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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녀 양육, 그리고 냉담[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44]
박문수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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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2  11: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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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은 교회에 냉담하고, 국민들은 국가에 냉담하는 요즘이다. 이유를 살펴보면 둘 다 냉담을 하는 사연이 깊다. 하루아침에 희망이 실망으로 바뀐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암도 십여 년 가까이 진행되다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현재의 상황은 상처가 깊다 못해 곪아 터진 것이다. 이런 시절엔 그저 과거의 지혜와 깨어 있는 정신으로 비교적 성공 확률이 높은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오늘은 주변의 여러 이웃들이 나눠 준 이야기를 통해 냉담의 원인 가운데 한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주 함께하는 모임에서 한 자매님이 자신은 이제 몸이 풀려 본격적으로 성당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며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 사연의 일부를 소개한다. 그녀는 50대 초반이고 전업주부다. 그녀는 30세에 영세하였고, 그 즈음에 결혼도 하였다. 남편은 신자이긴 하나 성당엔 나가지 않는다.

“전 가톨릭에 대한 인상이 좋아 서른에 영세를 했어요. 얼마 안 있다 성당에 다니는 현재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영세 받고 얼마간은 성당에 열심히 다녔어요. 그러다 첫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백일 즈음에 영세시키고 혼자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일 데리고 성당에 나가 보려 애를 썼지요.

처음엔 아이를 데리고 교중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울거나 칭얼대면 신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그렇게 하다 도저히 신자들의 눈치를 견딜 수 없어 유아실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유아실도 미사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엄마들은 조용히 시키려 같이 쫓아다니고. 또 저 자신도 애가 울면 달래랴 젖 먹이랴 신경을 쓰느라 미사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에 곧 지쳐 남편에게 협조를 구했습니다. 같이 성당에 나가든지, 아니면 집에서 애를 봐 주든지 해 달라고 청했는데 남편이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싸우기 싫고 지치기도 해서 그냥 성당을 쉬기로 했습니다.

이 년 뒤 둘째를 낳았습니다. 둘째도 곧 영세를 시켰습니다. 둘째를 영세시킨 참에 다시 성당에 열심히 다녀 보겠노라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당에 애 둘을 데리고 가는 일은 여간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해서 이 일도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전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일단 애들이 클 때까지 애 키우는 일에만 집중하고, 그 다음에 못했던 일들을 한꺼번에 열심히 하자! 해서 그 이후 애 키우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고 나서부터 낮 시간에 여유가 생겼어요. 이때부터 냉담을 풀고 하고 싶었던 활동들 특히 성경공부에 열심히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봉사도 시작했습니다. 둘째까지 대학에 들어가면 저녁 시간에도 활동할 생각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아직 냉담 중이다. 그러나 그녀가 성당에서 활동하는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가끔 그녀의 성당활동 때문에 주말 일정을 잡기 어려우면 공연히 신경질을 부리긴 한다. 두 자녀도 영세는 받았지만 냉담 중이다.

남편들이 육아와 가사에 동참하지 않으면 여성들이 혼자 아이를 데리고 성당에 다니는 일이 쉽지 않다. 신자 부부도 그런데 외짝 교우는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해서 많은 이들이 자녀가 어릴 때 본의 아니게 냉담을 선택하게 된다. 아이 엄마가 맞벌이면 이 어려움은 더 가중된다. 심신이 지쳐 주말엔 쉬어야 하는데 모처럼 엄마 아빠를 맘껏 보게 된 아이들이 가만히 두질 않는다. 성당 다니는 일이 습관이 되었거나, 세상이 무너져도 주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앙을 갖지 않은 바에는 대부분 일상과 타협하게 된다. 앞의 자매님 경우처럼 다시 신앙생활을 재개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때부터 신앙생활에 담을 쌓기 시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 남편이 육아와 가사에 동참하지 않으면 여성 혼자 아이를 데리고 성당 다니는 일이 쉽지 않다. (이미지 출처 = 지금여기 자료사진)

필자가 잘 아는 어떤 사제는 이런 신자들의 사정을 헤아려 이들이 미사에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이를 실현하였다.

일 년 동안 신자들을 꾸준히 설득하고, 유아실을 없앴으며, 아이 부모들을 성당 뒷좌석에 앉히는 조치를 취하였다. 아이가 아파서 울거나 짜증을 부리면 성당 뒤로 빨리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어른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지만 아이들도 빠르게 적응했다. 어른들의 경건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아이들도 젖어 들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조용하고, 설사 소음이 있어도 미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가 되다 보니 어른들이 안심했다. 나이든 신자들이 대부분인 교중미사에서 젊은 부모, 아이들이 늘어나자 성당 분위기가 밝아졌다. 전례 중 여러 순서에 아이들이 참여하는 모습은 신자들에게 미소를 머금게 했다. 전례에도 생동감이 생겼다.

그의 사목 시도는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사실 이런 일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다들 주저한다. 한마디로 귀찮아서일 터다. 신자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싫고 사제도 신자들을 움직이는 게 싫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교회에 실망하고 냉담을 선택하게 된다.

교회가 늘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청소년이 교회의 미래’라는 말이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앞의 사목자처럼 움직여야 한다. 아이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교회에서 어찌 밝은 미래가 싹트겠는가?

위기의 때, 즉 무엇을 해도 바닥이라 느껴질 때는 가만히 있기보다 사소한 것이라도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남이 안 한다고 내가 안 할 이유는 없다. 큰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계속 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계기를 만나게 되었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된다. 지금 이런 사목자, 신자들이 필요하다.

사족이다. 나는 지난 주말 190만의 시민이 거리로 나섰을 때 광화문에 있었다. 이때 느낀 점이 있어 함께 나누려 한다. 말은 들어 봤어도 실제로 부딪힌 숫자 150만은 새로운 세계이자 낯선 지평이었다.

지나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이 많은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들은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을까? 지하철역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 광장을 가로지르거나 청와대를 향하는 수많은 시민들 모두 모르는 얼굴이었다. 과연 이 가운데 신자는 얼마나 될까? 이들 가운데 또 열심한 신자는 얼마나 될까?

아마 열심한 신자들은 많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나의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에서 신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신자들이 여기 나온 이들보다 더 바른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복잡했다. 이때 며칠 전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대로 옮겨 본다. 나는 할리크 선생이 다음과 같이 말한 내용을 통해 열심과 냉담의 경계, 심지어 신자와 비신자의 경계가 그리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러 마음이 복잡했다. 과연 요즘 어떤 신자가 제대로 된 가톨릭 신자인가?

“단순한 사회학이 아닌 신학의 관점에서, 단순한 행정 체계가 아닌 신비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교회는 우리에게 신비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교회의 울타리가 어딘지 알지 못한다. 교회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나는지, 그 안에 누가 속해 있고 누가 속해 있지 않은지 알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스스로 교회 안에 있다고 여기는 많은 이가 사실은 교회 밖에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토마스 할리크,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분도출판사, 2016, 100쪽)

   
 
박문수
(프란치스코)

신학자,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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