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동방 교회에서 유래된 ‘예수의 기도’를 종종 드리기 시작한 지 10년쯤 되는 것 같다. 최익철 신부께서 옮긴 "이름 없는 순례자"를 읽은 뒤부터다. 간단명료해서 외우기에 좋았다. 어떤 일을 앞두고 화살기도처럼 한두 차례 암송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 시간이 좀 있을 때는, 숨을 들이쉬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님’, 내쉬면서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10차례 이상 반복했다. 심장 박동에 맞춰 반복하라는 가르침도 있지만 어려운 것 같아 시도해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자비에 담긴 뜻은 잘 알지 못했다. 사랑이나 자비나 그게 그거 아닌가, 사랑의 다른 표현이 불교에서 내세우는 자비가 아닌가 생각했다. 지난해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고, 4월에는 칙서 ‘자비의 얼굴’을 반포했지만 읽어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희년이 거의 끝나가는 지난 달 중순, 한 신부님에게 ‘자비의 얼굴’을 소개하는 말씀을 듣고 읽어 봐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다. 찬찬히 읽어 보니 비로소 막연했던 ‘자비’가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자비는 관념적일 수도 있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이끄는 안내자라 할 수 있다. ‘자비의 얼굴’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사랑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다. 제7장은 ‘시편 136편의 모든 절마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라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은 공간과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영원한 사랑의 신비 안으로 들여놓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사랑의 신비 안으로 들여놓기 위해서는 주님의 자비가 불가결하다는 뜻이다. 자비가 사랑의 신비의 동력인 셈이다.

그런데 왜 자비인가? 교황은 크게 두 가지를 염려하시는 것 같다. 지구촌에서 가엾게 여기는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병자들, 고통받는 이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여러 기적을 행하셨다. 또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죄인이며 세리인 마태오의 죄를 용서하시고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삼으셨다.

▲ 11월 29일 3차 대국민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주변 관리 제대로 못한 것은 큰 잘못"이라고 했다. (이미지 출처 = YTN뉴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하지만 이 시대의 우리는 존엄을 박탈당한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보려 하지 않는다. 위선과 이기심을 감추기 위해 ‘기꺼이’ 무관심에 빠져 있다.(제15장) 교황은 특히 '슬프게도 우리의 문화에서 용서에 대한 경험이 점점 드물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용서라는 말조차 사라져 가는 것 같습니다.'(10장)라고 걱정한다. 용서 없이는 지구촌이 평화를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용서는 우리의 나약한 손에 쥐어진 도구이며 이로써 우리는 마음의 평온을 얻을 것입니다. 반드시 증오와 분노를 버리고, 폭력과 복수를 포기해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9장) 교황은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이며, 그 자비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난다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씀을 인용한다. 자비는 참된 하느님 자녀의 식별 기준이 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단언하신다고 강조한다.

교황은 누구라도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용서를 청하고 회개해야 하지만, 범죄 조직에 속한 이들에게 더욱 간곡하게 회개하라고 권유한다.(19장) 돈 앞에서는 그 무엇도 가치와 존엄이 없다고 생각하는 끔찍한 덫에 빠지거나, 피 묻은 돈을 긁어모으려고 폭력을 쓰는 자들, 부패를 저지르거나 그에 연루된 사람들을 예로 든다. 그같은 범죄를 우리 시대의 고질로 여기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부패는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의 근간을 위협하기에 하늘에까지 이르는 중대한 죄이며, 부패의 무도한 탐욕은 약자의 미래의 계획을 산산조각 내 버리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므로, 어떠한 부정행위라도 고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포함해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매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포함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펼치는 촛불시위에 100만 명 이상이 모이는 것은 박근혜 부패 스캔들이 하늘에까지 이른 범죄임을 보여 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교황은 자비와 정의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21장) 하느님께서는 자비와 용서로 정의를 넘어서지만 정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처벌을 받는 것이 끝이 아니라 회개의 시작일 뿐이다. 이는 박근혜 스캔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자비는 온정주의와는 다르다. 박 대통령을 포함해 부패 연루자는 모두 엄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처벌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진심으로 회개해야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자비를 경험할 수 있다. 한데 박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길은 뻔하다. 11월 20일 ‘자비의 희년’은 끝났지만 이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황진선(대건 안드레아)
논객닷컴 편집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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