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견진성사는 교회에서 일종의 성인인증 예식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즉, 세례를 통해 하느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난 이가 신앙 안에서 자라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견진을 안 받은 상태에서 혼배성사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집안 어르신이 물어 오셨습니다. 그냥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입니다. 물리적인 나이로 성인이 되면, 누구든지 결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신앙 생활에서 일정한 성장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배운 이들은 그런 것도 뭔가 석연치 않아 보입니다. 결혼이란 것이 성인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예식이니 만큼, 성사의 의미상 성인식에 상응하는 견진성사를 건너뛰고 혼배성사가 과연 가능한가는 그것대로 제기해 봄직한 질문이라 하겠습니다. 집안 어르신께서도 이런 면이 꺼림칙하셨던가 봅니다.
교회가 베풀고 있는 성사를 되짚어 보면, 세례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성사입니다. 유아기에 이 성사를 받은 경우, 나중에 첫영성체를 통해 성체성사와 고백성사를 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연령을 넘어서 세례를 받는 경우에는 세례, 성체, 고백 성사를 한 묶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견진을 받게 되는 시기는 세례와 거의 근접하거나 훨씬 훗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생애의 사건에 맞춰 혼인(혹은 성품)성사, 병자성사를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성인들을 위한 세례성사 때 견진성사까지 한꺼번에 이뤄지는 경우가 빈번히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인간이 지내 온 물리적인 세월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세례성사는 하느님 백성으로 태어남을, 그리고 그가 한 인간으로 이미 성인에 이르는 세월을 살았기에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견진성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당연히, 성체성사와 고백성사는 신앙생활 안에서 그의 신앙이 뿌리내리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게 단계적으로 성사를 받아 온 사람들만 있지 않다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세례는 받았으나 성장기에 성사생활로부터 방치된 환경에 있던 사람들은 흔히 겪을 수 있는 사연입니다. 그만큼 신앙교육은 우선 가정이 책임져야 하는 것인데, 부모가 신앙생활에 소홀한 경우에는 그 자녀들도 비슷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가정에서 아이는 자신이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웃 중에 이런 것을 신경 써 주는 열심한 교우가 있지 않은 한, 당연히 첫영성체, 견진 등의 예식을 챙긴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혼배성사를 받는 이들 중에 견진성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적잖습니다. 그러나 교회법상 견진을 꼭 받아야 혼배를 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지는 않습니다. 혼배성사 전에 견진성사를 받으라는 것은 권고사항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권고를 좀 더 강하게 하는 의미에서 어떤 교구는 혼배를 준비하는 과정에 혼배를 위한 견진교리 과정을 마련해 뒀습니다. 그 교구에서는 이 교리시간을 이수해야 혼배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럴 것이라면 성인들이 세례를 받을 때, 아예 견진도 한꺼번에 주는 방법을 제안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정이 신앙의 전수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