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신자들 목소리 듣는 시국미사, 촛불집회 열려

부산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즉시 퇴진을 요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11월 28일 저녁 부산 중앙 주교좌 성당에서 1000여 명이 참석한 시국미사가 봉헌된 데 이어, 신자들의 거리 행진과 집회가 밤 10시 30분께까지 계속됐다.

촛불을 든 신자들은 대청로를 거쳐 광복동 패션거리까지 걸어가며 “국가를 사유화한 박근혜는 퇴진하라”, “사기꾼에게 국정 맡긴 박근혜는 퇴진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성당에서 미사를 공동집전한 신부들이 십자가와 플래카드를 들고 앞장서 걸었다.

젊은이와 관광객이 많이 찾는 광복동 패션거리에서는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시위 행렬을 지켜보거나, 젊은이들이 구호를 따라 외치며 동참하는 모습도 보였다.

▲ 11월 28일 저녁 부산 중앙 주교좌 성당에서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기문란, 부정부패 척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천주교 부산교구 2차 시국미사'가 봉헌됐다. ⓒ강한 기자

번화가 한복판에 설치된 대형 성탄 트리 앞에서 행진을 마무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초등학생을 비롯한 평신도들과 수도자, 사제 등 천주교를 이루는 신분별로 고르게 자유발언에 나섰다.

발언대에 나선 한 수녀는 윗사람 말 잘 듣고 규칙을 지키며 누구에게도 저항하지 않는 착한 수녀였던 자신이 왜 ‘광장’에 나서게 됐는지 10분 가까이 이야기하며 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종교인과 정치, 사회의 관계에 대한 그의 관점을 바꾼 것은 세월호참사였다.

수녀는 300명 넘는 청소년들이 물속에서 죽어 갔을 때 나라가 이렇게 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고 슬픈 마음에 밤중에 깨 통곡한 적이 있다며, “무관심하게 산 것이 죄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광장에 많은 이가 함께 모여 우리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해 한 마음이 되는 것이 성령강림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저희(수도자, 성직자)는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다”며 “우리 자신을 바쳐서 모든 이들을 위해 살고자 수도자, 사제가 됐기 때문에 앞장서야 한다”고 외쳤다.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사제관에 머물러 계시는 신부님들, 주교관에 머물러 계시는 추기경님”에 대해서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 11월 28일 부산교구 시국미사 강론을 나누어 맡은 평신도들, 이의용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둘째 줄 왼쪽 처음), 가톨릭 농민 최강은 씨(왼쪽에서 셋째), 세월호참사 유가족 오홍진 씨(왼쪽에서 넷째)가 박수를 치고 있다. ⓒ강한 기자

‘천주교 사회교리 실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이정화 씨(헬레나, 사직 본당)는 “바오로 사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우리는 인내하며 기다린다고 하셨지만, 제 눈에는 국가 원수가 온 국민의 ‘웬수덩어리’가 되어 버린 불의한 현실 앞에서 여러분이 얼마나 인내하며 희망을 증거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인다”고 말했다. 이 씨는 참석자들에게 “각자 본당에 돌아가 희망의 촛불을 밝혀 달라”며 “민주주의 회복, 부정부패 척결, 정의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소공동체, 레지오 마리애가 모여 나라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집회는 김인한 신부(부산 우리농살리기 운동본부 담당)의 기도로 끝났다.

“한 사람의 욕심으로 수많은 고통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선한 지향으로 이 땅을 다시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악행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우리의 선한 지향과 수많은 그리스도인과 사제들이 축복하는 기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함께한 촛불과 뜨거움과 당신을 향한 의로운 지향으로 이 땅을 구원해 주시고, 또한 많은 순교자들과 민주투사들로 축성된 이 땅을 당신의 뜻으로 되돌려 주시고 기쁨과 꿈을 꾸는 세상으로 이끌어 주소서.”

이번 시국미사와 행진, 집회는 천주교정의구현 부산교구사제단이 주최했다. 부산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11월 14일에도 시국미사를 봉헌한 바 있다.

28일 저녁 중앙 주교좌 성당에서 봉헌된 미사 강론은 이의용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안드레아), 백남기 씨의 가톨릭 농민운동 동료 최강은 씨(안드레아), 세월호참사 유가족 오홍진 씨(안셀모)의 이야기를 연달아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미사 말미에 이영훈 신부(부산교구 직장노동사목 담당)가 지난 11월 21일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비상총회를 마치며 발표한 성명서를 낭독했다.

부산교구 신자들은 12월 12일 저녁 가톨릭센터 소극장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를 봉헌하며 시국에 대한 목소리를 계속 낼 예정이다.

▲ 11월 28일 밤 광복동 패션거리 성탄 트리 앞에 모인 천주교 신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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