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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국의 ‘샛별’, 중국 교회와 복음화 3[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황경훈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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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4  14: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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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명)는 중국 교회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평신도다. 2013년 우리신학연구소가 ‘토착민’과 생태 지속성, 평화를 주제로 연례 평신도 활동가 단기 양성 워크숍을 열었을 때 참가했고, 행사가 끝나자마자 쓰촨성으로 달려갔다. 2008년 대지진으로 8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바로 그곳이, 또 한번의 지진으로 그야말로 초토화되다시피 하여 복구와 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중국인으로서 그리고 신자로서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이 피해를 입은 인민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절실하게 바라는 마음으로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2008년 지진 당시 중국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이 큰 논란이 되었을 정도였기 때문에 민간 차원의 노력이 더욱 값지고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그런 보도된 상황만으로는 다 담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것은 무겁게 각인된 ‘공산주의의 나라 중국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산다’는 운명의 의미와 그것을 행동으로 중국 인민에게 보여 주는 일 사이의 팽팽한 긴장으로도 감지되었다.

“신자로서 또 중국인으로서 이들에게 봉사하고 싶다. 내가 봉사를 즐겨서가 아니라 더 이상 교회가 서양 문화에서 온 이질적인 세력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국인들에게 그리스도교는 어딘가 잘 안 맞는 옷 같고 거리감도 있다. 교회가 좋은 곳이고 도움을 주는 곳이라는 것을 중국 인민들이 믿도록 애쓰고 싶고 그렇게 노력할 뿐이다.”

마리아가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자신은 두 가지 반성을 하고 산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하나는 신앙인으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늘 반성해야 한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역사의식이 있는 중국인으로서 교회가 범한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기억하면서 어떻게 하면 중국 사회와 인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늘 성찰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지하교회와 공식교회의 화해, 중국과 바티칸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일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 진루셴 주교. (이미지 출처 = baidu.cn)

중국 교회 전체를 놓고 본다면 아마도 상하이 교구의 전 교구장이던 진루셴 주교야말로 이러한 정신을 상징적으로 살다 간 중국교회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가슴속에 품은 추기경’이라 부른 궁핀메이 추기경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어쩌면 더 쉬운 길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중국의 두 교회 공동체의 갈등과 긴장, 그 가파른 경계를 자신의 삶으로 견뎌 내었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더 어려운 길이었을 것이다. 그가 1982년 27년간의 수감, 연금, 수용소 등의 생활에서 풀려난 뒤부터 2013년 세상을 등질 때까지 30여 년 동안 양측으로부터 ‘빨갱이’와 로마라는 ‘외세’를 등에 업은 ‘부역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진 주교는 상하이 교구를 이끌며 교황의 승인 없이 서품된 주교를 받아들였고 천주교 애국회의 지도 및 관리를 받는 공식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교황과 화해를 이루고 그의 권위를 인정했으며 중국 전체 교구는 아니더라도 상하이 교구에서 만큼은 두 공동체의 화해, 특히 성직자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를 이뤄 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논란이 많고 아마도 두 공동체가 완전한 화해를 이뤄 내기까지 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시오(독일 주교회의 원조기구)의 전 아시아 담당자인 게오르크 에버스도 진 주교의 삶이 고난에 찬 것이었지만 중국 교회를 주체적으로 만드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독일인이자 ‘아시아 신학자’이기도 한 게오르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적극적인 대화 제스처를 평가하면서도 중국과 바티칸의 수교나 관계 정상화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시진핑이 자신의 권력을 보호, 유지하고자 하는 차원에서만 바티칸과의 관계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교회를 ‘주체적인 지역교회 건설’이라는 차원에서 보는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교회의 역사성 회복’에 대해 물었다. 그는 식민지를 겪은 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에서 역사성 회복은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데, 이는 단지 피식민지 교회만이 아니라 식민지 종주국의 교회와 교황청도 함께 나서야 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프랑스 교회나 바티칸의 서고에 잠자고 있는 피식민지 교회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나누지 않는다면, 아무리 역사성 회복을 말한다고 한들 반쪽에 그친다는 것이다.

   
▲ 독일 주교회의 원조기구의 전 아시아 담당자 게오르크 에버스. ⓒ황경훈
사료의 문제만으로 좁히면 그의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오겠지만, 더 큰 문제는 피식민지의 교회 스스로 교회의 역사성 회복이라는 문제 자체에 대해 아무런 의식이 없다는 점이 아닐까. 아시아의 많은 나라와 중국, 또 한국의 교회가 바로 그러하다면 무엇보다도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주체적인 지역교회 건설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역사 바로 세우기’를 전 나라 차원으로 확대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를, 그 힘을 갖는 길이 아닐까. 교회가 현재 누리는 물질적 부와 평안이 식민지를 전후로 얻은 특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확언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것에 연유하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 온 것이라면 우리 신자됨의 척도는 그에 대한 자기비판의 진실성과 무엇보다도 역사성 회복에 성직자를 포함한 전 공동체가 나서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닌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복음화 사명은 모든 인간의 온전한 진보(발전)를 포함하고 요구한다”(182항)고 말했다. 중국 교회와 복음화를 생각할 때 중국 인민과 사회의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21세기 복음화의 방향과 내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앞서 본 마리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 더 크고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중국 교회 두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를 제도 교회와 성직자, 또는 교회 안의 것으로만 국한해 말했다면, 그 화해가 중국 사회와 민중의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발전으로 돌려질 때 비로소 교회는 중국의 샛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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