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가톨릭영화제 상영작 총평 및 주목할 작품 리뷰

올해는 ‘함께하는 삶’이었다. 지난 10월 30일 폐막한 제3회 가톨릭영화제에서는 다양한 가치의 공존과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53편의 장편, 단편 영화들이 ‘함께하는 삶’이라는 슬로건 아래 관객들을 찾았다.

이번 영화제에는 개막작인 '데이 39'(제시 구스타프슨, 미국, 15분, 2015)를 비롯하여, '더 롱거스트 디스턴스'(클라우디아 핀토, 베네수엘라, 2014), '야생 딸기'(폴리나 민체노크, 러시아, 2014), '뭄'(로버트 곤도, 미국, 2015) 등 국내 관객들에게 처음 소개되는 영화 10편을 포함, 중국, 러시아, 베네수엘라, 팔레스타인, 터키 등 15개 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상영된 영화들의 다양한 국적에서 보듯이, 올해 영화제는 종교나 문화에 구애받지 않은 영화들을 선보임으로써 그 주제인 ‘함께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영화제였다. 더불어 이처럼 폭넓어진 영화 선택의 기회는 가톨릭영화제가 종교 영화제, 선교 목적의 이벤트를 넘어 대중적인 서울 시민의 문화축제로 한 발 더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삶과 가치들이 소중히 존중되기를 희망하면서 ‘함께하는 삶’의 의미를 다각도로 접근해 보고자 마련된 제3회 가톨릭영화제. 그중 주목할 만한 영화 몇 편을 이 자리에 소개한다.

제3회 가톨릭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영화 중 하나는 중국 장양 감독의 2007년 작품으로 이번 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낙엽귀근'(落葉歸根, Getting Home, 중국, 홍콩, 110분, 2007)이다. '낙엽귀근'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따뜻한 의리를 유머와 세심한 에피소드로 채운 로드무비다. 도시에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사는 주인공은 사고로 죽은 친구를 고향에 데려다 주기로 하고, 친구의 죽은 육체를 등에 지고 길을 떠난다. 쉽지도 순탄치도 않은 가난한 주인공과 친구의 동행, 그 귀향의 여정 가운데 만나는 사람과 사건들을 통해 감독은 무거운 삶의 철학을 위트와 해학으로 즐겁게 마주하며 걸어 보자고 관객에게 손을 내민다. '낙엽귀근'에는 롤러코스터 같은 드라마틱한 전개가 없지만 주인공이 길 위에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마치 순례의 발걸음을 연상시키며 관객의 눈을 한 치도 뗄 수 없게 만든다.

관객의 눈길을 집중시켰던 또 한 편의 영화는 '휴먼'(HUMAN,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프랑스, 143분, 2015) 이다. 이 영화는 세계 각지, 각 계층,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사랑, 부부, 고통, 행복 등의 주제들에 답하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과 세계 곳곳의 풍광, 지구촌 곳곳의 전통 음악 등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스크린에 아름다운 스펙터클을 그려 낸다. 전주 국제영화제를 통해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휴먼'은 이번 가톨릭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 이한종 감독의 '나와 함께 블루스를'이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이미지 출처 = '나와 함께 블루스를'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해외 초청작들이 낯선 문화와 낯선 사회를 가로지르는 삶의 공통분모를 보여 주고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에게 낯선 가치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면, 국내에서 만들어진 단편영화들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억눌리고 가려진 목소리들을 진중하게 들려줌으로써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총 296편의 출품작 중 14편이 단편경쟁 부문에 상영되었고, 그중 이한종 감독의 '나와 함께 블루스를'이 대상과 관객상을, 황지은 감독의 '아무것도 아니지만'이 우수상을, '천막'(이란희 연출), '여름밤'(이지원 연출),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정승오 연출)의 세 편이 장려상을 받았다.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받아 대중과의 소통과 작품성 모두에서 인정받은 '나와 함께 블루스를'은 도심 속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살아가는 청각장애인 승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름이 작업자 명단에 없다는 이유로 작업에서 제외된 승식은 밀린 일주일치 일당을 받기 위해 반장을 만나러 가는데 승식을 마주한 반장은 돈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 이때부터 돈을 받으려는 승식과 승식을 어떻게든 떼어 내고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반장 사이의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끈질기게 기다리고 몸싸움을 벌여 가면서 일당을 받아 낸 승식이 돌아온 그의 집. 그곳에서 관객은 온갖 모욕을 무릅쓰고 승식이 일당을 받아야만 했던 이유를 만난다. 영화는 20분이 조금 넘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분노와 폭소, 안타까움과 따뜻한 희망 등 색색의 감정으로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든다.

지금까지 35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복직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콜트 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하루를 담은 극영화 '천막'도 눈여겨 볼 만하다. 복직 농성 3169일째를 알리는 팻말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에는, 노동조합 콜택 지회장과 해고 노동자들로 구성된 밴드 ‘콜밴’의 멤버들이 직접 배우로 출연한다. 이란희 감독은 실제 자신의 경험을 재현한 비전문 배우들의 진솔한 연기와 긴 농성 기간 중 경험하는 시련과 갈등을 담담하게 담아내어, 현재 진행형인 그러나 가려져 있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차분하게 보여 준다.

이외에도 생활비를 위한 아르바이트, 취업 준비, 학업으로 이어지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배려와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잃지 않으려는 한 대학생의 삶을 촘촘히 그린 '여름밤',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와 장애인을 가르치는 선생 간의 고마움과 이해의 순간을 담아낸 '아무것도 아니지만' 등도 조용하지만 큰 울림을 전달한다.

이처럼 올해 영화제에 선보인 모든 영화들은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제3회 가톨릭영화제는 이미 막을 내렸다. 하지만 영화제가 끝났다고 아쉬워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처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영화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달래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나누기 위해 가톨릭영화제 측이 순회상영회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회상영회에는 앞서 소개된 단편경쟁 부문 수상작과 '휴먼'을 비롯한 올해 상영작들 중 일부가 상영될 예정이다.

 
 
성진수(시릴라)
영화연구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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