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실패할 때 흥하는 거짓 예언자

(샤이 쿨런)

세계 각지의 민주사회들은 시민들이 많은 전통적 정치인들에게 갈수록 더 큰 불만을 드러내는 문제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치안이 확립된 무범죄 사회를 만들거나 이주민이 없는 새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성 정치와 다르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포퓰리즘 신흥 정치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기회주의 정치인들은 경제, 정치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진실한 분노를 디딤돌로 삼아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만들려고 한다.

경제적 불균형과 불의가 확대되고, 그러면서도 치유되지 않음에 따라, 민주주의는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잃고 있다. 관료들의 부패 때문에 대중의 삶은 더 힘겨워지고 비참해지고 있다. 대중은 가짜 구세주라 할지라도 기꺼이 환영하고 지지한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급등장한 것은 수많은 미국인이 기성정치권을 불신한다는 표시다. 이들은 자산계급 억만장자들의 기부 없이는 진정하고 독립적인 민주정부를 선출할 수 없다는 데 절망한다. 이들은 공정함으로 번영을 가져올 정부를 원한다. 이들은 절망에 빠져 거짓 희망에 눈이 멀고, 한 거칠고 세련되지 않은 억만장자 기업가를 지지한다.

(한국의 박근혜처럼) 천국과 질서를 약속하면서 민주적으로 당선되었지만 어떠한 비판이나 반대도 참아 주지 않는 독재적,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시켜 가는 지도자들도 있다. 헝가리와 폴란드, 그리고 터키에서는 이러한 지도자들이 법치와 인권을 옹호하는 언론과 사법부, 그리고 시민사회를 탄압하고 통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는 극단적 정책을 내세우고, 이민을 반대하며, 민족주의적인 정당들이 갈수록 더 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초인 여러 가지 자유와 가치관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나라들은 소수약자를 소외시키고 종교 자유와 인간 존엄, 평등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거짓 메시아들이 이끄는 가짜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정부는 유권자의 걱정과 고통에 힘입어 선출되며, 유권자들은 정치적 대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대변되지 못하며 무시당하는 경험 때문에 이들을 대안으로 생각한다.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변화를 약속하고 부패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하면서 이를 디딤돌로 삼아 권력을 차지한다. 이들은 유권자들의 상상력을 장악하고 그들의 희망에 불을 붙이지만, 이들이 대통령이나 총리의 권력을 차지하자마자 그런 공약들은 곧 잊혀진다.

이들이 권력을 남용하면, 교육 수준이 높고 환멸을 느낀 대중은 이들을 권력에서 몰아내기에는 어쩌면 늦었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권력자들이 30년 또는 그 이상이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거나 조작하곤 한다.

▲ 박근혜 대통령. (이미지 출처 = www.flickr.com)

사회정의와 평등을 내건 중도좌파 개혁주의 정부를 뽑으면 빈곤을 줄이고 더 강한 경제를 만드는 데 부분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지만,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결국은 브라질에서 보듯이, (중도좌파 정권의) 부패와 부실한 경제 관리 때문에 엘리트 억만장자 기업가들이 권력에 진입하는 문을 열어 주고 만다.

엘리트 억만장자 기업가들은 금융 규제를 풀고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규제 없는 자유무역을 촉진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가장 위험한 존재일 것이다. 이들은 독점을 만들고 언론을 사들여서 뉴스를 장악하고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확립한다. 이러한 지배 엘리트들은 착취를 허용하고 다국적 기업들이 아무런 사회적 나눔 없이 이윤만 극대화하도록 해 준다.

세속적 가치관이 성장하면서 사회가 갈수록 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사회로 변해갈 때, 그리고 쾌락 원칙에 더 빠져들어 갈 때, 가치관과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교회의 역할은 경시되어 왔다.

아마도 이는 교회지도자들이 신자들에게 쓸데없는 짐과 제한을 요구하면서 취했던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모습 때문일 수 있다. 사람들은 이들의 너무 권위적인 모습을 거부하고 있고, 그러다가 아예 (교회 가르침을 무시하고) 세속적 이익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교회지도자들은 인간 존엄, 자비, 그리고 정의와 평등, 보편 인권 등에 바탕을 둔 종교의 여러 가치관을 적절한 방식으로 촉진하고 실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갈망하면서도 이러한 기본 가치관들이 별로 담기지 않은 가짜 민주주의를 얻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때, 진정한 민주주의의 활기 넘치는 모델이 현실 속에 이뤄질 것이라고 바랄 수 있다. 성찰과 이성, 그리고 지식에 바탕을 두고 개방성과 신뢰가 있어야 그런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이러한 가치관을 운동의 핵심으로 삼고서 두려움 없는 비폭력과 사회정의, 그리고 성실한 참여를 하는 사회는 참으로 가능하다.

(샤이 쿨런 신부(골롬반회)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1974년에 필리핀의 올롱가포에 “프레다 재단”을 만들어 인권과 아동권을 옹호하고 특히 성학대 피해자들을 위해 일해 왔다.)

기사 원문: http://www.ucanews.com/news/the-values-of-a-true-democracy/77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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