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태

예상했던 대로 국정 역사교과서는 씁쓸한 역사의 한 자락으로, 그리고 해괴했던 박근혜 정권의 상징적 유물로 남게 되었다.

마지막 국민의견 조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국정 교과서의 문제가 바로 건국절 문제였다. 교과서 상의 구체적 문구로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에서 '대한민국 수립일'로 바꾸는 것이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많이들 이야기가 나와서 이미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국정교과서 폐기를 기념하여 다시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하자.

한 나라가 한 시대를 접고 새로운 나라로 태어나는 과정은 대부분 파란만장하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영광스러운 새 국가 건설을 이루어 내고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제도를 만들어 운영해 나간 경우 그 국가는 비교적 오래 유지될 뿐 아니라 초기의 건국 과정은 두고두고 후세인들에 의해 영광된 역사로 되돌아보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서양은 1000년을 넘게 지속한 로마제국이 있고 동양은 800여 년을 지속한 주나라가 대표적이다.

우리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보자. 대한민국은 어떤 과정을 거쳐 건국되었는가? 우선 조선은 누구나 전대로 인식함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1910년 조선이 망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부터 우리는 광복이라는 비장한 꿈을 키웠다. 그 가장 확실한 분출이 1919년 삼천리 방방곡곡에 메아리친 삼일운동이었고 그 한 달 뒤 우리는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이후 우리는 1945년 해방 때까지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 미약했을 수도 있지만 당시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해서 싸웠던 전 세계 수많은 피침국가들의 다양한 저항 중에서도 특별히 끈질기고 치열한 것이었다.

이윽고 해방이 왔으나 나라는 다시 미국과 소련의 지배하에 3년을 더 있어야 했다. 1948년 우리는 어처구니없게도 분단을 강요당했고 결국 남과 북이 각각의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이른바 치욕의 분단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나는 참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소리를 하고 있다. 그래, 주어진 역사의 사실은 뻔하다. 그러나 이제 수상한 사람들이 '정부 수립'을 밀치고 '대한민국 수립'을 슬그머니 끼어 넣기 시작하면 상황은 결코 뻔하지 않다. 그들은 왜 새삼스레 48년의 그날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바꾸기 위해 골몰했을까?

혹자는 그들의 음모에 맞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시정부를 세웠다 하여,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하여 그것이 온전한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는 엄연한 식민 치하였다. 따라서 얼핏 보면 48년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48년에 포인트가 주어지는 순간, 역사에 마술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우선 그 이전 38년의 역사는 허깨비 같은 흑백의 역사로 돌아앉는다. 조선도 아니고 아직 대한민국도 아닌 역사는 암묵적으로 그들 나라의 역사로 밀려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미약하던 임시정부는 정부라 할 것도 없는 존재로 격하되고 상대적으로 일제와 미국의 통치는 더 든든한 제 몫의 역사성을 얻게 된다.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일제 식민지배가 나라를 근대화시킨 부인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는 저 얄팍한 식민지근대화론과 만나게 된다. 오랜 세월 수세에 몰려 있던 친일은 스멀스멀 제 나름의 역사적 의의를 띠고 고개를 쳐드는 것 또한 불가피한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남과 북이 제가끔의 분단 영역으로 더 확실하게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던 '48년 대한민국 수립'은 반공주의를 되살아나게 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형태의 노력을 반 안보와 종북으로 몰아간다.

▲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말하는 건국의 공로자는 이승만과 그와 손잡은 친일세력들이다. (이미지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48년이 점점 성스럽게 포장되는 것도 연쇄적인 현상이다. 이승만은 슬기로운 선택을 한 선각자로 떠오르고 김구는 가망없는 목표에 목을 걸던 어리석은 정치인, 심지어 신생 대한민국의 탄생을 방해한 반국가적 인물로 매도(KBS 이인호 이사장)되기까지 한다. 이승만의 친일청산 포기 및 수많은 반민주적 폭거마저 반경합도(反經合道)의 탁월한 선택으로 미화된다.

이제 박근혜-최순실에 의해 저절러진 국정 농단을 규탄하고 단죄하는 역사적 돌풍에 휩싸여 제 풀에 팽개쳐진 국정 교과서의 한 구절이 어떤 연관으로 그동안 우리 주변을 음습하게 떠돌고 있었던지를 감지하고 우리는 몸을 떨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가 대한민국 건국의 시점을 명확히 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건국을 영원히 미완성의 것으로 미래에 던져둘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조건을 생래적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도 건국 중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만 우리의 과거도 미래도 살아 있는 시간이 된다. 3.1절의 함성은 아직도 우리 뇌리에 울리고 있어야 하고 육혈포를 품고 상해 임시정부를 떠나오던 저 열사들의 모습은 아직도 우리 안전에 펼쳐지고 있어야 한다. 38년에 걸친 한숨과 고뇌와 흘린 피와 땀, 눈물을 빼고 우리가 무엇을 건국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독재는 물러가라고 피 터지게 외치던 60년 4.19의 그날도 우리는 건국을 하고 있었다. 87년 6월도 그랬다. 바야흐로 터무니없는 정권을 축출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건국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건국은 영원한 진행형이다. 아무런 꿈도 지향도 없는 자들에 의해 무모하게 시도되던 생명 없는 역사서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것은 온전히 우리 국민 주권의 빛나는 승리로 기록되어야 한다.

 
 

이수태
저술가, 칼럼니스트, 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행정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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