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검찰의 대면조사를 거부했지만 검찰은 박 대통령을 대면조사하지 않고도 그를 사실상 피의자로 전환해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박근혜 대통령 쪽의 뜻대로 대통령을 참고인을 대우하지 않고, 그를 사건의 ‘피의자’로 조사하기로 결정해 앞으로 검찰이 박 대통령을 어떻게 조사할지가 새로운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18일 대통령을 면접하겠다고 박근혜 대통령 쪽에 통고했다. 20일 최순실 게이트 피의자들의 공소장을 제출하기로 결정한 검찰로서는 18일이 대통령 조사 마지노선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17일 다음 날의 대면조사에 응할 수 없다면서 “다음 주 이후에나 조사에 응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통고했다. 전국에 방영되는 텔레비전 앞에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대국민사과 담화까지 냈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동안 한국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을 “신뢰를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보도해 왔기 때문에 많은 국민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믿었다가 속았다고 실망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에 관해서는 그의 사촌 형부로서 그의 성장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종필(JP) 전 총리가 최근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말한 박근혜의 인물평이 앞으로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JP는 인터뷰에서 “5000만이 시위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절대로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박 대통령 쪽에서 검찰의 대면조사를 거부한 것은 검찰이 20일로 결정된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에 대한 공소장에 대통령과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록했는지를 읽어 본 다음 내주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에 대응할 답변을 준비하려는 꼼수라는 게 언론의 공통된 해석이었다.

그러므로 검찰이 대통령을 대면조사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의 피의자로 전환한 것은 이런 꼼수를 내다보고 선수를 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금까지 구속 조사를 받은 피의자들의 조사 결과로 확인된 사실과 증거만으로도 대통령의 범죄 사실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대통령을 사실상의 ‘피의자’로 공소장에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청와대와 우병우 민정수석의 지시에 움직이는 무력한 검찰이라는 여론의 비판을 받아 온 검찰이 더 이상 청와대 눈치만 보다간 분노한 국민들로부터 돌멩이를 맞을 수 있다는 내부의 불평과 경고를 고려한 결과일 수 있다. 권력이 국민의 비판에 밀리고 있는 것을 감지한 검찰이 이 상황을 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본연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반격을 가할 호기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은 2차 대국민사과 때 진상 규명 협조와 필요시 검찰 조사에 임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출처 = JTBC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만약 검찰이 차제에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권력의 불법행위를 정면으로 조사하기로 결정한 해석이 맞다면 이것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수사하던 미국 검찰과 검찰의 수사 태도를 지지한 법무부 장차관이 자리를 걸고 닉슨의 사법 방해에 불복하고 그가 대통령 자리를 물러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유명한 “토요일 밤의 학살”을 상기시킨다.

대면조사를 하지 않고 대통령을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로 전환한 검찰의 태도 전환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한국판 “토요일 밤의 학살”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모든 것은 검찰의 용기에 달렸다. 그리고 검찰의 용기가 대통령의 권력 남용과 국정농단을 단죄하고 근절하는 결실을 거두려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검찰의 용기를 성원하는 여론의 지지가 절대 필요하다. 워터게이트에서도 리차드슨 법무부 장과 러틀하우스 차관이 백악관의 증거 제출을 고집하는 콕스 검사를 해임하라는 닉슨 대통령의 명령을 차례로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해서 대통령이 할 수 없이 법무부 서열 3위의 총무국장을 통해 콕스 특검을 해임해야 했다. 대통령으로서 걸맞지 않는 행동이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막바지 과정에서 일어난 유명한 “토요일 밤의 학살”이다.

다음 날 토요일, 이 부당한 “학살” 소식이 알려지자 이에 항의하는 수천 통의 항의 전문이 전국에서 백악관으로 답지했고 거국적인 항의 여론은 의회를 움직여 닉슨의 탄핵 결의안을 제출하게 했고 탄핵이 불가피한 것을 감지한 닉슨 대통령으로 하여금 스스로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지금 최순실 게이트를 처리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을 보면 불행하게도 한국판 “토요일 밤의 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큰 축복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19일 전국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보되고 있는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는 박근혜 대통령을 죄없는 참고인에서 범죄혐의가 농후한 피의자로 전환한 검찰의 용단을 지지하고 대통령 탄핵에 법적 명분을 더해 주는 국민적 압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청소하고 박근혜 정권의 총체적인 국정농단을 단죄하려는 검찰의 용단을 배가하는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가 되기를 바란다.

 
 

장행훈(바오로) 
언론인.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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