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한상봉]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둘러싼 권력형 비리 의혹 때문에 궁지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국면전환을 위해 느닷없이 내어놓은 ‘개헌’ 제안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대통령 때문에 “국민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남기 선생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기록해서 공권력의 ‘부검시비’를 일으킨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참 나쁜 의사”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백선하 교수는 “가족들이 적극적 치료를 원하지 않아 병사라고 기재했다”고 했다. 이 말은 자칫 백남기 선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경찰의 물대포가 아니라 가족들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참 나쁘고 ‘무례한’ 의사다. 그가 말하는 적극적 치료란 ‘연명치료’였고, 백남기 선생의 연명치료란 사실상 ‘고문’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소생가능성이 없다고 모든 의료진이 진단을 내린 상황에서, 혜화경찰서장의 부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 출신인 서울대병원장이 천거한 백선하 교수가 갑자기 수술을 강행했다. 그러나 백남기 선생은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의식이 깨어난 적이 없었고, 상태가 호전된 적도 없었다. 단지 심장박동이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여기서는, 경찰과 백 교수가 왜 그렇게 부질없는 ‘생명연장’에 매달렸는지 묻지 않겠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은 ‘존엄한 인간생명을 구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어떤 정치적 목적 때문에 물대포로 두개골이 부수어진 농민의 몸에 의사가 317일 동안 고문하고 테러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환자의 가족들은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이 처지를 이용해 백남기 선생의 몸을 담보로 잡고 있었던 백 교수의 의도가 밝혀진 것은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기입하는 순간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백선하 교수가 텔레비전 화면에 나올 때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왜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백선하 역시 의료과정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빙자한 고문기술자였는지 모른다. <한겨레21>과 인터뷰하면서 백도라지 씨는 “아빠라서 이렇게 한 것인지 정말 알고 싶다”고 했다. 평범한 일반 환자의 경우에 이런 식의 연명치료는 불가하다. 재벌가에서는 자식들 사이에 재산상속과 후계자 문제가 정리되지 못해 망자에게 지속적인 연명치료를 강행하는 경우가 있다. 연명치료에 따른 사회적 의료적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1년 가까이 연명치료를 계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이런 연명치료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연명치료 과정에서 백남기 선생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백도라지 씨가 증언하고 있다.

“아빠 상태가 어떤 정도였냐 하면, 몸에 핏줄이 보이지 않았다. 안 찾아졌다. 그런데도 하루에 세 번씩 주삿바늘을 찔러서 피를 빼는 거다. 대체 왜 이런 몸으로 계신 분을 그렇게 괴롭힐까 생각했다. 핏줄이 없는데 피검사를 계속하니까 팔에 감염이 와서 피부가 부풀어 올라 산처럼 피혹이 생겼다. 피고름이 찬 혹인데, 그게 터지면 지혈이 안 돼서 건드릴 수도 없다고 테이프로 친친 감아 놨다. 그런 몸에 하루 세 번씩 채혈해서 검사를 했다.”

▲ 백남기 씨의 딸 백도라지 씨. (사진 출처 = 백남기투쟁본부 페이스북)

“아빠 모습은 정말.... 비쩍 마른 몸에 대상포진이 생겨 진물 나고, 혹 나고, 몸은 다 말랐는데 배는 빵빵하고. 마지막 주에는 소변이 안 나오니 수액도 넣을 수 없었다. 아빠의 인공호흡기 산소 농도가 원래 30퍼센트로, 보통 대기(21퍼센트)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는데, 마지막 주에는 산소 농도를 60퍼센트까지 올렸다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에는 100퍼센트로 올렸다. 그런데도 혈액검사를 해 보면 산소가 거의 없는 상태로 나왔다. 그때도 신찬수 부원장이 와서 승압제를 넣으라고 했다. 몸에, 혈액에 산소가 이미 돌지 않는다는데 무슨 약을 쓴들 효과가 나타날까? 우리 가족은 의학 지식이 없지만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뭐라 참견할 수도 없었다. 그냥 고통 속에 있는 아버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김인국 신부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보성 사람 백남기.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지당한 일이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예수님과 너무나 닮았다”고 했다. 백남기 어르신의 세례명은 예수의 다른 이름인 ‘임마누엘’이었다. 그러니 예수가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라고 한 말을 떠올리며 “살짝 웃고 있는 농부의 영정에서 우리는 시방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물었다. 예수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백남기 어르신은 명동 언덕에서 세례를 받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아예 머리에 물대포를 맞았다고 했다. 예수는 죽기 직전 “나를 먹고 나를 마셔라” 하면서 세상을 위한 밥이 되었는데, 한평생 농민으로 살면서 세상이 먹을 밥을 짓던 백남기 선생은 밀밭에 한가득 씨앗을 뿌려 놓고 최후의 순례를 떠났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그 순례를 떠나지 못하게 317일 동안 발목을 잡았던 사람‘들’이 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그 길을 떠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다행스러운 경우라 하겠다. 백남기 선생은 317일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의식이 불명인 상태였지만 몸은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의료진이 주기적으로 감행하는 고통을 받아내야 했을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그분의 가족들도 깊은 고통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예수는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었는데, 백남기 선생은 2016년 9월 25일 오후 2시 15분에 절명했다. 스스로 더 이상 받아 낼 고통이 없었기 때문에 목숨을 던져 버리신 것이라 믿는다.

여기서 백선하 교수가 빌미를 제공하고, 경찰이 완강하게 요구하는 ‘부검’이란, 이미 죽은 선생의 몸마저 결정적으로 능멸하겠다는 요구다. 그래서 악마적 요청이다. 이 악마적 요청은 경찰 관료집단과 의료 전문가집단의 독점적 권리 주장이 맞닿아 있다. 불법과 합법의 판단은 경찰이 하고, 외인사와 병사의 판단은 의사가 한다는 불가침의 권리 주장이다. 현대사회에서 전문가들은 마치 중세의 사제들처럼 더 상위의 엘리트 집단에게 이익을 챙겨 주는 대가로 그들의 양해를 받아 권력을 보유하는 수준에 이른다는 말이 있다.

특히 의료 전문직은 공익을 수호하는 특권적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삶의 전 과정에서 질병(정신적 영역까지)을 고쳐 주고, 질병을 예방하게 해 주고, 건강한 삶을 위해 생활방식도 정해 주고, 섹스, 임신, 임신중절 등을 관리함으로써 생명의 시작을 결정하고, 성전환 수술로 성별마저 결정하고, 죽음의 단계를 세분화함으로써 사망의 시점과 종류까지 결정하는 ‘근본적 독점자’로 취급된다.” 이럴 때 그들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덤벼든다면, 현대의료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의사에게 쉽게 저항할 수 없다고 한다.(http://doitnow61.tistory.com/1566 참조)

그렇기 때문에 전문 의료인이지만, 갑자기 등산복 차림으로 병원에 달려와 의료적 독점권력을 활용해 317일 동안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했던 백선하 교수를 사실상 ‘합법적 고문기술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의 언행 어디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의도하는 철학을 읽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서울대 특위 위원장인 이윤성 교수조차 “만약 내 뇌수술을 한다면 백선하 교수에게 맡길 수 있으나, 사망진단서 작성은 절대 맡기지 않겠다”고 말했겠는가?

급기야 최순실 게이트가 ‘최순실 공화국’ 수준으로 밝혀져 박근혜 대통령은 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박근혜 일병 구하기 프로젝트는 그리 쉽게 가동되지 못할 것 같다. 이럴 때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사악한 관료 및 전문가 집단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보장해 줄 확실한 주군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방이 빨리 올 줄 몰랐다”던 영화 '암살'의 친일파 염석진처럼 황망하고, 서울대병원에서 물러선 경찰처럼 움찔할 만한 사람이 백선하 교수일 것이다. 서울대생들이 마침내 “직업윤리에 어긋난 사망진단서 작성으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백선하 교수의 해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의료인이 ‘성직’은 아니라 해도, 단순한 기술자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는 요구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든 스스로 하야를 하든, 백선하 역시 갈림길에서 무언가 선택해야 할 것이다. 늦었지만 양심선언으로 참회하든, 고집을 피우든.

 
 

한상봉(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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