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북촌 마을, 지는 서민

서울 삼청동 삼청새마을금고 앞,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린다.

삼청새마을금고 건너편에서 가회동에서 영업을 하고 있던 두 가게, ‘장남주우리옷’과 ‘씨앗’의 점주 등 맘상모(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들의 모임) 회원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살자”를 외치는 동안 새마을금고 앞에서는 ‘삼청동 번영회’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 건너편을 향해, “법을 지키라”며 고함을 지른다.

점주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삼청동 번영회’로 집회를 하는 이들은 인근 상인들이며, 삼청새마을금고 측에서 번영회에 요구해 집회에 나온 이들이다.

이 상황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삼청새마을금고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발단은 2015년 9월, 삼청새마을금고가 ‘장남주우리옷’과 ‘씨앗’이 있던 건물로 이전하기 위해 사들인 데서 시작됐다.

천연염색공방 ‘장남주우리옷’의 점주 김영리 씨와 자수공방 ‘씨앗’ 점주 김유하 씨는 각각 2010년 2월과 2009년 4월 이 건물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혜화동에서 7년간 영업하다가 권리금을 포함한 시설비 2억 5000만 원을 포기하고 가회동에 자리잡은 김영리 씨와 아버지의 가게를 부채와 함께 물려받은 김유하 씨는 그나마 임대료가 싼 이곳에서 장사를 이어갔다.

이들이 영업을 시작한 뒤 5년간 관광지로 북촌 상권이 뜨면서, 건물 주인은 2010년 8월과 2012년 5월 두 번 바뀌었고, 그때마다 월세는 30퍼센트, 35퍼센트가 올랐다. 2015년 1월 세 번째 건물주는 결국 가게를 비우라고 했고 김영리 씨와 김유하 씨는 처음 입주할 당시의 권리금 7000만 원을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권리금 지급이나 양도 양수도 거부한 건물주와 두 점주는 명도소송을 하기에 이르렀고, 건물주는 2015년 9월, 소송으로 팔리지 않던 건물을 삼청새마을금고에 팔았다. 삼청새마을금고는 2012년 매입가 23억 7500만 원보다 싼 20여억 원에 사들였고, 약 7000만 원의 취득세도 감면 받았다. 현재 건물시세보다 매입가만 8-9억 싼 가격이다.

▲ 삼청새마을금고 앞 집회에 참여한 김유하 씨와 김영리 씨(오른쪽에서 첫번째와 두번째). 김유하 씨는 10년간 두 번 쫒겨났다며, "더 많은 이들이 쫒겨나지 않도록 싸우겠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건물을 사면서 삼청새마을금고는 명도소송도 승계 받았고, 2016년 2월 법원은 삼청새마을금고 승소 판정을 내렸다.

그나마 그동안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던 권리금을 법제화해 세입자의 권리금 회수 권리를 보장하고, 계약기간 5년 이상 세입자도 권리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지난해 5월 13일부터 시행됐지만, 두 점주의 계약 만료는 시행일 딱 한 달 전인 4월 15일이었다.

법원은 삼청새마을금고의 손을 들어 주면서도 한 달 차이로 권리금을 받지 못하는 것과 두 점주의 상황을 고려해 삼청새마을금고 측에 “권리금을 지급하고 합의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했지만 새마을금고는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새마을금고는 2016년 6월 9일자로 강제 집행을 하겠다는 계고장을 보냈고, 6월 10일 두 점주는 “결코 물러날 수 없다”며 투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8월 22일 오전, 삼청새마을금고는 철거용역 40여 명을 동원해 강제집행을 했다. 현재 두 점주는 합판으로 막힌 가게 앞에 천막과 텐트를 치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 가회동 '장남주 우리옷'과 '씨앗이 있던 자리. 두 점주는 합판으로 막힌 가게 앞에서 50여일째 싸우고 있다. ⓒ정현진 기자

삼청새마을금고는 천상욱 이사장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가회동 건물의 경우 개정법과 무관하며, 새마을금고는 단 0.1퍼센트의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권리금 보상은 절대로 할 수 없으며, 점포당 40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해 강제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영리 씨는 새마을금고가 제시한 4000만 원은 처음 이사비용으로 200만 원, 1000만 원을 주겠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언론에 기사가 나면서 4000만 원을 제시한 것이라면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4000만 원은 외부에 말하기 위한 명분이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다. 최소한 인간적으로 동등하게 서로 살 길을 찾자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돈은 받을 수 없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또 이들은 “서민의 대표적인 금융기관이라는 삼청새마을금고는 새마을금고법을 들어 권리금의 법적 근거가 없다지만, 용역을 고용해 강제 철거한 것은 새마을금고법에 근거한 것인가”라면서, “우리는 계속 장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요구 사항이며, 안 된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장사할 수 있도록 예전 권리금을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삼청새마을금고가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하지만, 엄연히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된 뒤에 명도소송중인 건물을 산 것이라면서, “명도소송 중인 두 임차 상인의 계약 만료 시기를 확인하고 건물을 취득한 뒤, 폐기된 법을 들어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임차상인을 벼랑 끝으로 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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