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규명하는 국회의 국정조사 청문회와 이와 함께 대통령 박근혜의 아바타처럼 행세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조사하는 특검의 수사가 진행된 지난 두 달, 국민은 주말이면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광화문은 시민들이 우리 민주주의를 토론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소리 없이 박근혜 정권의 평가에 관해 소통하고 공감대를 넓히면서 21세기 한국의 아고라(광장) 역할을 했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도 크고 작은 아고라가 촛불시위를 벌였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로서 한 세대의 짧은 시간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하루아침에 창피스런 세계의 조소 거리로 만든 대통령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까지 나아가 그의 퇴진을 외쳤다.

촛불시민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와 최순실의 징계를 주장한 동시에 이런 민주주의의 탈선이 다시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그 뿌리를 찾아 근절할 조치를 국회에 요구했다. 촛불시민들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최순실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게 한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을 요구했다. 촛불시민의 분노는 국회를 갈라놓은 여야의 벽을 허물었다. 국회는 234 대 56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을 의결했다.

촛불시민들의 외침은 정쟁으로 시간을 허송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국회의원들의 귀를 열고 눈을 뜨게 했다. 간접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하나로 결합하는 촉매제가 됐다. 촛불시위는 평화적 혁명에 불을 댕겼다. 박근혜는 12월 9일 오후 7시를 기해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준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당했다. 한국 민주주의가 새 모습으로 출발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장밋빛인 것은 아니었다. 국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원인을 규명해서 이런 민주주의 탈선이 다시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예방하기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를 열었다.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정부 관리들과 최순실의 책임을 추궁하고 징계하기 위한 특검 조사도 병행했다.

그런데 청문회에 불려 나온 증인들은 자기들의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 내리 거짓말로 진실을 호도했다. 특검 수사에 참고인이나 피의자로 소환된 청와대 인사와 정부 관리들도 기억이 없다거나 모른다는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했다. 청문회가 마치 거짓말 경연대회 같았다. 명문대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더 큰 문제는 기득권층의 거짓말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까지 거짓말하는 것을 다반사로 여기고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후안무치의 모습이었다.

▲ 직무가 정지된 뒤, 신년 기자간담회를 한 박근혜 대통령. (사진 출처 = 연합뉴스TV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거짓말은 그리스도교는 물론이고 이슬람교도 공동으로 금하고 있는 십계명의 하나다. 거의 모든 종교가 거짓말을 금하고 있다. 거짓말은 인간관계에서 신의를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국가의 상징적 존재인 국가원수가 거짓말을 할 때 그 사회가 온전히 유지될 수 없는 것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 한국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거짓말을 우습게 여기는 대통령 박근혜의 행동이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국민의 분노가 끓어오르자 그제야 정권의 위협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세 차례나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시인하고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겠으며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도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 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엄숙한 표정으로 국민을 향해 약속했다.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마땅하지만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앞으로 기회가 될 때 밝힐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하나도 지킨 게 없다. 거짓말이었다. 특검의 수사팀이 청와대 안에 들어가는 것을 입구에서 막았다. 본인은 한 번도 검찰 조사에 나온 일이 없다. 검찰의 수사나 헌재의 출석 요청에 응한 일이 없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신분에 도둑 기자회견을 하고 검찰의 수사 결과를 자신을 옭아매기 위해 “엮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할 말이 있으면 당당히 검찰의 소환에 응해 법정에서 이야기하는 게 정도다.

“필요하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한 대국민담화 내용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우병우 청와대 전 정무수석이나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안봉근 등 비서관들이 청문회의 소환에 불응하고 소재를 감췄다. 이들에게도 대통령이 검찰이나 법원의 소환에 성실히 임하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숨바꼭질을 계속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국회나 사법기관 무시 행위는 대통령이 묵시적으로 동의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닌가?

헌재가 요구한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일정 제출도 불성실하기 그지없다는 보도다. 얼마나 불성실하게 기록했으면 헌재가 다시 상세하게 기록해서 보내라고 요구했겠는가?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초기에 이 사건이 백악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나중에 닉슨이 사건 확대를 막기 위해 FBI(연방수사국)와 접촉한 녹음 파일이 발견돼 대통령이 국민에게 거짓말한 사실이 드러나자 의회의 탄핵이 두려워 사임을 결정하게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탄핵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알아야 할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한 번도 아니고 다반사로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탄핵감이다. 거짓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헌재의 판결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탄핵을 결단할 때가 된 것 같다.

 

 
 

장행훈(바오로) 
언론인.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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