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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위하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수도자가 바라본 교회와 사회]

“수녀님....”
“쉿, 영성체 후에는 기도해야지. 눈 감고....”
“수녀님.... 맛없어요!”

사랑이신 주님,
세례식 전 연습 때까지도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장난을 치던 아이들은 세례식 당일 어쩌면 그렇게도 조용히 그리고 예쁘게 기도 손을 모으고 있던지요. 물로 세례를 주시던 신부님 옆에 서서 그 물을 받으며 같은 마음으로 “아멘”을 되뇌였습니다.

예쁘게 미사보를 쓰고 드디어 영성체를 하러 나가는 아이들을 보니 뭔가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정말 예쁘다 라는 생각이 들 때쯤 한 녀석이 자리에 앉아 저를 불렀습니다.

가장 경건해야 하는 순간에 또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어 정색하고 바라보는 저에게 진심을 담아 속삭이더군요.

“맛없어요!”

으.... 그럼 그렇죠. 이 아이들에게 너무 영화 같은 장면만을 기대했던 걸까요?

첫영성체 후 첫 기도이니 마음을 담아 기도하라는 말에 금세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에 어쩌면 이 모습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의 모습인가 싶어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몇 주 전 늦잠 자고 싶었을 주일에 본당으로 향하는 가파른 언덕을 열심히 뽀작뽀작 올라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또 한번 울컥했었습니다. 성당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어지러운 세상을 뒤로 하고 진리를 향해 작은 발걸음을 열심히 내딛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지킬 것이 많아지며 생긴 두려움과 함께 무기력을 겪고 있는 제게 “괜찮아요. 힘내요. 저희가 희망이 되어 드릴게요.” 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몇 년 전 세례 받은 아녜스가 드렸던 편지 기억나시나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그 많은 선물들을 자신만을 위해서, 남을 파괴하는 일에 쓴다면 그건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 되는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하며 이야기 했었죠.

그런데 그 이야기가 아이들에게는 충격적이었는지, 세례 전 하느님께 드리는 편지에 “제가 어른이 되어 괴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라고 쓴 내용을 보며 얼마나 크게 웃었던지요.

올해 교리 마지막 시간에도 어김없이 괴물 이야기를 했어요.

똑똑한 지적 능력을 선물로 받은 과학자가 만든 핵무기, 핵발전소, 어려운 사법고시를 통과한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법적으로 완벽한 무죄들, 선물로 받은 많은 재물들로 자신들만의 성을 만들기 위해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부자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자신만을 생각하여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저희가 받은 선물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소중히 여기고 나만을 위해 쓰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길 청하였습니다.

   
▲ 세례받는 아이들 모습. ⓒ이지현

세례식 다음 날 광화문에는 100만 명의 시민이 모였습니다.

유모차에 탄 아기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정말 많은 분이 길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몇 안 되는 사람, 아니 괴물들의 욕심과 뻔뻔함이 이 많은 사람들을 길거리로 나오게 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듯했습니다.

어른들은 미안하다고 외쳤습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외쳤습니다. 촘촘히 앉아 불편할 텐데도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에 언덕을 올라 성당으로 가던 아이들의 뒷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자비하신 주님,
두 학기의 길고도 짧았던 시간이 흐르고 개구쟁이 중학생 12명과 의젓한 고등학생 10명이 드디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식 전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저의 간절한 눈빛을 뒤로 하고 “간식이요!”라고 해맑게 대답하는 바람에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보시기엔 너무나 예쁜 딸들이겠지요?

이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당신께서 주신 선물을 잘 키우고 나누는 아름다운 하느님의 창조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길 청합니다. 기도문 좀 못 외우고 성경만 읽어 주면 자꾸 졸더라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게 이 모습 그대로 잘 간직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마지막으로 세례식 때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부분. 가장 목청껏 대답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번 세례식 때도 어김없이 제일 열심히 하더군요. 아마 뜻을 다 이해하고 대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이번에는 더 큰 소리처럼 들린 듯했어요.

다시 한번 저도 대답해 보며 이 편지를 마무리하렵니다.

+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미신적 모든 행위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학생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 선물로 주심에 감사드리며 이지현 로사 드림

p.s 아이들이 매번 하느님께 드리는 편지를 오랜 시간 쓰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늘 빨리 쓰라고 닦달했었는데 정말 어렵군요....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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