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 흙먼지로 흩어질 때쯤에.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역진(逆進)

- 닐숨 박춘식


이제 이 땅에서 이 이상 - 살기 어려워 - 나는 역진(逆進)을 붙잡는다 - 옹기가마 - 탱크 군사혁명 독재 총살 - 38선 동족상잔 - 일본 포악무도 압제 - 명장 이순신 - 민족의 혼을 일으켜 세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 고려 - 삼국시대 - 아으, 그 넓은 고구려 벌판 - 시나이산의 천둥 번개 - 고조선 - 야곱과 아브라함 - 바벨탑 - 노아의 방주 - 걸어 걸어 에덴동산 대문 - 알몸 입장 - 팻말 밑에 쓰러진다 -

천사가 옷을 몽땅 벗으라고 한다
벗고 또 벗어도 옷이 겹겹으로 벗겨진다
그다음에는
한 줌의 흙이 될 때까지 물기를 빼라 한다
참회의 눈물로 버려야 한다는데

나는 지푸라기처럼 흙바닥에 누워
깡마른 눈꺼풀로 하느님을 어렴풋이 바라본다
마지막 눈물방울이 흙먼지로 흩어질 때쯤에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십여 년 전, 대학 강의 칠판에 ‘國蛔議員’을 적었는데 학생들이 멍하니 봅니다. 한자를 풀이해 주면서, ‘우리나라 특권층인 국회의원들을 이렇게 욕하면 안 되지만 현실이 이러하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니까, 올쏘 올쏘 캬아, 손뼉 치며 소리 지르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입술에는 반성 겸손 봉사 머슴 등등 붙이면서, 그 순간 대뇌에는 돈구멍 권력 횡령 요정 등등 가득하리라 여깁니다. 부정선거 독재 사기 군림 매수 독선 유아독존 거짓말 이러한 권력형 단어들이 조합되어 창조된 말이 ‘이게 나라냐’ 하는 말인 듯합니다. 컴퓨터에게 영어 번역을 요청하니까, <한국어> - 이게 나라냐?’ <영어> - This is the country? 라고 보여 줍니다. 외국 갔을 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This is the country?’에서 왔노라고 말해도 되는지, 어느 부서에 여쭈어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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