먼저 진입하는 것이 종교시설입니다. 그것도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러니 접근성, 편의성으로 따지자면 이런 종교시설을 따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갈수록 종교시설은 대형화, 현대화되어 가는데, 이런 추세라면 투표소를 전부 종교시설에 설치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천시 원민동연곡감리교회, 투표소1(출처:뉴시스)

이런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담당공무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오히려 엉뚱한 이유를 종교시설 내 투표소 문제의 원인으로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종교시설 내 투표소현황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하면서 선관위 담당자에 들은 이야기부터 하자면,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후보를 비방하기 위해 다른 후보 진영에서 의도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퍼뜨리기 시작했다는 정황을 자체 조사를 통해 알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와 관련된 네티즌의 주장은 순수하게 종교의 자유와 선거권의 침해를 구제하고자 하는 유권자의 뜻이 담겨 있기보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선관위는 판단하고 있는 듯합니다.

선관위의 자체조사내용이 백번 옳다하더라도,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문제를 후보 간 비방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는 입장은 밖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바라본 것뿐입니다. 아무리 정치적 해프닝으로 덮어버리려 해도, 본질적으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침해된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없었다면, 선관위에서 말하는 정치적 해프닝조차도 생기기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의 기본권보다 우선인 ‘편의’ 와 ‘관행’

대통령선거의 투표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16대 대선에서 70.8%였던 것이 지난 17대 대선에서는 63%로 무려 7.8%나 감소하였습니다. 경향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선관위의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됩니다. 유권자들 특히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시설을 투표소로 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투표를 적극 유도하려하는 것은 바람직한 선관위의 입장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바로 유권자의 ‘편의’와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종교시설에까지 투표소를 설치해 운영해 온 것입니다. 선관위 담당자는 20년, 50년을 한 투표소를 이용해 왔는데, 투표소를 바꾸면 많은 민원이 제기된다며 투표 장소를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행정 편의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관악구 남현동의 한 투표소는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까지도 동사무소에서 투표를 했는데 17대 대통령선거에서 갑자기 종교시설로 바뀌었습니다. 직접 현장을 찾아 실태조사를 한 결과, 변경이유가 동사무소의 협소와 사무실에 설치된 컴퓨터 랜선 등 철거가 곤란한 시설 때문이라고 답변하였는데, 너무나 궁색한 변명이었습니다. 어쨌든 동사무소의 행정적 편의를 위해 종교시설로 쉽게 바꿔버리면서, 한편으로는 투표장소를 바꾸면 민원이 발생해서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유권자의 선거 편의를 최우선으로 한 선관위의 투표소 정책은 현재로서는 실패했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투표율이 경향적으로 낮아지고 있고, 심지어는 종교시설 내 투표소 수를 늘려가면서까지 유권자에게 편의를 제공했으나 투표율이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찍을 만한 후보가 없어서, 정치에 짜증이 나서, 먹고 살기 바빠서, 투표 날에도 출근하게 해서, 놀러가고 싶어서, 투표를 하나 안하나 달라지는 것 없어서, 어느 후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어서 등 주변에서 회자되었던 말들이다. 선관위는 이런 말들을 귀담아야 들어야 합니다. ‘편의’와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종교시설 내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은 국민의 선거참여와 투표율을 높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교적 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종교시설 내 투표소를 다른 대체 시설로

이제는 종교시설 내 투표소에서 투표하는 것을 함께 생각해볼 때가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가 오히려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면 선거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선거의 신뢰성을 위해 종교시설 내 투표소를 다른 공공기관이나 시설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문가의 검토에 따르면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로 침해되는 기본권으로 종교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들고 있습니다. 투표소가 설치된 특정 종교시설과 종교가 다르거나 종교가 없는 국민들로 하여금 특정 종교시설의 출입을 강제하였고, 국가 행위로서 특정 종교에게 선교의 활동장소를 제공하여 종교의 자유 침해 및 정교 분리의 원칙을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 행동 자유권의 침해로 국민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마저 침해한 것입니다.

반면, 선관위 관련 담당자는 언론을 통해 “종교시설을 선택한 것은 투표소를 설치할 공공시설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안전설비, 장애인 편의시설, 넓이, 교통 등의 이유로 설치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종교시설 대신 민간 건물 활용도 고려했으나 편의시설을 갖춘 곳을 찾기 어려운 데다 지속적인 사용을 보장받을 수 없어 투표 장소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답변입니다. 시민이 사는 곳에 공공시설이 없다는 것이 자랑입니까? 공공시설이 있더라도 안전설비, 장애 편의시설, 넓이, 교통 등이 없거나 불편하다는 것이 자랑입니까? 아니면 귀찮아서 대체시설을 찾기도 싫고, 선거 때마다 투표소 때문에 신경 쓰기 싫다는 공무원들의 불평입니까?

다행스럽게도 최근 불교계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종교시설 투표소가 다른 종교인들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의 불편과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상당수 접수됨에 따라 반드시 개선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며 “오는 4월 9일 치러질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투표소를 신규로 설치하거나 위치를 변경할 경우 교회 등 종교시설 내 설치를 지양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자유정책연구원에 제보된 해당 지역 투표구 관할 동사무소 담당자와 통화를 통해 확인 한 바에 의하면, 선관위의 이런 의지가 실제 행정적으로 집행될 수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로 인한 국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하라는 선관위의 공문이 있었다고는 하나, 적극적으로 대체시설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지난 대선 때 사용했던 종교시설 내 투표소에서 할 수 밖에 없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극히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소를 다른 대체시설로 바꾸겠다는 답변도 있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관할 동사무소에서 선거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이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와 관련하여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며, 이런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여 개선해야 할 중앙선관위의 직무태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지역에서 비교적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 비율이 높은 3개 구(용산구, 서대문구, 영등포구)를 선정하여 지도를 통해 조사한 결과, 종교시설 내 투표소 대비 62%의 대체검토 시설이 확인되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대체검토 시설이 투표소로 부적합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62%에 달하는 대체검토시설 모두가 부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연구원의 종교시설 내 투표소 실태조사 중 확인된 바에 의하면, 용산2가동의 경우 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립학교여서 협조를 요청하기가 어렵다는 담당공무원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147조 3항의 “학교, 관공서 및 공공기관 단체의 장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투표소 설치를 위한 장소사용 협조요구를 받은 때에는 우선적으로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학교뿐만 아니라 담당공무원의 잘못이 명확한 경우입니다.

또한 종교시설 외에는 정말 투표소를 설치할 만한 장소가 없는 경우라도, 종교적 상징물이 유권자들에게 노출되도록 그대로 두었거나, 선교활동을 하는 행위 등으로 유권자가 불쾌하지 않도록 선관위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연구원에서는 우선 종교시설 내 투표소를 다른 대체시설로 바꾸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선관위의 자발적인 대체시설 이용을 촉구하고, 아울러 종교시설을 투표소로 이용하려는 협조요청이 오더라도 종교시설의 책임을 맡고 있는 성직자는 이를 분명하게 거절함으로써 공공시설이나 기타 시설에 대한 선택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임이 밝혀진 이상 이를 바로 잡는 것이 헌법소원입니다. 헌법소원은 기본권을 침해당한 피해 당사자가 직접 청구를 해야 합니다. 개신교 관련 시설이나 불교 관련 시설에서 투표를 하고 불쾌했거나, 이를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신청을 바랍니다. 대체시설에 대한 제보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

다종교․다문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권리를 신장시키는 일은 사회를 한 단계 발전된 민주사회로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단순히 편의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종교적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이므로, 우리 사회에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배병태(종교자유정책연구원) 200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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