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폐막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함께 지낸 ‘자비의 희년’이 곧 막을 내린다. 2015년 12월 8일 시작된 자비의 희년은 올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인 11월 20일에 끝나는데, 이미 한국 천주교에서는 상당수 교구가 지난 13일 폐막미사를 봉헌했다. 오는 20일에는 대구, 광주대교구, 원주, 부산교구에서 폐막미사를 바친다.

1년이 조금 못 되는 희년을 한국 천주교인들은 어떻게 보냈을까? 얼마나 더 자비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고 자비를 실천하고 묵상했을까? 자비의 희년을 체험한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자비의 희년에 교회 안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고해성사’였다. 서울대교구는 2015년 12월 18일 명동대성당 마당에 ‘텐트 고해소’ 30여 개를 세우고 젊은이들을 위한 고해성사를 마련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서가대연) 의장 오유정 씨는 이때 연합회 동료들과 함께 고해성사와 전대사를 받은 것을 “은총”으로 기억했다. 다만 그는 교회가 신앙생활을 쉬고 있는 청년 신자들이나 세례를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시도는 부족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오 씨는 자비의 희년 기간에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했는데, 자비의 성녀 파우스티나가 폴란드의 성인이라는 점에서 희년에 걸맞은 행사였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오유정 씨는 연합회가 지난 11월 신촌에서 열린 ‘팍스제’에서 모은 기부금으로 12월 17일 서울 구룡마을에서 연탄 나눔 봉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가대연이 자비의 희년을 보내며 자비로운 사람에 대해 묵상할 수 있는 행사와 행동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 성당 건물 앞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365플러스마트. ⓒ배선영 기자

지난 4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성당 맞은편에 컨테이너를 마련하고 신자들이 쓰지 않는 물건을 정성껏 손질해 이주노동자들과 나눈 수원교구 서정동 본당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365 플러스마트’라는 이름의 이 컨테이너 운영에 적극 참여한 서정동 본당 신자는 “성과는 꽤 있었다”며 “외국인노동자 혹은 새터민(탈북자)들이 와서 필요한 물건을 많이 가져갔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은 이 신자는 “그분들이 옷, 신발보다는 쌀이나 세제 등 생필품을 더 필요로 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서정동 본당 공동체는 이 마트를 꾸준히 운영할 봉사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운영을 고민하고 있다.

한편, 이 신자는 서정동 본당에서 자비의 희년을 맞아 ‘자비의 사도단’이라는 이름의 작은 평신도 단체들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 모임은 12명을 한 조로 해서 각자 매일 한 가지의 자비 실천을 했다. 대중교통 안에서 다른 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든,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든 어떤 일이라도 자비를 묵상하며 실천하면 됐고, 인터넷 메신저 단체대화방을 통해 매일 저녁 자신이 실천한 자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정동 본당은 신자들의 자비 실천을 종이에 적어 매월 마지막 주 교중미사 때 봉헌하는 시간을 가졌고, 2017년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이 종이들을 불태우는 것으로 봉헌하는 상징 예식을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11월 13일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자비의 희년 폐막 감사음악회. (사진 제공 = 춘천교구)

자비의 희년에 대해 흐뭇한 기억만 남은 것은 아니다. 영남 지역의 한 신자는 동료들과 함께 어느 성당을 찾아가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며 신자들에게 자비 실천을 촉구했지만, 상당수 신자들에게서 비난을 들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어느 신자들은 “유병언이 죽었고 (유가족들이) 보상금 수억 원을 받았으니 끝난 것 아니냐”고 말했고, 누군가는 세월호참사 유가족은 “빨갱이”라며 “천주교가 왜 그런 일에 관여하느냐”고 외쳤다. 이 신자는 이런 일을 겪으며 “자비의 희년은 그저 이벤트인가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자비의 희년은 결국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깊은 기도와 묵상의 초대이기도 했다. 한 청년 신자는 “그저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며 사랑과 자비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이런 것을 모르고, 갇혀서 신앙인이 되려고 했을까” 물으며, 자비의 희년은 “개인적 일들 속에서 틀이 깨지는 시간, 그리고 기도가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