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월 22일(연중 제3주일) 마태 4,12-23

광야의 유혹 이야기가 끝난 뒤 즉시 마태오는 예수의 공생활이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그가 돌연히 잔인하게 살해되는 것으로 마감된다.

메시지

수도에 있는 유대인들과 기존 체제의 무시를 받고 있는 소외된 지역, 갈릴래아를 선택하면서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된다.(마태 4,12) 이 지방은 이방인들의 지역에 가까이 있고 여러 종교가 섞여 있어서 정결법에 집착하는 이들의 눈으로 보면 수상한 곳이다. 마태오는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며(제1독서 참조) 갈릴래아가 천대받는 이방인의 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참다운 빛이 그곳에서 비춰질 것이다.(이사 8,23-9,3) 이 부분은 부활한 예수님의 마지막 사명을 미리 표현하는 전주곡이다.(마태 28,19) 예수님의 마지막 사명은 모든 국가들과 모든 백성들을 제자로 만드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복음서에서 보여지는 보편적 관점이다)

위대한 가르침은 이제 곧 산상에서 시작될 것이나, 이 대목에서 복음은 일종의 서론처럼 등장인물들과 구성을 제시하기 위하여 필요한 기본 요소들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 하느님나라는 가까이 와 있다. 그 나라의 기여와 귀중함은 후에 구체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나라가 당도할 때에 사람들은 회개하도록, 그들의 삶을 새롭게 바꾸도록 초대된다.(마태 4,17) 이 내용을 요약하여(마태 4,23) 복음사가는 가르치는 사명을 수행하는 예수님을 보여 준다.(마태오 복음에서는 첫 번째로) 이 사명은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인데, 마태오는 이 하느님나라로 예수님에 관한 그의 책 전체 내용을 채우고 있다. 동시에 예수님의 행적은 선포된 하느님나라가 이미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느님나라는 이미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치유는 선포된 메시지의 유효함과 힘을 확인해 준다. 예수님의 행적과 치유들은 생명의 메시지다.

▲ '어부', 찰스 헤미. (1888)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첫 번째 추종자들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받게 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공생활의 초기 구도는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는 간결하고도 기본적인 초대로 완결된다. 여기에서 핵심 표현은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20-22)는 것이다. 그들은 두 형제들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족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또 다른 제안을 그들에게 보낸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제안이다. 그 제안이 무엇을 수반할 것이며 내용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그들은 즉시 응답한다. 그들은 추종자들이 될 것이며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가 될 것이다. 그들처럼 모든 미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초대될 것이다. 우리도 이와 똑같은 사명에 초대되고 있다. 누가 으뜸인지 따지는 불모의 논쟁을, 가장 근본적인 것을 망각하게 만드는 쓸데없는 논쟁을 넘어 기쁜 소식을 선포하도록 불리고 있는 것이다.(1코린 1,13-17)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