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강서 신부
-사제연례피정 용산에서...계속 이어갈 것

▲ 이강서 신부는 5월 들어 지금까지 용산에 머물며 유가족들과 더불어 식구처럼 지내고 있다. 그들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지난 5월 1일부터 8일까지 용산참사현장에서 사제연례피정을 한 사제가 있다. 이강서 신부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가혹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가족들과 피해 주민들 속에서 깊은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지내고, 지난 7일 피정을 마치면서 그후로도 계속 용산에 남아 있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용산참사에 대해 '기막히게'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100일이 훨씬 넘도록 문제해결이 되지 않자 범국민대책위 쪽에서 용산에 농성장을 설치하려다 경찰의 침탈로 무산되고, 걸개그림조차 경찰이 빼앗겼다. 나중에 경찰서에서 걸개그림과 압수된 물품들을 되찾아 오면서 경찰에게서 지나친 대응에 대한 사과문까지 받아오긴 했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어버이날 행사를 하면서 유가협의 배은심, 이소선 여사 등이 방문했다. 이날 햇볕을 가리기 위해 이동식 천막을 치려다 경찰과 부딛쳐 실강이를 하는 과정에서 매일미사를 봉헌하며 용산현장을 지켜오던 문정현 신부가 무릎을 다쳤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마을잔치를 열었는데, 경찰에서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현장을 에워싸고 행사를 방해했다. 그 와중에도 참석자들은 100인분은 됨직한 비빔밥을 나눠먹으며 잔치를 이어갔으며, 그새 경찰이 봉쇄를 풀고 일시에 물러났다. 이강서 신부는 이 때 문정현 신부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갈 때 물이 갈라지는 것처럼 경찰이 사라졌다"고 말한 것을 인상깊게 기억했다. 

용산에서 여전히 불타고 계시는 하느님

▲ 천주교열사 추모미사에 앞서 용산참사로 목숨을 빼앗긴 이들의 영정 앞에서 연도를 바치고 있다.

이강서 신부는 사제가 되고 나서 "만 18년 만에 특별한 개인피정"을 했다고 말한다. 수시로 용산상황을 보고한 탓인지 김운회 사회사목 담당주교도 용산에서 피정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는 이번 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세상을 피해가서 하느님 속에 침잠하는 것'을 피정이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광야체험일 텐데, 이제 광야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해야 합니다. 광야란 척박하고 살기 힘들고 끔찍한 장소인데, 참사 현장이 바로 우리시대의 광야입니다."

그는 시장만능주의에 쏠려 있는 우리시대에 광야란 용산현장처럼 하느님이 계실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장소라는 것이다.  그는 피정 기간 동안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가?" 계속 물어보았으며, 참담한 현장에서 그 답이 생생하게 울려퍼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하느님, 구원하시는 분, 역사 속에 살아계시는 분이 인간탐욕의 불꽃 속에서, 이익을 위해 인간존엄성 따위는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는 메마른 무관심 속에서 여전히 용산현장을 통해 불타고 계신다"고 느낀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묵상하는 십자가 고통을 이 현장에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으며, 그 고통을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이 100일 넘게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피정이 끝나도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분 하느님이 이곳에 계시므로.

그동안 이강서 신부와 빈민사목위원회는 도시빈민 문제를 다루며 강제철거 반대운동과 세입자들의 고통을 알리는 일을 해왔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서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마리아가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그들과 함께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로 "문정현 신부가 조용히 나를 초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역사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이곳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먼지같이 하찮아보이는 이들도 존엄하고, 이들의 생명이야말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며 우리가 추구할 가치임을 깨달아야"하는데, 이곳 용산에서는 이 가치가 역전되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강서 신부는 용산사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교회 안에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구차하게 내 행동의 정당함을 입증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누가 옳은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라는 것이다.

▲ 이강서 신부와 인터뷰를 나누었던 용산 프레스센타 안에 걸린 그림. 용산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마음은 아직도 깊은 물속에 잠겨 있다.

시장만능주의가 빚은 용산참사, 지역 문제 아니다

한편 고인들의 장례가 계속 미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강서 신부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게 교회의 가르침이다. 그 존엄성이 훼손되고 침해받고 무시될 때 교회는 이를 고발해야 한다. 장례식을 미루면서 고인의 발목을 잡고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지만, 그것은 억측이다. 이들은 단순히 고인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정부에 의해 용산참사의 원인제공자이며 책임자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의 태도에 유족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강서 신부는 이런 태도를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건은 공권력 남용의 결과이며,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어도 상관없다는 시각이 걸려 있는 문제라고 본다. "가족들은 보상을 바라고 투쟁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고인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장례식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고 있다. 지금 장례를 치르면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격이기 때문에 유족들은 차라리 우리까지 죽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강서 신부는 용산참사에 걸려 있는 사회적 의제가 엄청난 것임을 강조했다. 시장만능주의가 낳은 경제사회정치 분야 등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건이 그대로 묻혀 버리면, 토목한국을 주장하는 정부는 재개발과 뉴타운 건설, 대운하 개발 등을 아무 걸림 없이 그냥 진행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피해를 입어도 감수해야 된다고 말할 것이다. 결국 어렵게 우리 사회가 쌓아온 인권문제조차 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 역시 이 문제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잘못을 시인하고 나면, 사업을 진행하면서 줄곧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무너질 것을 알고 고집을 부리며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무조건 "다 너희들 탓이야"하면서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용산참사는 단순한 지역적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과 거대자본 및 권력이 벌이는 거대한 싸움의 한복판이다. 지난 해 촛불처럼 양심세력들이 얼마나 많이 여기에 동참하느냐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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