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96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우리의 순례는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해결하기 위한 순례이며, 더불어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순례입니다. 자신의 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우리의 이름 없는 민심과 함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순례입니다. 희망 없는 권력을 탓하기보다, 이름없는 세상의 주인공들을 만나며 생명과 평화를 나누는 마음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고 축제입니다. 그렇기에 자연이 자연의 길을 가고, 사람은 사람 노릇을 하고, 생명이 살아 숨쉬며, 생명과 생명간의 평화가 조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모든 사람이 이번 순례의 주인공입니다.

<체감온도 40도>
100여미터에 달하게 길게 늘어선 순례대열. 체감온도 40도. 아침부터 달구어진 도로에 몸을 눕히고 10여분 진행하고 나면 이마와 코에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호흡은 가빠옵니다. 짧은 휴식 시간에 물 한 모금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누구하나 싫은 기색 없이 길을 갈 뿐입니다. 아빠의 목에 무등을 탄 아이는 아빠 따라 손을 합장하고, 동무들과 함께 길을 나선 학생들의 장난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말없이 몸을 철퍼덕 도로에 던질 뿐입니다. 힘겨워하던 가족은 순례하는 이들의 목마름을 달래줄 생수통을 들고 도로에 순례자들을 따라갑니다. 순례단으로 인해 정체된 도로는 오늘따라 유독 차량이 많아 보이고, 그나마 빨간 신호등은 왜 이리 많은지 진행팀은 운전자들에게 죄송스러울 뿐이었습니다.

96일차의 순례길. 수원 시내에서 시작한 순례길이 이제 수원시와 의왕시 경계점에 도착하였습니다. 주말 출근 차량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생각한 시간에 순례단은 하루 일정을 도로에서 새롭게 시작합니다. 매일 같은 일정이지만, 오늘 함께 시작할 참여자들은 누구일지 기대되는 시간입니다. 매번 주말이면 뵙던 분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새로운 참여자들도 늘어갑니다.

그렇게 오늘도 순례단은 생명의 눈으로 평화의 발걸음을 옮기며 사람의 길을 찾아갑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어서 답을 차기보다는 스스로를 세워서 사회를 세우겠다는 의지와 약속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길이 미약하고 작은 몸짓이지만, 단 한사람의 마음이 변화하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이 변화하고, 생명의 눈과 평화의 마음은 그렇게 커져갈 것입니다.

<아이고 오늘 덥겠다>
아침출발시간. 어김없이 오늘도 멀리서부터 참여자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하루 일정을 함께합니다. 어제 애초 계획보다 조금 못나간 일정으로 종료한 탓에, 진행팀에는 아침부터 출발장소를 문의하는 전화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말 아침인데 곤혹스럽게도 벌써 날이 뜨거워집니다. 매일 도로에서 일정을 지내다보니 이제 어느새 도로 날씨를 알듯 합니다. 9시 출발하고 나서 한 구간 진행하고 공설운동장 인근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고 오늘 덥겠다'에서부터 '오늘 날이 무덥겠는데...'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아침 출발을 놓친 참가자는 택시를 타고 공설운동장을 돌면서 순례자들을 찾고 있고..

주말 아침이라서 그런지 대형마트 주변에 시민들이 많습니다. 순례단이 신기한지 바라보는 시민들도 있었는데, 오늘 유독 눈에 뛰는 시민이 있었습니다. 건널목 바로 앞에서 순례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여성분. 순례단이 도착하고 나서 떠날 때까지 옆에서 계속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순례자들은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할 뿐, 말 없이 또 길을 나설 뿐입니다.

서울에서 오신 정진서 님. "세분들이 왜 저럴까. 눈물이 났다. 응원을 해 드려야 할 것 같아 왔다.”고 하시고 “작년 촛불 집회 때 콘테이너 성을 쌓은 것을 보았습니다.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문제는 역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시고 “누구나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과천에서 오신 장윤호 님. “작년 동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경험이며 동참하면 조금이나마 세상이 변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왔다”고 하시고 “몸을 땅에 던지니 뜨겁고. 그러다가 그늘진 곳에 배가 닿으면 또 서늘하다. 그래서 양지나 음지를 구분하지 않고 골고루 애정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제가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연상이 된다”고 하십니다. “저희 학교는 실업계(공고)다. 그래서 집안환경이 열악한 학생이 인문계에 비해 많다. 이시기부터 벌써 학생들은 상대적 빈곤감, 무력감 등을 넘어 포기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는 희망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오전 순례길. 대형마트들이 연이어 있는 복잡한 사거리를 지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순례자들 앞으로 한 어르신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유유히 지나가시더군요. 이를 보던 수경스님 '나도 순례 끝나고 나면 앞으로 저것 이용해야 할 것 같은데..'라며 무릎을 매만집니다. 날이 더워지면서 수경스님은 무릎에 얼음주머니를 대며 통증을 감소시키는 일이 늘어나고 있어 진행팀은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길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의 축제>
북수원에 해당하는 대동우물4거리를 지나는 공터에서 점심을 해결한 순례단. 공터 잔디에서 콩국수로 더위를 식히고 휴식을 취하니 소풍 나온 사람인 듯 하고, 오전 내내 도로 열기에 씨름하였지만 즐겁기만 합니다. 식사 이후 오후 순례를 준비하는 시간, 갑자기 순례 참여자들이 늘어갑니다. 멀리 상주에서 차량을 이용하여 참여한 학생들에서부터 대형버스를 이용해 온 화계사 신자들. 그리고 개인 참여자에 이르기까지 대열이 갑자기 늘어납니다. 오늘은 순례를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팀도 2팀이나 되는군요.

선두의 징소리가 대열 끝까지 전달되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는 세상, 평화를 세우는 세상'을 염원하는 순례 참여자들이 길에 늘어서니, 작은 징소리 아무리 세게 울어도 그 소리가 끝까지 전달되지 않습니다. 2열로 시작한 대열이 어느새 3열로 바뀌고, 한 모듬으로는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여 두 모듬으로 진행하는 등 순례단 대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녀님과 비구니 스님 함께 반배를 하며 순례자들을 따르고, 기운차게 출발하였던 학생들 몇구간 진행하자 기진맥진하였는지 말없이 자신의 몸을 낮출 뿐입니다. 하지만 순례 중에도 세상에 소식을 듣기 위해서인지 어느새 핸드폰으로 소식 전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저만의 방식으로 기도 몸짓을 열심히 합니다. '오늘 좋았는지? 다음주에도 올 예정인지?' 묻는 진행팀의 질문에 '다음주는 놀토 아닌데요'라며 씩 웃는 모습이 여전히 보기 좋습니다. 이 아이들이 잠시나마 도로에 자신의 몸을 낮추며, 잠시나마 자신이 주역인 시대에는 '사람과 생명, 평화'가 어떻게 이 땅을 찾아오게 할 것인지를 묻고 또 물었다면, 우리 사회 희망 지수는 조금 더 높아졌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한 꼬마는 자신이 이렇게 기도 하고 있다며, 세분 성직자 앞으로 다가와 오체투지 시범을 보이고, 그 모습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 성직자들의 얼굴에 피곤함이 말끔히 사라집니다.

날은 왜 이리 더운지 쉬는 시간이면, 작은 물병 하나로 목을 축이며 갈증을 해소합니다. 자전거를 타던 복장 그대로 참여한 시민. 동무를 따라나선 학생. 목에 무등을 태워 꼬마를 들어 올린 아빠는 그 모습 그대로 기도할 뿐입니다.

이 모습을 보던 대한불교청년회의 정홍정 회장은 "국토의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은 훼손되고 생명이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그동안 말로 항의해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체투지는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된 환경과 생명을 안타까워하시고 촛불을 켜고 비는 마음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간절한 마음이 모아지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순례는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해결하기 위한 순례이며, 더불어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순례입니다. 자신의 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우리의 이름 없는 민심과 함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순례입니다. 광화문에서 권력자를 바라보며 세상의 생명과 평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전국의 촛불 민심을 만나고, 생명과 평화를 나누는 마음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고 축제입니다.

그렇기에 자연이 자연의 길을 가고, 사람의 사람 노릇을 하고, 생명이 살아 숨쉬며, 생명과 생명간의 평화가 조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모든 사람이 이번 순례의 주인공입니다.

생명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평화의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례자들의 하루 일정. 영동고속도로 북수원 IC 인근에서 무탈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이장섭 외 3명(안티이명박경인연대) / 박용훈(서울) / 장윤호(과천) / 황규돈 외 6명(라디오 인) / 김은정(오산) / 박인섭(시흥) / 한근춘(수원) / 정진서 외 3명(서울) / 최덕섭 외 16명(화계사) / 배인호 신부 외 26명(화령성당 안동교구) / 정홍정 외 15명(대불청) / 정우식(불교환경연대) / 송위지(유네스코 자문교수) 등 아주 많은 분들이 함께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10일(일) : 수원시 파장동 효행공원입구 - 의왕시 오전동 의왕지구대
● 5월 11일(월) : 휴식
● 5월 12일(화) : 휴식
● 5월 13일(수) : 의왕시 오전동 의왕지구대 - 내손1동 주공APT앞(농수산물도매시장)
● 5월 13일(목) : 내손1동 주공APT앞(농수산물도매시장) - 과천시 갈현동 가마솥회관앞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대왕주유소(수원), 이시희(대전), 이시재(환경운동연합), 이정토원(삼불주선원), 봉녕사(수원), 반재웅(수원), 서정리(수원생협), 광우병수원시민대책위, 수원사포교당(수원) 등이 후원해주셨습니다.

* 공지 1 : 5월 16일(토) 과천 남태령 경유 서울 구간 순례 시작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9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