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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마법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어린이처럼 - 애니메이션 ‘벨빌의 세 쌍둥이']
   
▲ 부모를 잃은 손자와 단둘이 사는 수자 할머니는 손자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애쓴다.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찬란)

2003년 제작된 영화인데 국내에서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공식 개봉됐다. ‘일루셔니스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만든 실뱅 쇼메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이다. 당시 많은 상을 받으며 주목 받았던 이 영화는 그간 영화사에 남을 명작으로 자리 잡았다.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작품이다. (영화를 관람한 열두 살 어린이의 소감은 “영화가 재미없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였다.) 그렇다고 모든 어른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는 못할 듯싶다. 실사 영화의 한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이 펼쳐지는 영상에 감탄할 수 있고, 일상의 차원이 달라지는 마법을 믿는 어른이라야 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애니메이션은 동화와 닮았다.

부모를 잃은 손자와 단둘이 사는 ‘수자’ 할머니는 손자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애쓴다. 말을 걸고, 피아노를 치고, 강아지를 사 주지만 손자는 무엇에도 흥미가 없다. 어느 날 할머니는 손자가 자전거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자전거를 타며 장성한 손자는 ‘투르 드 프랑스’라는 자전거 경주를 준비하기에 이른다. 할머니는 이를 뒷바라지하는 감독, 코치, 영양사의 ‘1인 다역’을 수행한다.

할머니가 손자의 자전거 훈련을 뒷바라지하는 장면들은 기발하면서 가슴 찡하다. 손자가 어릴 적 끌던 세발자전거로 함께 달리며 호루라기로 호흡을 맞춰 주고, 훈련 후 거품기와 청소기로 다리 근육을 풀어 주고, 소리굽쇠를 이용해 자전거 바퀴를 수리하기까지.... 다리 장애로 한쪽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도 따각거리며 분주히 집안을 오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타인을 위해 부지런히 자신을 움직이는 행동이 바로 사랑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손자는 자전거 경주 도중 마피아에게 납치되고 손자가 납치된 큰 배를 쫓아 할머니는 태평양을 건넌다. 동전 하나에 20분을 빌려주는 페달 보트를 끌고.... 이 장면에서 흐르는 모차르트 C단조 대미사곡의 ‘키리에’는 유머와 애잔함을 절묘하게 더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할머니가 손주를 구하기 위해 절박하게 붙잡고 기댈 수 있는 건 오직 ‘주님’뿐일 테니 말이다.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찬란)

납치된 손자를 따라 다다른 ‘벨빌’은 이름처럼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미국으로 상정되는 벨빌은 돈 한 푼 없이는 타인의 관심과 도움을 구할 수 없는 곳이다. 마피아가 손자를 납치한 까닭도 자전거 경주 도박에 이용할, 혹사시킬 육체가 필요해서였다.

냉혹한 벨빌에서 수자 할머니를 도와주는 인물들은 한때 유명 가수였던 ‘세 쌍둥이’ 할머니다. 개구리 스프를 끓이고 올챙이 튀김을 디저트로 먹는 이 할머니들은 신화의 세 여신이나 전래동화의 세 요정, 마법사와 비슷해 보인다. 세 쌍둥이 할머니는 마피아의 소굴에서 손자를 빼내 오는 데 중요한 조력자가 되어 준다. 마피아에게 폭탄을 던지는 할머니들의 활약상은 액션 영화 ‘매드맥스’에서 여성 전사들이 보여 준 통쾌함 못지않다.

네 할머니가 마피아를 물리친 힘은 일상을 마법으로 만드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수자 할머니가 세 쌍둥이 할머니를 만날 때, 벨빌이라는 대도시에서 손자를 찾게 되는 단서를 찾을 때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스톰프”(stomp)라는 음악이다.

젊은 날에 세 쌍둥이 할머니는 노래 부르던 가수였지만 나이 든 지금 신문, 냉장고, 청소기로 스톰프 무대를 펼친다. 그런데 할머니들의 무대는 스톰프 그 이상으로 보인다. 수자 할머니가 자전거 바퀴를 이용해 연주할 때 그건 손주를 위해 자전거 바퀴를 수리하던 할머니의 삶이 곧 음악으로 승화된 것이었다. 삶을 음악으로, 일상을 마법으로 변화시킨 힘은 바로 할머니의 사랑에 있었다.

영화의 시작에서 손자와 텔레비전을 보던 할머니는 “이 영화가 끝난 거니?”라고 묻지만 어린 손자는 질문을 무시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신에서 똑같은 질문을 하는 할머니에게 장성한 손자는 환하게 웃으며 “네, 끝났어요”라고 대답한다. 자전거를 선물 받고 미소 지은 후 그의 두 번째 웃음이다. 그런데 영화 시작에서 할머니와 손주는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지만 마지막 신에서는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음성만 들릴 뿐이다. 할머니의 생이 끝났음을 암시하기라도 하듯.

사랑은 생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된다는 것, 생이 끝날 때에야 사랑하는 자의 의무는 끝나지만 사랑받은 자는 그 사랑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영화의 마지막 신은 그 사랑의 슬픔과 환희를 온전히 전해 준다.

   
▲ 냉혹한 벨빌에서 수자 할머니를 도와주는 인물들은 한때 유명 가수였던 세 쌍둥이 할머니다.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찬란)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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