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우리신학연구소가 최근 서울 마포역 부근의 주택가로 자리를 옮겼다. 12월 6일 오전 새 사무실에서 만난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바오로)은 “사람은 물적 존재이므로 공간에 맞춰 사고한다”며 그런 점에서 연구소의 위치, 공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에서 전세를 살던 연구소가 사무실을 사 장기적 거처를 마련한 데 대해 황 소장은 “긴 안목의 계획을 수립해도 되겠다는 안정감은 든다”고 말했다.

가톨릭 평신도들의 연구소로 1994년 문을 연 우리신학연구소는 최근 격월간지 <가톨릭평론> 발간, ‘여성혐오’(misogyny)에 관한 윤독회, 아시아 청년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월 18일 선출된 황경훈 소장은 가톨릭 철학자 버나드 로너간과 보조국사 지눌을 비교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 종교학과 ‘비교종교론’ 등 강의도 맡고 있다.

아래는 황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최근 우리신학연구소가 집중하고 있는 연구 주제, 프로젝트가 있다면?

황 - 연구소는 <가톨릭평론> 발간, 그리고 강남역 20대 여성 살해사건을 계기로 ‘여성증오’, ‘여성혐오’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 왜 피해자가 여성으로 표현됐는지 한국의 종교들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구소 실무자, 연구위원, 종교학 및 철학 전공자 등이 모여 여성혐오에 대한 윤독회를 하고 있다. 계속해야 할 것으로 ‘기본소득’에 관한 연구가 있었는데, 강남역 사건이 터지면서 여성혐오를 현안으로 다뤄 보게 됐다.

우리가 항상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종교가 자기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 배척된 사람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즉 종교의 공공성, 공공적 기능과 역할이다. 이러한 고민은 여성혐오 의제와도 관련 있다. 세계, 우주의 반은 여성이다.

물리적으로 힘이 없는 여성이 폭력에 노출되는 게 한국 사회다. 아직 한국 사회는 우리가 가야 할 인류 발전 단계에서 보면 원시 단계라고 보인다. 돈, 권력이 없는 약한 남성들이 경쟁에서 도태되고 뒤로 밀렸을 때,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는 상황에서는, 폭력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 여성에게 나타나는 것 같다. 성적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정치경제적 문제다. 그런 것을 연구하는 것이 종교의 공공성과도 직결된다고 본다.

카를 라너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세계교회를 향한 시작의 시작’이라 말했다 한다. 예수회 신학자로 라너와 같은 해에 태어난 버나드 로너간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보며 교회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봤다. 두 사람이 말한 것은 다르지만 비슷하다. 교회가 중세의 일방적이고 하나뿐인 세계관을 갖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세상 사는 사람들의 관점과 무관하지 않게, 관심을 갖고 더불어 살겠는가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특히 한국 등 아시아는 서세동점, 식민지 역사를 공유하는 대륙이다. 아시아에서 역사성의 회복이라 할 때는 식민지잔재 청산 문제가 심각하게 나온다. 우리는 1만 명에 달하는 순교자를 자랑하고 평신도가 만든 교회라고 하는데, 그건 다 소비되는 수식어였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서 어쨌다고?

진정한 민중사 입장에서, 사람들 관점에서 역사를 볼 때 그리스도교가 올바른 일을 할 수 있게 되려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인정하고 용서를 청해야 화해를 이룰 수 있다. 제주교구에서 4.3사건과 신축교안과 관련해 화해의 제스처가 있어 왔지만, 공식적으로 한국 천주교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 전체는 식민지 시대의 부역 사실을 제대로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호의호식할 때 많은 이를 굶주리게 했고, 많은 이에게 희생과 죽음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한국 천주교는 그 피의 대가로, 프랑스의 보호, 피선교지가 될 수 있었고, 일제시대의 선교 자유를 누리기 위해 민중들의 피의 대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역사성 회복도 공공성 관점에서 끌어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평신도 관점에서 그걸 보는 것이다. 공공성 신학, 공공성 의제는 평신도 시각을 버릴 수 없다.

지금의 제도교회는 매우 물질화되어 있고 영리사업이 많다 서울대교구가 ‘평화드림’을 시작한 지 10년 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제도교회가 가는 것 같다. 모두가 말려도 소용 없고 많은 부분은 신자유주의 경쟁 동학에 깊이 편입되어 있다. 병원도 세속 병원이 워낙 잘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경쟁하다 보니 목표가 가톨릭 정신이 아니라 돈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많이 본다.

평신도의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성직자 중심의 제도교회가 영리사업을 운영하고, 그런 결정을 하는 데 평신도는 철저히 소외된다. 한국에서 성직중심주의와 물질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 관점을 버릴 수 없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인데 왜 평신도만 따지는가? 올바로 바로잡기 위해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일이 과연 정당한가?

▲ (뒷줄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우리신학연구소 황경훈 소장, 이미영 <가톨릭평론> 편집장, 구은향 사무국장, 경동현 연구실장. ⓒ강한 기자

- 최근 뜨거웠던 ‘여성혐오’ 논쟁에 대해 한국 천주교에서는 깊은 논의가 없었던 것 같다.

황 - 여성혐오의 종교학적 근원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모계중심사회에서 부계중심으로 넘어오면서 모든 종교에서 여성은 터부시됐다. 성서에도 월경과 관련해 불결하게 보는 표현이 있다. 이런 것은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종교 전체에서 보인다.

성서가 나쁘다, 좋다기보다는 당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온 경험이고 체험이기 때문에 시대적 한계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무한하지만, 시대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손으로 성서가 쓰였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현대 언어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성서의) 해석과 적용도 평신도가 할 수 있는 역할인데 그것이 매우 위험시된다.

교회 내 여성운동은 훨씬 더 후퇴했다. 강남역에 여성뿐 아니라 조그만 아이들까지 찾아와 헌화하고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보고 있는데, 한국 천주교회에서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온다. 세계교회의 시작의 시작을 50년 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했는데, 한국은 그 이전에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어떻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야전병원으로서의 교회가 되겠는가.

그와 관련해 2가지 더 말하고 싶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synodal Church”라는 표현을 썼다. ‘시노드로서의 교회’다. 단체성(collegialitas)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 키워드라면, 공동합의성(synodality)에 바탕한 교회, 다른 말로 공의회는 공동 합의를 통한 합리적 과정과 절차로서 친교의 공동체가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주교들뿐 아니라 사제, 수도자, 평신도 사이의 공동 협력이다.

이는 2가지로 연결되는데, 하나는 절차의 민주성, 또 하나는 평등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친교의 공동체다. 한국 교회에는 2가지 다 없다. 성직중심주의로 인해 평등은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다.

민주적 절차는 우리신학연구소 등 평신도들이 끊임없이 말해 왔다. 본당 사목위원회를 놓고 보면 충분히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결정권을 사제에게 주지 않고, 사목위원들이 다수결로 결정하거나 민주적, 합리적 절차 통해 결정할 수 있다. 사제가 결정권을 내려놓으면 된다.

교구 단위도 그렇다. 지금은 주교와 총대리, 참사 몇 명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 큰 교구의 정책을 밀실에서 결정한다. 이를 확 열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논의한 대로 공동합의성에 기초해,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교구 내 사람들이 초청된 전문가와 함께 모여 정책을 결정하는 게 왜 불가능한가? 지금도 가능하고, 그건 공의회 정신에 바탕한 것이다. 전국도 마찬가지다. 왜 주교회의, 주교들만의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나? 공동합의성을 바탕으로 한 친교의 공동체가 된다면, 지금 서울대교구가 추구하는 물질주의적인 모습 같은 것은 분명히 제동이 걸릴 것이다.

▲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모지들이 강남역 출구에 붙여 있다. (이미지 출처 = sbs뉴스 동영상 갈무리)

-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헌에 대해 토론하는 심포지엄이나 세미나는 무척 많지 않았나?

황 - “당장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한두 번 논의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교구 시노드를 몇 군데서 했다. 서울대교구, 인천교구 등 시노드를 잘 했다. 그런데 시노드 이후 이행된 게 아무것도 없다.

지금 당장 하라는 것은 ‘논의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실천하라’는 말이다. 실천하지 않는 논의만 무성할 것이면 왜 돈과 에너지를 그렇게 쓰나. 좋은 얼굴로 보이려는 것 말고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면피’라는 혐의를 벗으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실천하라. 실천은 너무 쉬운데 안 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를 선물로 보지 않고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이 은총의 때를 발로 걷어차고 있지 않는가? 신앙인이라면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역할을 정말 하고 있는가. 그 눈물로 자기 배를 채우고 있는가?

결과적으로 보면, 대구의 ‘희망원’이 그런 것 아니었나? 그것을 한국 천주교 전체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교황과 교황청이 이런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은총의 때를 선물로 못 받아들인다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 최근 우리신학연구소의 연구 성과는 일반인들과 어떻게 공유되고 있는가?

황 - 지금은 <가톨릭평론>이 가장 중요하다. <가톨릭평론>을 통해 공공성, 교회가 어떻게 사회와 더불어 아파하고 함께할 것인가, 역사성 회복, 세계교회의 시작의 시작을 다루려는 것이다.

아시아 차원에서 젊은 평신도 활동가 양성을 위해 열흘짜리 단기 워크숍을 매년 한다. 그 목적도 연구소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는 그것에 많이 신경 쓰고 있다.

연구소 주도로 아시아의 4개 단체가 함께 ‘올포럼’(ALL Forum)을 만들었다. ‘Asian Lay Leaders Forum(아시아 평신도 지도자 포럼)’의 줄인 말로 청년 양성 기관이다. 마닐라에 사무실과 상근자 1명을 두고 올해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갔으며, 필리핀 NGO로 등록하는 법적 과정에 있다.

여기서 주요하게 하는 것으로 단기 청년 양성 프로그램인 아시아 청년 아카데미, 신학 포럼이 있고, 내년 2월에 계획 중인 것으로 지역 방문 ‘무빙 스쿨’을 인도네시아에서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 평화영성 순례도 계획하고 있는데, 다종교 상황과 영성에서 배우고, 분쟁 지역을 가 보는 대안 순례 프로그램이다. 순례라고 하면 유럽의 루르드나 이스라엘만 생각하는데, 아시아로 눈을 돌려도 종교적 영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충분히 많다.

▲ 2011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세계화의 두 축-이주민, 여성에 관한 청년 사회의식 각성 프로그램"에 참가한 청년들. ⓒ황경훈

- 최근 연구소의 재정 상황은 어떤가?

황 - 이사를 오는데 돈이 많았으면 대출을 안 받았을 것이다. 연구소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출자금을 모으는 형태였다. 이에 대한 배가운동, 새 공간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벌이며 빚을 갚아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연구소의 현안이다.

다른 연구소들은 교구나 수도회에 속해 있어서 재정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은 따로 있지 않나? 연구소가 직접 생존까지 책임지면 연구가 제대로 되겠나? 이를 우리신학연구소는 과거 25년간 해 왔고, 지금도 편안한 상황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이 고민도 해야 한다.

지난 25년이 시작과 생존을 위한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새 공간에서 생존도 필요하겠지만, 도약의 시기로 봐야 할 것 같다. 연구소의 도약은 큰 사무실을 얻는 게 아니라, 앞서 말한 연구 의제에 대한 성과를 얼마나 많이 내는가로 봐야 한다.

신학적 작업도 중요하고, 다른 하나로 천주교회를 한국의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로 파악하는 종교학, 사회학적 관점도 중요하다. 자꾸 신학적 언어로만 말하면 그 안에 갇히는데, 종교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천주교를 한국 사회의 한 종교로 바라볼 수 있고, 또한 사회학, 역사적 관점에서 시민사회의 일부임을 볼 수 있다. 그런 작업을 가까운 학문과 더불어 함께 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25년처럼 앞으로의 25년도 이러한 상황이라면 평신도의 시각과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 연구소에게 평신도 관점은 초심을 잃지 않고 나가는 원동력이다.

- 독자들과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황 - 평신도들은 종교와 일상을 너무 가파르게 구분해 왔다. 현실이 중요하다. 현실에서 만나는 하느님 체험을 사람들에게 돌려 주고 살아가는 데 힘이 되게 하는 것이 연구소의 목적이고, 한국 천주교가 발굴하고 발달시켜야 할 영성이라 생각한다. 영성이 꼭 일상을 떠난 다른 데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

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한 종교학, 신학이 필요하고, 특히 인간 중심의 영성도 필요한 것 같다. 유교, 무교를 다시 보고, 서구가 일방적으로 규정한 종교성, 영성을 넘어서 사람, 삶 중심의 영성을 만드는 것이 평신도들, 그리고 평신도 연구소인 우리신학연구소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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