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민간이 운영하는 교도소에 들어가는 예산을 감당할 수 없자 미 정부의 옛 유력인사가 훈수를 두었다고 한다. 흑인을 거세하면 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농담이었을까? 농담이라 해도 어처구니없는데, 백인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흑인이 교도소 입소자의 절반이라는 걸 이유로 든 그 유력인사는 평소 흑인이 살아가는 사회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게 분명하다.

얼마 전까지 대학은 기말고사 시즌이었다. 칠판에 한 문제를 써 놓고 자신의 생각을 답안지에 써 넣는 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군데군데 기침과 훌쩍이는 소리가 난다. 독감이 유행이라고 언론이 보도하더니 젊은이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조류독감으로 한 달 만에 근 2000만 마리가 죽었다는데, 대부분 조류독감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살처분되었다. 조류독감 원인균이 발생한 지역과 가까운 것에서 사육된다는 이유로.

독감에 걸린 사람은 옆 사람에게 닭이나 오리나 메추리보다 쉽게 감염시킬 테지만 우리는 훌쩍이고 콜록거리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지 않는다. 걸려도 금방 나아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걸 확신하기 때문인데, 한 방송사는 촛불집회 때문에 독감이 늘어난 것으로 뉴스 시간에 추정한 모양이다. 하긴 어렸을 때, 감기가 유행하면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고 선생님이 당부하곤 했지.

주말을 빼앗은 촛불집회는 우리에게 독감을 얼마나 안겼던가? 그 뉴스를 듣지 않았으니 전문가가 합당한 근거를 제시했는지 알지 못한다. 뜻밖의 독감 증가와 촛불집회의 상관관계를 의심하는 건 합리적인가? 그 방면 문외한이니 알 수 없지만, 수업 시간에 20분 이상 늦은 학생이 지하철 파업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때, 합리적이 아니라고 핀잔을 준 적 있다. 기관사의 파업 때문에 출퇴근 이외 시간에 배차 시간이 길어지는 점 죄송하다고 정거장마다 방송했지만 그건 현상이었다. 근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성과급제를 반대하는 파업을 주목해야 했다. 경영진과 달리, 주어지는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에게 성과급은 합리적인가?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 수당을 더 주겠다는 유혹은 자칫 작업장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취업준비생들은 그만큼 한숨이 길어질 것이다. 그런 성과급제를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지각은 기관사들의 파업이 아니라 지하철 경영자의 성과급제 고집 때문이었다. 점점 추워지는 주말마다 광장을 메우게 만드는 촛불집회가 독감환자를 늘렸는가?

▲ 공장식 양계장 모습. (이미지 출처 = KBS뉴스 동영상 갈무리)

조류독감은 왜 2003년 이후 폭발했는가? 2003년 이전에 조류독감은 없었을까? 그럴 리 없다. 조류독감을 철새들이 옮기는 경우가 많다는데, 2003년 훨씬 이전 겨울에도 철새들이 어김없이 날아왔는데, 조류독감은 왜 요즘에 와서 난리를 부를까? 관료들의 안일한 대처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일본보다 우리 관료가 치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 왔는데, 일본도 올겨울 100만 마리 가까운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일본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관료의 안일함 이외의 무엇, 죽인 닭, 오리, 메추리의 마릿수와 다른 무엇이 더 있는 건 아닐까?

2003년 이전과 이후, 우리 가금류 사육방식의 변화는 없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세계 각국의 모든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점보다 조금 더 많다는 우리 치킨 체인점에서 해마다 소비하는 치맥용 닭은 8억 마리에 가깝다고 한다. 전에 없던 현상인데, 8억 마리라, 하루에 200만 마리가 넘는다. 그런 닭은 기계로 처리할 테고, 기계는 크기와 무게에서 오차범위 안의 닭을 요구할 것이다. 기계의 요구에 응답하는 양계장마다 더 많은 이익을 경쟁적으로 남기려면 닭의 복지 따위는 살필 겨를이 없겠지. 그런 환경에 조류독감이 전파된다면?
 
수천 킬로미터 날아온 철새들은 기력이 쇠했다. 몇날 며칠 쉬지 못하고 일한 사람처럼, 충분히 먹으며 휴식을 취해야 면역력을 회복할 수 있다. 2003년 이전에도 그랬을 텐데, 2003년 언저리부터 철새들이 쉬던 갯벌이 크게 위축되었다. 새만금 일원의 갯벌도 인천공항 주변의 갯벌도 송도신도시의 갯벌처럼 사라졌다. 갯벌에서 쉽게 먹던 먹이도 일거에 자취를 감췄다. 그뿐이 아니다. 낙곡도 사라졌다. 고기와 우유를 남보다 빨리 많이 생산해야 하는 목장의 사료용으로 철새들이 오기 전부터 둘둘 말아 거뒀기 때문이다. 커다란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비닐 포장으로 잔뜩 쌓아 놓은 들판의 "공룡알", 즉 ‘건포 사일리지’가 그것이다.

사람의 독감은 머지않아 물러날 것이다. 살처분 인부의 과로사를 부르는 조류독감도 둔화될 테지만 내년 이후에는 어떨지. 내년 겨울에 주말마다 촛불집회를 위해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 믿는다. 노동자에게 부과되는 성과급제가 철회되었으니 지각하는 학생은 줄어들 텐데, 독감 환자도 줄겠지. 한데 조류독감은 반복될지 모른다. 우리가 쇠고기와 치맥 소비를 자제하지 않으니.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