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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의 신성함을 깨뜨리는 질문[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

한국에서 지배적인 병역 인식은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한편으론 ‘현역복무 부적합자’를 걸러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4년 병영사고가 연달아 터진 이후부터 이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대 안에서 동료병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다가 총기난사를 한 사건이나 반대로 선임병사들로부터 구타를 당해서 사망한 사건 등 끔찍한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부적합자 필터링이 해결책으로 불려 나온다.

올해 병무청 국정감사에서도 현역복무부적합자에 대한 심리 및 인성검사를 강화하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고 귀가한 병사들 중 35퍼센트가 정신과 질환 진단을 받았다는 통계가 그 근거다. 국회의원들은 ‘정신이상자’들을 보다 과학적으로 걸러 낼 방법을 모색하라고 주문했다.

반면, 다른 편으론 ‘병역면탈자’를 발본색원하라고 요구한다.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신체를 훼손하거나 정신과 질환으로 위장하는 방법으로 기피하는 자들을 끝까지 찾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터넷에 병역기피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한 정책도 철저하게 준비해서 실시하라는 조언도 따라붙는다. 마찬가지로 올해 병무청 국정 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입을 모아 주문한 내용이다.

‘현역복무부적합자’와 ‘병역면탈자’라는 구분

병무청이 찾아내서 걸러 내야 하는 ‘현역복무부적합자’, 반대로 끝까지 찾아내서 군대에 데려가야 하는 ‘병역면탈자’, 이 둘은 사실상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 2014년 28사단에서 휴가를 나왔던 병사 두 명이 함께 자살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해당 병사들은 입대 직후부터 병영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이들은 복무 중에 외부 병원으로 나가서 정신과 진료도 받았지만 현역복무부적합 심사를 받지는 못했다. 부모가 어떻게든 군복무를 끝까지 해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해당 부대에선 이들을 사단 그린캠프에 보낼 뿐이었다. 사고가 나지 않게 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과 질환 증상이 현저하게 나타난다면 강제로 전역을 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생활이 완전히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우울증이 대체로 그렇다.

두 사람은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이중 한 명의 휴대전화 메모장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긴 말씀 안 드립니다.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광주에 살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등 물품은 집으로 전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 2014년 JTBC에서 군 의문사 의혹, 받아들일 수 없는 자살 보도 중, 유가족들은 죽은 이유라도 알려 달라고 했다. (이미지 출처 = youtube.com)

자살을 포함해서 군대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대체로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부대에서 게으르다고 욕을 먹고 있는 병사는 ‘현역복무부적합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병역면탈자’가 될 것인가? 우울증을 호소하거나 근무가 지병을 악화시킨다며 일하기를 꺼려 하는 병사는 ‘현역복무부적합자’인가 아니면 ‘병역면탈자’인가?

정반대의 질문도 가능하다. 인터넷에 신상공개가 될까봐 두려워서 억지로 입대한 병사가 우울함을 호소한다면 ‘병역면탈자’로 봐야 할까 아니면 ‘현역복무부적합자’로 봐야 할까? ‘병역면탈’과 ‘현역복무부적합’ 사이를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심리나 인성을 검사해서 현역대상자들의 마음속을 샅샅이 꿰뚫어 보자는 요구가 계속되는 것은 병영사고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병영사고가 오로지 병사들 개개인의 자질 때문에 생겨난다고 여기는 오해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자살한 병사들 중 60퍼센트 가량이 관심병사로 분류되어 관리되고 있었고, 이들 중 대부분이 우울증 같은 정신과 질환을 앓았다는 통계가 이러한 오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니 ‘정신이상자’들을 걸러 내기만 한다면 이러한 병영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계산법이다.

절대로 던지지 않을 질문

하지만 이들이 끝까지 질문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들이 처음부터 ‘정신이상자’들이었을까? 자살한 병사들 중 60퍼센트 가량이 관심병사였다면 나머지 40퍼센트는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2014년 이후 관심병사 관리가 철저해진 만큼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면 거의가 관심병사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자살한 병사들 가운데 40퍼센트는 우울증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게다가 통계는 개개인이 겪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병사들이 군대에서 어쩌다 우울증을 겪게 됐는지, 대체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옥죄었는지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군대에선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까?

한국에서 지배적인 병역 인식은 이런 질문을 전혀 던지지 않는다. 다만 원인을 당사자들에게 돌릴 뿐이다. ‘신세대 병사들’ 같은 말들로 당사자들이 유약한 탓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이렇게 해서 병역은 신성한 채로 흠집없이 유지될 수 있다. 앞으로도 젊은이들을 받아야만 군대 규모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병역은 신성한 것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성한 병역은 오늘도 한입으로 정반대 이야기를 힘주어 이야기하는 모순에 갇혀 있다. ‘현역복무부적합자’더러는 절대로 군대에 들어오지 말라고 당부하고, ‘현역면탈자’더러는 끝까지 찾아내서 군대에 데려가겠다고 협박한다. 물론 둘이 같은 대상인지는 절대로 묻지 않는다. 병역의 신성함을 깨뜨릴 위험이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당사자들의 몫이다.
 

오늘로 '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 연재를 마칩니다. 병역 문제 등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하게 해 주신 백승덕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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