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43]

살다 보면 여러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혼인한 부부들에게는 이혼이 그런 경우 가운데 하나다. 이혼의 이유는 다양하다. 통계청에서 내는 자료에는 크게 대여섯 가지 원인을 열거하는데, 실제 속사정을 살펴 보면 이유는 제각각이다. 이혼하는 이유에는 남이 쉽게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다들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혼은 지난 20여 년 사이 지속적으로 늘어 왔다. 이 기간 동안 매해 10만 쌍 이상이 이혼했다. 이들이 재혼하고 다시 이혼하는 경우도 제법 있으니 단순히 누적 인원을 계산해 성인 인구 가운데 400만 명이 이혼을 경험했다고 말할 순 없다. 해서 이러저러한 경우를 제하고 나면 대략 성인 인구 가운데 10퍼센트 정도가 이혼 경험자라 추정할 수 있다.

이혼율이 그리 높은데 이 정도 숫자밖에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재 이혼율 계산방식에 문제가 있어 그렇다. 현재 이혼율은 매해 혼인한 커플 대비 매해 이혼한 커플 비율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올해 30만 쌍이 혼인하고 15만 쌍이 이혼했다면 현재의 계산 방식으로는 이혼율이 50퍼센트다. 마치 현재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들의 절반이 이혼을 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 배우자가 있고 혼인을 유지하는 커플은 수백만 쌍에 이른다. 따라서 정확하게 통계를 내려면 전체 유배우자 커플 수 대비 이혼자 커플 수로 계산해야 한다. 2016년 현재 유배우자 커플을 5백만 쌍으로 보고, 이혼 커플을 10만 쌍으로 보면 이혼율은 2퍼센트다. 대략 이 정도가 이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어떻든 이혼자들이 늘어나면서 신자들 가운데도 이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동안의 통념은 천주교에는 이혼을 금하는 교리가 있어 이혼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통념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의 이혼율은 비신자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야 한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신자들보다 적긴 하겠지만 그 비율이 현저하게 낮진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신자들 가운데도 제법 이혼 경험자들이 많을 텐데 왜 잘 드러나지 않을까? 아마 여러 원인이 있을 텐데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된다. 첫째는 이들이 교리를 어겼다는 생각에 교회를 떠나거나 냉담하기 때문일 터이다. 둘째는 성당에 나오더라도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둘째의 경우가 제법 있다. 따라서 이혼을 냉담과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는 경우는 첫째 경우에 해당될 터이다.

오늘 먼저 소개하는 사례는 아직 이혼하진 않았으나 사실상 이혼 상태에 있으면서 냉담하는 경우다.

▲ 갈라선 부부.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그녀는 50대 중반이다. 의료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그녀는 20대 중반에 결혼하였다. 연애결혼을 해 아이들이 어릴 때까지 남편과 잘 지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남편이 바람을 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남편은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자녀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그럴수록 두 사람 사이의 금은 더 갈라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런 모습이 자녀들 교육에 좋지 않다고 판단, 아이들 보는 앞에서는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았다.

일 년 뒤 남편과 떨어져 시간도 가져 볼 겸 자녀들의 교육도 시킬 겸 캐나다 유학을 계획하게 되었다. 괜찮은 사립고등학교를 보내려다 보니 가톨릭 세례가 필요하였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불교를 떠나 가톨릭 세례를 준비하게 되었다. 반 년 만에 세례를 받았고 두 자녀를 가톨릭계 고등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었다.

막상 캐나다에 가 보니 여러 교육 여건상 미국으로 가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남편도 자녀 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해 여러 경로로 미국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마침 미국 비자 브로커 역할을 하는 여자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목사는 미국에 있는 자신의 교회에 온 가족이 다니는 조건으로 다른 사람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비자를 얻게 해 주었다. 이 약속 때문에 세례 받은 지 일 년 만에 개신교로 옮겼다. 마음으로는 천주교가 더 끌려 아이들 고등학교만 졸업시키면 다시 천주교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할 무렵 남편이 한국에서 이혼을 통보해 왔다. 큰 충격이었지만 다니는 교회 목사님과 신도들이 만류하여 이혼에는 합의하지 않았다.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이혼하였거나 이혼을 앞둔 여성들만을 모아 목회하는 개신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천주교에 도움을 청하려 하였으나 그럴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고, 이 교회의 목사와 신도들이 잘 해 주어 이제는 천주교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이분의 경우에는 천주교에 적을 두고 정을 붙일 만큼 신앙생활 경력이 길지 않았다. 영세 동기도 자녀 교육을 위해서였을 뿐 진지하지 않았다. 자녀들은 엄마가 이런 상태다 보니 같이 냉담을 하고 있다. 이 가족은 영세한 지 십 년이 지나 모두 행불 처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이혼을 경험한 이의 사례다.

그녀는 40대 초반이다.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두고 있다. 성당에서 성사혼을 했다. 남편과 생각이 맞지 않아 오랫동안 갈등하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 갈라섰다. 그녀는 이혼 뒤에도 신앙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분명했다. 남들이 수긍할 만한 사유가 있으니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혼하고도 한동안 성당에 잘 다녔다. 그런데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보낼 때가 되면서 불편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모회에 들어가려 했는데 자신의 처지를 아는 다른 엄마들의 시선이 따가왔던 것이다. 아이들은 의식하지 않고 잘 다녔지만 자신은 불편해 나가기가 꺼려졌다. 다른 신자들도 자신을 그렇게 본다는 생각에 어느 날부터 아이들만 보내고 자신은 냉담하게 되었다. 이제는 익숙해져 성당에 다시 나갈 생각이 없다.

교리야 무시하면 되지만 실제로 자주 만나는 교우들의 생각까지 바꾸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냉담을 하게 된다. 신앙생활을 계속하려면 다른 본당으로 옮기거나 머물 경우 이혼 사실을 숨겨야 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잘 사는 것도 아니면서 통념을 따라 다른 신자들을 단죄하기 좋아 하는 이들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수 있다.

성인 인구의 10퍼센트가 이혼을 경험한 경우라면 대부분 한 집안에 한 명씩은 이혼 경험자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 이 경험자 비율이 1퍼센트도 안 되던 시절에는 이들에 대한 시선이 매우 따가웠다. 교회는 더 심했다.

그러나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이혼을 경험하는 요즘같은 경우라면 이 편견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지난 이십여 년 간 이혼에 대한 허용적 분위기가 커져 왔다. 가톨릭 교세도 이 시기에 크게 성장하였다. 이 때문에 신자들의 의식도 이혼에 관대하게 변해 왔다. 그래서 이혼 후 재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신앙생활할 수 있다. 나름 다 사연이 있을 텐데 누가 쉬 판단할 수 있겠는가?

다만 성사혼을 한 신자가 이혼하고 재혼하는 경우에는 초혼이 무효가 되지 않으면 교회법적 장애에 걸리게 된다.(배우자가 사별한 경우는 예외) 이 경우는 구제가 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교회를 떠난다. 신앙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있는 신자들은 이런 제약이 없거나 약한 개신교로 옮겨 가는 게 일반적이다.

가톨릭 신앙이 이혼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아마 냉담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하는 시기와 이 현상이 늘어나는 시기와 겹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이미 신앙이 삶의 다른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지가 오래 된 터라 이혼도 교회 권위로 억제하긴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혼을 경험한 신자들이 마음이라도 편하게 성당에 다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박문수(프란치스코)

신학자,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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