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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알토란처럼 살길 바라며, 토란탕[부엌데기 밥상 통신 - 28]
정청라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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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0  11: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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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 광주에서 침뜸 교육을 받으며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유방암으로 항암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친구였다. 그녀는 나와 동갑내기인데다 (당시만 해도) 아들이 둘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쉽게 친해지게 되었는데 내가 사는 삶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서 정말 좋겠어요. 저는 늘 꿈만 꾸는데 애기아빠가 시골 출신이라 반대를 많이 하세요. 제가 현실을 몰라서 그런다며 꿈 깨고 정신 차리라고 해서 여지껏 이러고 있네요."

"그렇지만 건강 때문에라도 사는 환경을 바꾸는 게 좋지 않아요? 일단 저희 집에 놀러라도 자주 오세요.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고 하니 같이 놀면 좋겠어요."

마침 내가 육아 모임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한 달에 한 번 우리 집에서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더니 그녀는 화색을 띠며 반겼다. 하지만 모임에 나온 건 딱 두 번. 아이가 아프거나 남편이 바쁘거나 둘 중 하나의 이유로 번번이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의 남편은 맡은 업무의 성격상 해외출장이 잦은데 그럴 경우 그녀는 발이 꽁꽁 묶인다고 했다.

"운전은 못 하세요?"
"면허는 있어요. 근데 애기아빠가 제가 운전하는 걸 많이 불안해 하세요."

대화를 하다 보면 번번이 '애기아빠가....'란 말이 장애물처럼 툭 튀어나왔다. 심지어 그녀가 보내온 많은 편지들 (모임에 못 나오게 되면서 그녀는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손편지를 보내왔다)에서도 말이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새장 속에 갇힌 새로 표현하며 언.젠.가.는. 자유롭게 될 날을 꿈꾼다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말했다. 오늘이 좋아야 내일도 좋다고.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게 능사는 아니니까 오늘 하루 어떻게 신나게 살지만 생각하라고. 만약 도시를 떠나는 게 명확한 답이라고 여기는데 신랑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신랑에게 선전포고라도 내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 말이 그녀에게 어떻게 가 닿는지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지난해 겨울), 급하게 빈집을 알아봐 달라는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간으로 많이 전이된 상태란다. 이제는 완치가 아니라 생명연장을 위해 항암치료를 하라는 권고를 받았는데 그녀는 병원 치료는 받지 않고 싶다고 했다. 그저 우리 마을에 이사 와 나와 이웃해 살며 자연을 가까이하는 게 마지막 치료법이 아닌가 여긴다고.... 나는 곧장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분은 뭐라고 하세요?"
"제가 이 지경이 되니까 두 손 다 들었어요. 제 맘대로 하라고 하네요."

때마침 우리 마을에 주인이 팔려고 내놓은 빈집이 있어 말했더니 당장 보러 오겠다고 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제는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유보하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그래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어차피 누구나 내일은 장담 못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루하루 빛나게 살다 보면 언제 아팠나 싶을 때가 올 거예요."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이 되었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집을 보러 오겠다고 한 날,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 내어 내 마음을 보여 주었고, 복덕방 주인이라도 되는 양 빈집의 이모저모를 소개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녀 말고) 그녀의 남편이, 팔려고 내놓은 집 말고 엉뚱한 땅에만 군침을 흘리는 게 아닌가.

"당신이 저런 홑껍데기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겠어? 당신은 추위를 많이 타잖아. 그 집 말고 그 뒤에 터가 좋던데.... 거기는 안 판답니까? 그 뒤로 싹 밀어서 크게 주차장을 들이고 조립식으로라도 집 하나 지으면 딱인데...."
"큰 주차장은 뭐 하시려고요?"
"가끔씩 지인들 불러서 고기도 구워 먹고 하려면 일단 주차장이 좀 넓어야지요."

그 말을 듣고 사실 나는 좀 놀랐다. 아내가 위독한 상황에서 손님들을 위한 주차장까지 생각하며 집을 보러 다니다니! 하지만 그녀는 "난 모르겠으니 당신 뜻대로 하소." 하고 말았다. 여전히 남편의 뜻이 먼저였다. 그녀가 그렇게 나오는데 내가 나서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 보글보글 끓고 있는 토란탕. 푹 끓여 따숩게 먹으면 영혼까지 감싸안아 주는 맛이다. ⓒ정청라

그 뒤로도 그녀는 전화나 문자로 간간이 소식을 전해 왔다. 남편 회사 가까운 곳에 평당 40만 원 하는 땅을 샀다고, 집 짓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생겨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고,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그러다가 며칠 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우여곡절 끝에 집 공사가 대략 마무리되었고 항암치료 중에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결국 치료는 중단한 상태라며 우리 집에 오고 싶단다. 와서 내년에 텃밭에 뿌릴 씨앗을 얻어 가고 싶다면서 말이다.

나는 물론 환영이었다.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겼는데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지.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나 싶어 또다시 밥상으로 내 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팥을 듬뿍 넣고 밥을 짓고, 번거로워 잘 안 해 먹게 되는 토란으로 탕을 끓이기로 했다.(지난해 우리 집에 왔을 때 토란탕을 끓였더니 그녀가 암에는 뿌리채소가 약이라며 아주 맛나게 먹었던 게 떠올라서 말이다.)

다시마 담가 놓은 쌀뜨물에 미리 살짝 삶아 껍질을 까놓은 토란 넣고, 무와 당근도 썰어 넣고, 생들깨를 진하게 갈아 함께 넣고 푹 끓였다. 간은 된장으로. 이제 탕이 끓는 동안 죽순나물을 볶고, 밭에서 막 뽑아온 당근과 배추로 청국장 샐러드, 거기에다 동치미 썰어 올리고, 숯불에 김 굽고.... 평소에도 밥이 약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밥상을 차리지만 그날은 더더욱 약이 되라는 마음을 보탰다. 그녀가 알토란처럼 알차게 자기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담았다.

"그동안 이 밥상이 얼마나 그리웠나 몰라요."

그녀는 울먹이며 숟가락을 들었고, 다행히 밥을 맛있게 먹었다. 항암을 안 하니까 조금씩 입맛이 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입맛이 돌아오니 이렇게 돌아다닐 기력도 있다고.... 그녀의 말을 들으며 우리가 밥심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그래, 사는 게 뭐 별 건가. 잘 먹고, 그 힘으로 잘 사는 것. 그렇다면 잘 산다는 건? 남 눈치 볼 것 없이 내가 나를 나답게 사는 것. 그러자면 먼저 새장 문부터 박차고 나와 누군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일 게다. 지금껏 실속 없이 껍데기로만 살던 삶을 내던지고 온전히 알맹이로 살기!

그녀의 남편이 한자리에 있어서 툭 까놓고 내 진심을 다 말할 순 없었다. 하지만 시금치, 당근, 완두콩, 구억배추, 울타리콩 등 여러 가지 씨앗을 챙겨 보내며 나는 속으로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지금부터는 알맹이만 생각하라고, 그리하여 그녀만의 씨앗으로 솟구쳐 오르고, 그녀만의 밥상을 차려 내라고....! 이 아픔이 부디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스승이자 메시지가 되어 그녀의 길을 이끌어 주기 바란다. 더불어 거품을 걷어 내고 진정 붙잡아야 할 삶이 무언지 가르쳐 주기를.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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