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45]

최근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분들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피해자들이 낯선 이를 만나는 걸 어려워하니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우리나라에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정부 차원의 기관과 시설들이 제법 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천주교회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분은 이 시설 책임자들 가운데 한 분이다.

이 인터뷰에서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가 천주교 신자이고,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이혼을 선택하며, 또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교회를 떠나거나 냉담을 선택한다는 답을 들었다. 어떤 경우일까? 시설 책임자가 직접 들려준 사연 하나를 소개한다.

A는 40대 초반의 여성이다. 그녀는 30대 중반에 네 살 연상인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다. 남편은 천주교 신자였다. 그녀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외짝교우에 대한 성당의 배려로 입교하였다.
결혼 후 처음 몇 년은 남편 일이 잘되고, 다툴 일도 적어 생활이 순탄하였다. 그러다 남편의 일이 잘 안되며 살림이 쪼들리기 시작하자 다투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때부터 남편의 폭력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한 번에 그칠 거로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멈추지 않았다.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예외 없었다. 그래도 신자이니 기도하면 나아질 거로 생각하고 성당에 열심히 다니며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러나 남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얼마 전부터는 아이까지 때리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아이만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평소 알아 두었던 쉼터에 연락해 아이를 데리고 입소하였다. 이곳에서 상담을 받고 다른 피해자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나갔다.
시설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가정으로 돌아갈지 이혼을 할지 여러 달을 고민했다. 그러나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남편의 과거사를 아는 터라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해서 이혼을 선택했다.
신앙생활은 고민이 많았는데 역시 포기하였다. 가정 폭력을 경험하는 동안 교회의 도움을 기대하였으나 뾰족한 답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에서였다. 남편도 신자였다. 신앙이 있다면 모를까 부족한 상태이다 보니 이 모든 불행이 신앙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천주교가 싫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시설에서 나가자마자 시설 관계자들과 연락을 끊고 교회와도 인연을 끊었다.

▲ 가정폭력 예방 동영상의 한 장면. "가정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불행한 가족사다. 폭력이 대물림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여성가족부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5대 이혼 사유 가운데 하나가 ‘가정폭력’이다. 과거엔 폭력이 있어도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엔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추세라 한다. 사회 분위기가 달라져 폭력 사실을 감추지 않고,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도 여러 경로를 통해 습득하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 쉼터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가정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불행한 가족사다. 이른바 폭력의 대물림 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 가정 폭력에 노출되었던 이들은 결혼 뒤 가정폭력을 대물림할 가능성이 크다. 외부인의 적절한 개입과 본인의 노력으로 자신의 과거를 해결하지 못하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때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교회의 사목대응 능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잘 알기에 그리 큰 역할을 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가정폭력이 빚는 비극 가운데 하나는 자녀들의 가출이다. 엄마가 맞는 모습을 보고 자라다 사춘기에 이르러 가출하는 경우가 제법 된다는 게 이쪽 관련 일을 하는 이들의 전언이다.

다른 일로 이런 일에 종사하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이분은 가출해서 성매매에 빠진 여자 청소년을 돕는 시설에 종사하고 있다. 요즘은 성매매를 중개하는 스마트폰 앱까지 나와 성매매가 쉽다고 한다. 가출한 여자 청소년은 가출비용을 손쉽게 마련할 수 있는 이 일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분이 일하는 시설은 성매매에서 벗어날 의지가 있는 청소년이 이용하는 곳이다. 아이들과 상담해보면 가출 원인이 대부분 가정 폭력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폭력을 견디기 어려워, 엄마가 소극적 대처를 하는 것이 답답해 그리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는 다행인데, 상당수의 청소년은 그 길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을 이용하는 청소년 가운데 일부가 신자다. 신자 가정은 가정 폭력이 드물 것이라 믿고 싶은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통계가 없으니 그렇게 믿어보는 수밖에. 이렇게 가출해서 성매매에 빠지거나 다른 범죄에 연루되면 교회와는 담을 쌓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레 냉담자가 된다.

최근에는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이용자들이 줄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이것이 가정폭력이 줄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시설 입소는 줄고 있는데, 상담 전화는 더 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마 정부 정책의 변화, 피해자들의 거주지 소재 시설 이용 기피, 과거와 달리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자구책 마련 등이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교회는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박문수(프란치스코)

신학자,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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