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95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쏟아지는 불햇살 몰아치는 흙먼지 이마에 맺힌 땀방울 눈가에 쓰려도, 먹구름이 몰려온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등뒤로 흘러내린 물이 속옷까지 적셔도, 졸지말고 깨어라 쉬지말고 흘러나 새아침이 올 때까지 어두운 이 밤을 지켜라.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 김민기, 천리길 中.

<가자 천리길 굽이쳐 가자>
어버이날입니다. 생명을 주시고 삶을 가르쳐주신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오늘. 순례단도 세분의 가르침에 감사하기 위한 작은 마음을 나누면서 하루 순례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루를 숙박하였던 지동성당 앞 마당에서 작은 카네이션을 드리면서 사진을 남겼습니다. 어색하다면 받지 않으시려던 세분, 시간 없다는 진행팀의 재촉에 마지못해 꽃을 받으시면서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그런데, 출발장소에 도착해보니 진행팀만 어버이날이 아니었나 봅니다. 주말 순례길에 자주 참여하시던 이시희 이경민 부부께서 어버이날 선물을 사들고 순례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멀리 대전에서 세분 성직자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 순례길은 수원 KBS 드라마센터 인근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순례를 취재하기 위해 오신 분도 계시고, 환경운동연합 전국 사무처 활동가들도 참여하였네요. 분당에서 오신 분도 계시고, 멀리 제주에서 오신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환경운동연합 김종남 사무총장은“지금 가시는 길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길입니다. 현재는 자동차들의 속도 경쟁과 인간의 욕망을 이어주는 길이지만 본래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이 순례가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을 이어주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환경운동연합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잘 딛고 일어나자는 뜻을 도모하면서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길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비우고 또 비워서 더 이상 비울 것이 없을때 새로움이 채워질 것입니다. 김종남 사무총장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생명과 자연은 파괴, 왜곡, 단절 되어 왔습니다. 생명의 길이 사람으로 이어져 사람과 생명, 그리고 자연이 잘 어우러지고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도록 노력하겠다” 합니다.

어버이날. 생명을 주시고 삶을 주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 무엇보다 크고 소중하기에,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침 주신 은혜 무엇보다 큽니다. 그렇듯이 우리를 품고 안은 어머니 땅 대지의 가르침 역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신록이 푸르른 날. 순례단은 대지의 가르침을 따라 생명의 길을 찾아 몸을 낮추었습니다. 작열하는 햇살에 뜨거워진 아스팔트 열기에 숨소리 고르지 않지만, 지나는 차량의 바람에 날리는 먼지 이마에 가득 묻지만, 생명의 길을 가겠다는 그 마음 변함없습니다.

순례단.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느리디 느린 풍경으로 길을 가지만, 이를 바라보는 버스정류장의 시민들 심란한 표정입니다. 햇살은 뜨겁고 바람도 없는데, 조금만 햇빛을 맞으며 움직이면 금방 땀이 흐르는데, 주변 시민들의 시각으로는 정말 천천히, 도로를 몸으로 청소하면서 가는 것처럼 가는 순례단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힐 뿐입니다.

그렇게 "쏟아지는 불햇살 몰아치는 흙먼지 이마에 맺힌 땀방울 눈가에 쓰려도, 먹구름이 몰려온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등뒤로 흘러내린 물이 속옷까지 적셔도, 졸지말고 깨어라 쉬지말고 흘러나 새아침이 올 때까지 어두운 이 밤을 지켜라.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는 노랫말처럼 묘향산을 향한 순례단의 기도 걸음 계속 됩니다.

<대통령님. 국민의 소리를 들어주세요>
오늘 점심은 식사 장소가 적당치 않아, 도로변 인도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오후 다시 도로에 서니 불판입니다. 30도가 넘었다는 소리도 있는데, 도로위에 서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30도가 훨씬 넘는 듯 합니다. 점심 시간 내내 달구어진 도로 열기는 2시를 넘겨서도 내려가지 않고, 한 구간 한 구간 진행될 때마다 흐르는 땀방울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오후 순례길에는 수원지역에서 활동하는 수원지역촛불시민대책위 분들이 참여하셨습니다. 다산인권센터는 1990여년에 창립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지원 활동 및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관련된 지역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인데,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상임활동가는 “요즈음은 마음 아픈 것 투성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세상은 잔인하고 험난해 져 힘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이명박이 문제의 근본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 낸 산물일 뿐이다. 우리 모두의 그릇된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떤 대통령도 소용없다”고 지적하고, “인권이란 자유, 평등, 평화, 연대, 박애 등 인간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이다. 이런 것만 지켜져도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적어도 힘없는 사람들이 차별 받고 억압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체투지 기도로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이 열려 살만한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합니다.

이며박 대통령이 문제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순례단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 사람과 생명, 평화를 위한 정치를 펴서 후세에도 좋은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기원합니다. 순례자들이 대통령이라면 한국사회의 현 상황에서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일단 아무것도 않 하겠다. 먼저 국민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충분한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나승구 신부)", " 힘없는 자들을 구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치겠다.(이영우신부)", "경제 살리기(박장건)", "재산환원하고 물러나겠다.(환경운동 하겠다니. 정나래)", "용산참사에 대해 국민들에게 먼저 사죄하겠다.(박보경)", "소외 받는 자들을 배려로 먼저 복지정책을 개선하겠다.(조성흠)", "돈 함부로 쓰지 않도록 만들겠다.(박용성)", " 북한과의 관계를 보다 자유롭게 개선하겠다.(김춘이)", "4대강하천정비사업을 포기하고 그 자본을 재생가능 에너지를 개발해 고용을 창출하겠다.(이성조)", "복지, 환경(황애진)", ", 국민의 입장에서 서서 먼저 생각하겠다. (유진)", "일부 권력자들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위한 정치(성정아)", "제대로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김정미)".

사람들이 이런 희망을 표하는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부디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 순례자들의 마음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네요.

<체감온도 30도 이상. 땀방울이 흐르고>
오늘 손목을 삐긋하신 전종훈 신부님. 이제 100여일이 되는 순례길에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오히려 몸은 갈수록 힘겹기만 하다 하시네요. 작년 53일에 이어, 올해 42일차에 이른 순례길에 세분 순례자의 체력은 갈수록 고갈되고, 불볕 더위가 갈수록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한여름이 아니지만 벌써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도로변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그리워지기 시작합니다. 세찬 비바람에 몸살치던 날이 몇일이나 지났다고 이러는지, 순례길 마음 참 간사합니다.

순례단 한참 더위와 씨름하며 순례길을 가는 중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수원화성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곳 수원성(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죠. 이곳에 얽힌 정조임금과 정약용, 천주교 박해 관련 사실은 새롭기만 합니다.

수원 화성인근의 도로변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던 순례단. 길가에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신기하였던 꼬마들, 순례단에 이것 저것 물어보고 외국인인 수브라가 신기한지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대화를 나눕니다. 잠깐의 휴식 이후 다시 길 떠나는 순례단을 따라서 자신의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던 꼬마들. 더위에 지친 순례단에게 시원한 웃음으로 기운을 주더군요.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수경스님. 이제 쉬는 시간마다 얼음주머니로 무릎 통증을 달래는 일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이 더위에도 무더운 바지를 입고 계시는 스님. 이제 바지 바꾸자는 말에도 '그냥 끝날 때 까지 가야지'라며 웃기만 하시네요. 오히려 '날이 덥고 땀이 나니 할만 하다'라며 '끝까지 갈테니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한 하시네요.

오늘 순례는 예정된 구간을 조금 못간 종합운동장 인근 영화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종료하였습니다.

<스님. 충고 한 마디 할께요>
참 마음이 아프더군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순례단 옆을 지났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던 여학생. 순례단 바로 옆의 인도로 다가오더니 엄청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진행팀 누구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나중에서야 한창 이야기 하는 여학생의 말들이 귀에 들어오는데, 어안이 벙벙하기보다는 어린 학생 생각에 그저 마음이 찹찹할 뿐입니다.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도로변에 침 한번 뱉더니 도로에 바짝 업드린 스님과 신부님, 그리고 징을 치시는 혜수 스님을 바라보면서 "스님. 충고 한 마디 할께요. 스님 불교 믿으시면 천국 못가고 지옥가요". "에이 더러워서..." 차마 그 이야기들을 다 전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말들을 쏟아내면서 순례단을 바라보며 이야기 합니다. 이를 말리려던 진행팀이 '학생'하고 부르니 두 손으로 귀를 꼭 막고 앞으로 가면서 계속 '불신지옥'을 이야기하고 갑니다. 순례단 뿐만 아니라 지나며 이를 보던 시민들 기가 막힐 뿐입니다.

순례길이 시작된 지난 2008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손가락질과 정체되는 차량 운전자분들의 작은 욕설을 들었지만, 이렇게 앳된 천진무구한 아이가 어른도 내기 힘든 소리를 하는 일은 처음 겪었습니다. 순례가 마무리 된 시간. 숙소로 향하던 수경 스님. "내가 잘 씻지 않은 것을 그 학생이 어떻게 알았지? 오늘은 좀 씻어야지" 하시면서 웃기만 하시고, 징을 치시면서 소리를 다 들었던 혜수 스님은 "그 학생 아마 내 상좌로 들어올 인연인가 보다"면서 역시 웃기만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살아가는 기성세대도 세상살이에 대해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살이에 다만 배타성을 버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에게서 '불신지옥' 운운하는 이야기가 들리니 갑갑할 뿐입니다. 그 학생에게 '종교 간의 대화와 공존의 필요성',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념체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듯이 타인의 종교 신념 체계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요?

아이가 순례단에 쓴 소리를 낸 것보다, 아이에게 이런 생각을 전해준 어른세대가 궁금해집니다. 무슨 일로 그토록 아이에게 또 다른 증오를 물려주고, 배타적인 삶을 전해주었을까요? 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그렇기에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단어와 어투를 그대로 흉내 내는 꼬마'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남의 말을 잘 듣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순례단은 오늘 우리에게 다가왔던 학생이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동일한 사람이라는 마음과 자연과 인간을 둘러싼 일체 만물이 모든 동일한 생명체이기에 소중히 해야 한다는 생명의 마음', 이 마음이 함께 커지고 스스로의 마음에도 평화의 기운이 함께 자라나길 기대합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이영우 신부 외 1명(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 / 나승구 신부(신월동성당 서울) / 이시재 외 19명(환경운동연합) / 박장건(예천) / 이진복(화계사) / 이효재(대전) / 김정미 외 1명(수원) / 박진 외 2명(다산인권센터) / 모지희(서울) / 정동수(서울) / 최광수(인천) / 장동빈(수원)님 등이 함께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09일(토) : 조원동 영화초교사거리 인근 - 파장동 효행공원입구 인근
● 5월 10일(일) : 수원시 파장동 효행공원입구 - 의왕시 오전동 의왕지구대
● 5월 11일(월) : 휴식
● 5월 12일(화) : 휴식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대왕주유소(수원), 이시희(대전), 이시재(환경운동연합), 이정토원(삼불주선원), 봉녕사(수원), 반재웅(수원), 서정리(수원생협), 광우병수원시민대책위, 수원사포교당(수원) 등이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8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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