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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한 알의 느낌[부엌데기 밥상 통신 - 3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내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라 했던가.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소리가 있으니 내 자식이 나를 위해 책 읽어 주는 소리가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얼마 전부터 다울이가 자발적으로 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두 권씩 다랑이에게 책을 읽어 주라고 시키는데, 그럴 때 읽어 주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다.

"엄마, 이거 읽어 봤어? 안 읽어 봤지. 얼마나 재밌는지 엄마도 들어 봐."

다울이는 책장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모래알 고금"이라는 동화집을 가져 와서 그중에 달걀 도깨비 나오는 대목을 실감 나게 읽어 주었다. 해방 이전에 쓰여진 동화라 말투도 설고 약간 구닥다리 느낌이 있는데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엄마, 달걀 도깨비가 진짜 있어?"
"있을 걸. 엄마 어렸을 때 달걀 도깨비는 아니고 달걀 귀신 이야기는 아주 많이 들었어. 한밤중에 낯선 길을 가다 보면 꼭 나타난다던데...."
"으아, 나 밤에 밖에 안 나갈래!"

그 책을 읽고 얼마 뒤, 다울이가 이번에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어 주겠다 했다.("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다울이가 자기 용돈으로 사 본 첫 책이다. 며칠 전에 아빠를 따라 외출을 했던 다울이가 그 책을 사 왔을 때,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는 책을 왜 샀냐며 심한 구박을 했더랬다. 정말 무식한 엄마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사 온 지 이틀도 안 되어 빨려든 듯이 읽어 대더니 마침내 읽기를 마치고 나에게도 꼭 들려 주고 싶었던가 보다.

"엄마, 이 책 "모모"보다 더 재밌어. 한번 들어 봐."
"알았어, 청소하면서 들을게."

나는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기에 책 읽는 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다울이가 읽어 주는 책을 십여 년 전에 이미 읽었던지라 안 들어도 다 아는 내용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오며 가며 건성으로 흘려듣다가 나도 모르게 내용 속에 훅 빠져 들었다. 어느새 나는 다울이 곁에 바짝 붙어 앉게 되었고, 붙박이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책 속 세상으로 잠겨 들어갔다.

   
▲ 장흥에 사는 친구가 보내준 달걀. 얼마나 어여쁜지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고 싶다. ⓒ정청라

거기에 암탉이 한 마리 있었다. 얼굴을 모르는 수많은 닭들 가운데 나도 얼굴이 있다며 철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암탉, 스스로 '잎싹'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까지 붙이고 나도 생명인 걸 잊었느냐고 목 놓아 울고 있었다. 나는 잎싹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는 닭장을 나와 다른 세상을 사는 얼굴 없는 부속품 정도로 여겨 왔지 않나. 그뿐인가. 잎싹이 알을 품다가 알에서 심장 뛰는 소리를 느꼈을 때,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달걀판이 떠올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치 어린 아기를 추운 방에 가둬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암탉도 생명이고 알도 생명인데 신선함을 유지해야 하는 식품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니....!

그동안 조류독감이 확산되고 닭을 살처분 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는데 다울이의 낭랑한 목소리 앞에서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목울대가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며 자꾸 눈물이 나왔다.

"엄마, 울어?"
"옛날에는 몰랐는데 엄마 돼서 들어서 그런가 가슴이 찢어진다. 자식 기르는 어미 마음은 다 똑같구나."

정말 신기한 체험이었다. 끔찍하고 잔인한 소식을 전하는 기사나 뉴스 앞에서는 생명을 느끼는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눈물샘은 말라비틀어지는데, 귀로 들리는 동화는 달랐다. 훨씬 더 생생하게 현실의 아픔을 느끼게 하고, 생명을 생명으로 알아보게 했다.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그런 차원의 깨달음이랄까?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걀 반찬을 할 때면 잎싹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고 이제는 닭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이 달걀이 어디에서 오는지, 이 달걀을 낳은 닭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다. 그걸 알아야 달걀의 온기와 그 생명력을 밥상 위에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장흥에 사는 친구가 달걀 10알을 보내준 적이 있다.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알을 하루에 한두 알씩 모아 놓았다가 보내 준 것이었다.(다울이보다 한 살 어린 그 집 딸내미가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일부러 모았다는데, 그래서인지 한 알 한 알이 보물 같았다.) 그때 그 달걀에는 분명 얼굴이 있었다. 유통기한 도장이 꽉 찍힌 다른 달걀과는 달리 정말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알을 따듯하게 품어 주면 병아리가 태어날 거란 믿음이 생기는 그런 느낌 말이다! 나는 그 느낌까지 살고 싶고, 그 느낌으로 먹여 살리고 싶다.

   
▲ 밥상에 달걀찜이라도 하나 올라오면 아이들이 춤을 춘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어여 닭을 키워야지. ⓒ정청라

덧.
설 명절을 앞두고 면사무소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조류독감 발병 예방를 위해 미리 닭을 처분하러 온 것이다. 닭 키우는 농가에서 요청을 하면 닭을 죽여 주고 두당 2만 5000원씩 보상을 해 준다는데, 그 얘길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병 걸릴까봐 먼저 죽인다고? 그렇다면 보상금은 닭에게 바치는 조의금인가? 아, 정말 무시무시하게 황당한 세상이다. 달걀 귀신과 함께 닭 귀신의 활약이 기대되는....!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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