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대구시립희망원의 인권침해 의혹 뉴스를 접하고 20세기의 대표적 영성가 헨리 나웬(1932-96) 신부가 떠올랐다. 그는 1985년 자신의 삶에서 영혼의 안식을 얻지 못하고, 장 바니에가 프랑스의 작은 마을 트로슬리에 세운 중증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라르슈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며 주님의 새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결심한다. 라르슈는 방주, 곧 장애인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안전한 집’이란 뜻이다. 그는 이듬해부터 캐나다 토론토의 발달장애인 공동체 라르슈 데이브레이크(Daybreak, 새벽)에서 10년 동안 장애인들을 돌보다 1996년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졌다. ‘새벽으로 가는 길’은 트로슬리에서 데이브레이크로 가기로 결심하기까지 한 해 동안의 영적 여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사는 것은 물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함을 깨우쳐 준다. 그들은 수많은 고통과 차별을 경험한 탓에 무엇이 진실한 애정인지, 무엇이 사탕발림이고 거짓인지 비장애인들보다 더 민감하게 분별해 낸다. 그만큼 더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헨리 나웬은 프랑스의 라르슈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예일, 하버드대 교수 시절과 3년 동안 머문 페루 빈민가에서는 체험하지 못한 평온을 맛본다. 당시 장 바니에를 포함해 정신박약자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당신의 고향입니다. 당신에게는 꼭 우리가 필요합니다.” 그는 “라르슈로 부르심 받고 있다는 내 느낌은 내가 베풀어야 한다는 그 무엇보다도 내가 얻어 누려야 한다는 그 무엇에서 기인하고 있었다”고 했다.

잠시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경험도 들려준다. ‘....가장 놀란 일은 불안과 고독과 짜증이 실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거머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내적 평화와 기쁨을 맛보고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삶을 함께 경축하는 일,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선하심을 기리는 일-이 모두가 까마득한 이상처럼 보인다.’ 그는 라르슈에서 영적 자유를 마음껏 체험한 뒤라, 자신의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상실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 장 바니에가 세운 중증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라르슈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더불어 식사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라르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발달장애인 4명과 자신을 포함한 조력자 4명이 한 시간이 넘게 사과줍기에 나서서 네 자루를 모은 체험을 전해 준다. 비장애인이라면 혼자서도 30분이면 주울 분량이다. 장애인들이 사과를 줍도록 도와주고, 나무를 늘어뜨려 사과를 찾도록 하고, 사과를 찾았을 때 찬사를 보내느라 늦어진 것이다. 그는 ‘라르슈서 가장 중요한 낱말은 효용이 아니라 배려인 것이다’ 라고 했다.

그는 라르슈의 가르침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아래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난하고 억압받고 불구인 사람들과 연대하여 살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줄 수 있는 통로에 해당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하느님에게 이르는 길,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 준다.’

라르슈의 의미는 또 있다. 라르슈가 베푸는 작은 사랑의 기적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라르슈에서 무언가를 부여받아 그것으로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라르슈가 제공하는 소량의 음식물은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있다. 비단 정신 장애자들이나 부자들, 권력자들,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 학생들, 학자들, 의사들, 법률가들, 행정관들, 사업가들, 여성들, 심지어 정신장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모두가 그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빵의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그것을 볼 눈이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물론 인간적인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그는 데이브레이크로부터 공동체의 사제로서 결합하라는 부름에 “그러지” 했을 때, 바로 “그러지” 속에는 지극히 고통스러운 수많은 “안 돼”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대구시립희망원에는 지체 장애, 지적 장애, 치매 등 장애나 질병을 갖고 있는 시설거주인 1118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정신 장애인이라고 한다. 시민단체와 언론 등이 제기한 인권침해 의혹의 핵심은 2014년 1월부터 최근까지 2년 8개월 동안 시설거주인 129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희망원 측은 “129명 중 123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졌으며, 진료기록을 확보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인권침해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철저한 진상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다짐했다. 교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 방주, 곧 안전한 집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황진선(대건 안드레아)
논객닷컴 편집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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