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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침묵[박병규 신부] 12월 25일(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요한 1,1-18(또는 1,1-5.9-14)
박병규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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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6  09: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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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처음, 말씀이 있었다. 오늘, 내일, 혹은 어제가 아니라 ‘한처음’의 시간은 본디 의미와 본디 가치와 본디 모습을 고민하게 한다. 말하자면 모든 게 처음이라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시간이 ‘한처음’이다. (창세 1,1) 말씀이 육화하여 세상에 온다는 것은 ‘한처음’을 지금 이 자리에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새 세상의 희망이나 바람이 아닌 태초부터 있어 온, 본디 가치를 오늘, 지금, 이 자리에 되살리는 게 육화 사건이다.

2. 지금의 모든 것은 한처음과 맞닿아 있고, 한처음 것의 확장이다.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도 한처음을 잊을 수 없다. 누구는 가난한 이를 위해 한처음을 다시 해석해 내고, 누구는 억압받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한처음을 되뇌이고 외쳐 댄다. 말하자면 어둠을 몰아내는 데 한처음의 시간은 해석되고 소용된다. 지금은 한처음을 담아내는 증언의 시간이자 공간이다.

   
▲ 말씀이 육화하여 세상에 온다는 것은 '한처음'을 지금 이 자리에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flickr.com)

3. 한처음은.... 침묵이(어야 한)다. 말씀이 함께 계셨기에 외칠 것도, 증언할 것도, 바꾸어야 할 것도 없었다. 침묵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관조하면 그만이었다.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 그가 한처음을 가지고 왔다. 가난한 이를 돕기 전에, 억압받고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기 전에, 우린 한처음의 침묵을, 그 영광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증언이 이데올로기가 되어 다른 소리에 생채기를 내기 전에, 우리의 희생과 봉사가 다른 이를 가르치려 들기 전에, 우린 한처음을 배워야 한다.

4. 그리하여 우린 침묵해야 한다. 글도 말도 몸짓도 잠시 멈춰야 한다. 한처음이 무엇이었는지, 그 시간에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갈망할 수 있는지, 멈추고 사색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소속.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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