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신부] 1월 8일(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 2,1-12

예수가 태어날 무렵, 유대의 임금은 헤로데였다. 본디 유대 출신이 아닌 이두메아 사람 헤로데를 유대인들은 경멸했고 경멸한 만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로마의 힘이 헤로데 뒤에 버티고 있었으니.

동방박사들은 기존 정치체계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는 노릇인데, 동방박사들은 거침없이 새로운 유대인들의 임금을 현실 임금 앞에서 찾아나섰다. 헤로데의 반응은 참으로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만큼 당연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로 대변되는 유대 전통에서 메시아를 찾아낸 헤로데는 새로운 유대의 임금에 대한 반감과 폭력을 정당화할 것이다. 동방박사들의 탐구는 세상이 말하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수반하는 것이며, 그 질문은 헤로데에겐 매우 단순한 답으로 정리된다. 죽이면 되니까....(마태 2,16-18)

▲ '동방박사의 경배',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1639-40) (이미지 출처 = wikiart.org)
이방인이었던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따라왔다. 동방박사들이 누구인지 묻기 전에(그리스말로 ‘마고스’라 불리우는 동방박사들을 두고 현인, 주술가, 제사장 등의 해석이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별과 동방에 대한 질문은 중요하다. 별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전통적 상징이고, 동방이라는 방향 역시 메시아를 암시한다.(민수 24,17; 예레 23,5; 즈카 3,8; 6,12) 이를테면 동방박사들은 이방인과 유대의 메시아가 조우하는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예수의 등장은 유대 사회에 유보된 메시아가 온 백성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시편 68,30.32; 72,10-11; 이사 49,7; 60,1-6)

동방박사들이 예수 앞에 내놓은 보물은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이었다. 황금은 왕권을 가리키고, 유향은 신적 위엄을, 몰약은 죽음 혹은 장례를 암시한다. 예수의 정체성을 세 가지 보물은 대변한다. 예수가 진정 유대인들의 임금이며 그 임금은 하느님의 아들이고 그럼에도 그 임금은 십자가에 죽어갈 것이라는 도무지 이해 못할 이 정체성. 예수는 이미 탄생부터가 모순이었다. 신, 임금, 죽음이라는 이 세 단어의 모순적 결합을 예수의 탄생은 엮어 낸다.

기존 정치권력은 죽음으로 메시아를 끌고 갔고, 메시아가 뭔지도 모르는 동박박사는 별의 이끌림으로 새로운 세상의 임금, 그 미지의 권력에로 방향을 틀었다. 이미 안다는 것이 아직 모르는 것과 맞부딪힐 때, 세상은 안온하기보다 어지럽다. 예수의 탄생이 모든 이민족을 향한 구원의 보편성과 맞닿을 때, 우리 신앙인들이 기뻐하거나 감격한다면, 아마도 그건 기존 습속에 젖어 있는 우리의 한계성, 혹은 우리의 비겁함과 맞닿아 있으리라.

헤로데처럼 새로움을 죽이진 않더라도, 우린 새로움에 열려 있는 데 상당히 불편해 하는 건 틀림없다. 신앙인은 제 삶 안에 온갖 좋은 것(영성, 신심, 미덕 등을)을 채워 넣으며 아직 믿지 못하는 이들과 구별짓는 이들이 아닌, 제 삶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온갖 악세사리들을 제거해서 제 삶의 본질을 새롭게 발견하는 이들일 테다.

본디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했고 또한 태어났는데, 메시아 아닌 이가 메시아를 흉내 낸다고 메시아가 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리 될 것을 그리 알아들으면 되는데.... 우린 오늘도 여전히 내 계획의 당위성에 옭매여 ‘그리 되면 안 되는데....’라고 중얼거리다 새로운 내일을 무참히 짓밟고 외면하는 데 더 익숙한건 아닐까. 새것을 지향하며 헌것에 매달린 우리 일상의 모순이란....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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