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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우리 집 고구마가 왜 꿀맛인고 하니[부엌데기 밥상 통신 - 27]
정청라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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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7  09: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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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같이 모임을 하는 젊은 엄마가 있는데 아들을 낳고 육아에 전념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남편과 일을 바꾸기로 했단다. 바깥일을 하던 남편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하고, 자기는 밖에 나가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오기로 말이다. 그런데 아내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던 젊은 아빠가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고부터 석 달 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아내를 향해 고무장갑을 집어 던지며 이렇게 소리쳤단다.

"이놈의 살림은 죽어야 끝나는 건가? 이제 안 해. 도저히 못 해!"

그 얘길 들으며 친구와 함께 쓴웃음을 지었다. 가끔 역할을 바꾸고도 새롭게 자기 정체성을 찾는 아빠들 이야기도 전해 듣지만, 그런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육아와 살림이란 어찌 보면 무덤 아닌가. 나를 묻어 내 몸과 마음을 아끼는 마음을 다른 존재를 향해 열어야만 지속할 수 있는 성질의 것. 그런데 30년 가까이 나 하나만을 위해 살던 몸이 하루아침에 나를 생매장시키는 게 어디 쉽냐는 말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애 셋 키우는 거 힘들지 않냐는 물음 앞에서 '사는 건 원래 힘들지 않나요?'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고는 하지만 가끔은 정말 힘에 부쳐서 뭐라도 집어 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얼마 전 온 식구가 부산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그 여파로 다울이가 감기에 걸렸다. 아파도 낮에는 잘 노니까 큰 걱정은 안 했는데 밤이 되어 열이 오르거나 코가 심하게 막히면 자다가 깨어 괴로워하며 잠을 못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틀 연속으로 잠을 설친 상황에서 이번에는 다랑이가 감기에 걸려 또 이틀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나까지 감기에 걸려 연이어 일주일 가까이 밤에도 쉴 수 없게 되자 나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이곳에 연재하는 원고도 써야 하고, 아침이면 여느 날과 다름없이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데 눈이 잘 안 떠질 정도로 피곤한 거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쉬자' 하고 자체휴가를 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힘들다고 널부러져 있다가는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되고 온 하루가 어그러질 게 불 보듯 뻔한 것을....

'에고 에고' 소릴 내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이불을 개고 밥솥에 고구마를 찐다. 아이들 옷도 입힌다. 그리고는 "얘들아, 절하자!" 하고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아이들과 나는 아침마다 절을 60번씩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일종의 아침 운동이자 기도인 셈.)

"오늘은 절 안 하면 안 돼? 엄마도 힘들잖아."
"안 돼. 힘들다고 안 하면 몸도 마음도 약해져."
"그럼 고구마 먹고 나서 하자."
"안 돼. 절하고 나서 먹는 거야."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고 다 같이 몸을 숙여 절을 하려는 찰나, 이번에는 다나가 운다. 잠깐이라도 젖을 물려 진정시키려고 보니 똥을 싼 거다. 할 수 없이 똥부터 치우고 절을 다시 하려는데 벌써 아이들은 흩어져 있다.

"얼른 와. 절하게...."
(다울, 책을 보며) "이것 좀 읽고...."
(다랑,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어서) "절 안 하면 좋겠다."

결국 또 다시 카오스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늘상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거다. 흡사 머리 아홉 달린 괴물과 싸우는 기분이다. 어렵사리 괴물의 머리를 자르면 그 머리가 달라붙어 다시 살아나고, 자르면 또 달라붙어 달려들고 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질 순 없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 기어이 이기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 그럼 엄마 혼자 절한다. 혼자 절하고 혼자 고구마 먹어야지. 보아하니 너흰 아직 배가 안 고픈 것 같네."
"안 돼. 나도 할 거야."
"나도!"

그제서야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아이들....(역시 먹는 걸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해야 말을 듣는다.) 아이들과 나는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게 해 주세요", "밥 꼭꼭 씹어 먹게 해 주세요", "힘들수록 힘내게 해 주세요" 등의 소원 말과 함께 몸을 숙인다. (그때그때 상황과 사정에 따라 소원 말은 바뀐다.)

   
▲ 우리 집 아침밥은 고구마.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정청라

왜 꼭 절을 해야 하냐고? 꼭 절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절을 하는 것은 오늘도 순순히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자포자기 몸짓이 아닐까 싶다. '내가 졌소, 그냥 살겠소' 하고 나를 내려놓는 것. 내 몸 하나 편히 살겠다는 헛된 소망을 싸그리 지우고 삶이 주는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다짐 같은 것.

놀랍게도 그렇게 절을 하게 되면 뻑뻑하고 무거웠던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비틀비틀 쓰러질 것 같았던 오늘이 바로 서는 느낌을 받는다. 그건 아이들도 다르지 않은지 절하고 난 뒤엔 눈빛과 표정이 달라진다. 드디어 오늘 하루를 선물로 와락 껴안은 느낌이랄까? 무덤을 통과한 뒤라야 더욱 생기발랄해지는 이 놀라운 역설!

"이제 됐다. 고구마 먹자."
"와, 고구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아침밥으로 따듯한 고구마를 먹는데 문득 부처님께서 삶을 빗대어 하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광야를 걷고 있는데 성난 코끼리가 쫓아오더란다. 황급히 달아나고 있는데 우물이 하나 보이기에 우물 옆에 있는 나무뿌리를 잡고 내려가 우물 속에 숨었다. 이제 살았구나 하고 숨을 돌리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난데없이 검은 쥐 흰 쥐가 나와서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우물 아래선 독룡이 입을 벌리고 있지 뭔가. 게다가 우물 벽 네 방향에선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벌들까지 달라붙어 쏘아 대고.... 그런데 그 위급하고 위태로운 와중에 그 사람은 나무뿌리에서 떨어지는 꿀방울을 받아먹고 있다. 그 와중에도 달콤함이 느껴지나? 아니 그 와중이어서 더 달콤한지도!

나도 오늘 고구마의 꿀맛에 기대어 이렇게 외쳐 본다.

"삶이 고해라 해도, 역시 태어나길 잘했어! 부엌데기 엄마로 사는 게 몹시 힘들긴 해도, 나는 이렇게 살래. 기꺼이 이 길을 갈래!"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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