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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국이 버린 사람들[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장영식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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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7  11: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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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한 시국에 잠시 일본 기타(북)규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북규슈 지역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 조선에서 강제 징용된 사람들이 탄광과 군수산업 공장에서 억압과 착취로 대변되는 가혹한 노동과 굶주림에 시달렸던 원한 맺힌 설움의 지역입니다.

   
▲ '동포넷'에서는 매년 오다야마 묘지와 '휴'가 묘지를 참배하고, 그곳에 묻혀 있는 이름 없는 동포들의 넋을 위로하는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장영식

1945년, 불완전한 해방을 맞은 재일 동포들은 그리운 조국의 귀국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정원보다 초과된 배는 부산을 향하다가 태풍을 맞아 좌초하면서 숱한 동포들이 수장되었습니다. 어떤 시신들은 와카마스 해변으로 밀려오기도 하였습니다. 해변에 널려 있는 사체는 양심적인 일본 사람들에 의해 그 시신을 수습하여 오다야마 묘지에 묻었습니다. 말이 묘지이지 봉분도 없이 30여 평의 평지로 다져져 있을 뿐인 곳입니다. 위령비만 없었다면 그 누구도 이곳이 묘지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 '휴' 가문의 반려동물 묘지에 묻혀 있는 조선인의 묘에는 이름도 비석도 없었습니다. ⓒ장영식

또한 강제 징용된 이들이 가혹한 노동과 구타 그리고 굶주림에 쓰러져 갔을 때, 그 시신들을 수습하지도 않고 방치했습니다. 이를 지켜보았던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시신들을 몰래 수습해서 ‘휴’가의 반려동물 묘지에 묻었습니다. 물론 휴가 가문 사람들의 허락을 받아 시신을 묻었지만, 시신을 묻은 곳의 증표로 탄광촌에서 가져온 ‘보타’라는 돌을 놓았습니다. 반려동물의 묘지에는 반려동물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곳곳에 있었지만, 조선인들의 시신을 묻은 곳에는 탄광촌에서 가져온 돌 외에는 어떠한 증표도 없이 삭막하였습니다. 휴가 가문의 사람들이 비석이나 위령비를 세우는 것을 반대하였기 때문입니다.

   
▲ '휴' 가문의 반려동물 묘지에서 조선 동포의 묘지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증표는 탄광에서 가져온 돌이었습니다. 동포 중의 한 분이 돌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아직도 찾지 못한 조선인의 무덤을 찾고 있었습니다. ⓒ장영식

오다야마 묘지와 휴가의 묘지에 조선 동포들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일 동포들이 방문하여 위령비를 세우고 제를 올렸습니다. 북규슈 재일 한인들의 시민운동에 의해 기타규슈 시청은 1990년 12월 묘지 앞에 위령비를 건립하였으며, 1994년 8월 12일에는 한글과 일본어로 된 안내판을 세워 당시의 참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국에서도 오다야마 묘지와 휴가 묘지를 찾아 교포들과 교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국내에서 ‘동포넷’을 설립하고 매년 오다야마 묘지와 휴가 묘지를 방문하고 제를 올리며 그 넋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 오다야마 묘지와 '휴'가 묘지에 꽃을 꽂고, 한 까치 담배를 올린 뒤 조국이 버린 조선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는 재일 동포의 가슴 아픈 모습. ⓒ장영식

오다야마 묘지에는 기타규슈 시청에서 세운 위령비와 재일동포들과 동포넷 회원들 그리고 부산민예총 회원들이 세운 솟대라도 있었지만, 휴가 묘지는 참배객들이 두고 온 한반도기와 태극기 그리고 시들다 만 꽃송이들만이 그 넋을 위로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차별과 멸시 속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던 동포들의 눈물이 젖어 있는 오다야마 묘지와 ‘휴’가의 묘지를 돌아서는 순간, 목구멍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걸음을 옮기는 발자국마다 이름도 모를 조선 사람들의 무덤이 발밑에 있다는 생각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 북규슈 지역의 재일 동포와 함께 만남의 자리에서 '아리랑'과 함께 조선의 흥을 즐기고 나누면서 동포들의 지난했던 삶을 이해하는 한마당이 되었습니다. ⓒ장영식

매년 이 묘지들을 참배할 때마다 검붉은 비가 내렸던 것은 탄광 지하의 막장에서 배고픔과 구타 등을 견디며 두고 온 사람들과 조국 산하를 그리워하던 동포들의 눈망울들이 녹아내린 새카만 눈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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